빵빵한 풍선처럼 부푼 고래 사체…섣불리 칼 대면 ‘펑’ 큰일 나요

이정호 기자 2023. 7. 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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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남부 도시 발린스켈리그스의 해변으로 떠밀려온 참고래 사체를 연구자들이 살피고 있다. 아일랜드 고래 보호·연구 시민단체 ‘IWDG’ 제공
죽은 뒤 장기 부패하며 메탄 생성
두꺼운 지방층 탓 몸속에서 축적
2013년 고래 배 가르다 실제 폭발
아일랜드선 ‘위험’ 판단 부검 포기
해변서 발견 땐 접근 말고 신고를

몸통이 테니스 코트 길이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해변에 누워 있다. 물이 빠진 해변에서 꼼짝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고래는 이미 죽었다. 고래 사체 주변에선 파란색 방호복을 입은 연구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이 모습은 최근 아일랜드에서 촬영됐다.

고래 사체는 학술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연구 소재다. 사체를 분석하면 사인과 함께 바닷속 서식 환경 등을 생생히 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검’, 즉 칼을 대 피부를 가르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연구자가 눈으로 직접 고래 신체 내부를 살필 수 있어서다.

그런데 최근 아일랜드 해변에 떠밀려온 이 대형 고래를 두고 현지 해양생물학자들은 부검을 깨끗이 포기했다. 이유가 특이하다. 고래 몸속에서 가연성 기체인 메탄이 생성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피부에 섣불리 칼을 댔다가 메탄가스가 터지면서 대형 폭발 사고가 생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거품 소음 발생해 부검 포기

최근 아일랜드의 고래 보호·연구 시민단체인 ‘IWDG’는 자국 남부 도시인 발린스켈리그스 해변에 지난 8일(현지시간) ‘참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 떠밀려 왔다고 전했다.

몸길이가 19m에 이르는 비교적 큰 덩치의 개체였고, 부패한 정도로 봤을 때 죽은 지 약 3주가 지났을 것으로 추정됐다.

대개 큰 동물이 해변으로 죽은 채 밀려오면 해양생물학자들은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한다. 몸에 어떤 이상이 있었는지 알아내고, 서식 환경과 신체 내부 특징 등을 자세히 살필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IWDG는 공식 자료를 통해 “부검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죽은 참고래의 피부에서 실험용 시료를 긁어내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특이한 이유가 있었다. 사체 안 메탄가스 때문이다. IWDG 연구진은 죽은 참고래의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거품소리를 들었다. 이것이 메탄가스가 생성되는 소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메탄은 가연성 기체다. 메탄은 난방이나 조리용 연료로 사용하는 액화천연가스(LNG)의 주성분이기도 하다. 부검을 위해 칼로 고래 피부를 섣불리 갈랐다가 자칫 폭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장기 부패하며 메탄 생성

메탄가스는 살아 있는 고래의 몸속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그럼 죽은 고래에게서 이 기체가 생성된 이유는 뭘까.

고래는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죽고 나면 몸속에서 미생물이 번성하며 장기가 부패한다. 부패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기체가 메탄가스다. 보통의 동물 같으면 메탄가스는 몸의 미세한 틈을 통해 자연스럽게 외부로 배출된다.

고래는 다르다. 고래는 낮은 수온에서 체온을 지키기 위해 두꺼운 지방을 피부 아래에 벽지처럼 넓게 붙이고 다닌다. 지방 두께가 50㎝에 이르는 고래도 있다.

고래가 죽고 나면 지방층이 튼튼한 밀폐용기 구실을 하면서 몸속에서 생성된 메탄가스가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고래 사체가 빵빵한 풍선처럼 변하는 것이다. 이번에 아일랜드 해안으로 떠밀려 온 참고래 사체에서도 이런 이유로 메탄가스가 몸속에서 축적되는 일이 일어난 것으로 IWDG는 추정했다.

과거 피부 가르다 실제 폭발도

죽은 뒤 해안에 밀려온 고래에 칼을 댔다가 폭발이 발생한 사례는 실제 있다. 2013년 북대서양 덴마크령 페로 제도에 향유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 떠밀려 왔다. 이때 이 지역의 한 연구자가 고래의 배를 칼로 갈랐다가 폭발이 일어났다.

당시 굉음과 함께 고래의 내장과 혈액이 찢어진 피부 바깥으로 강하게 튕겨 나갔다. 화재는 생기지 않았다. 다행히 연구자가 폭발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살짝 비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에선 종류가 불분명한 고래 한 마리가 바다에 떠 있다가 자연적으로 폭발하는 일도 있었다.

IWDG는 공식 자료를 통해 “참고래 사체 발견 지점은 사람 통행이 적은 외딴곳”이라며 “이 지역 지방정부와 논의한 끝에 사체를 해변에 놔두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국내 해양생물학계의 한 연구자는 “한국 주변 바다에서도 고래 사체가 떠오르거나 떠밀려 오는 일이 간헐적으로 발생한다”며 “죽은 고래를 발견하면 해양경찰 등 관계 당국에 일단 신고하고 임의대로 접근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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