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보호하면 학생 인권 하락’… 편향 프레임에 교실 붕괴 [추락한 교권]

김유나 2023. 7. 2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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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
교사에 흉기·수업중 스마트폰 사용 등
논란 때마다 대책 요구에도 성과 없어
‘교사, 학생에 주의 줄 수 있다’ 법제화
“당연한 것, 명시할 정도로 현장 엉망”
일각 “진보 교육계, 교사 보호에 소홀”
학교, 교사 보호보다 문제 덮기 급급
‘선생님이 참아야 한다’ 강요 분위기
정부, 학생인권조례 재정비 추진할 듯

‘남의 일이 아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교사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이후 교직 사회는 며칠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망 전 학부모 전화 등으로 괴로워했다는 제보 등이 이어지자 교사들은 교권 추락과 열악한 교육환경을 성토하고 나섰다. 그동안 꾹꾹 참아 왔던 불만들이 A씨 사망을 계기로 터져 나온 모양새다.

23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국화가 창문 틈에 꽂혀있다. 연합뉴스
23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오는 28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A씨 사망 사건 관련 현안 질의가 열릴 예정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당초 24일부터 여름휴가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A씨 사건 수습 등을 위해 휴가를 취소했다. 이 부총리는 당분간 교원단체 의견을 청취하는 등 교권침해 대책을 만드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입장에선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 논란이 가라앉자마자 또 다른 ‘중대 과제’를 맞닥뜨린 셈이다.
교사들은 지금까지 수차례 경고음이 울렸으나 정부가 이를 무시해 왔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수원에서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 충남에서 한 중학생이 수업 중인 교사 옆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진 사건 등 무너진 교실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 잇따라 공론화됐다.
아이와 함께 추모 23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추모객들이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방학 중 방과후교실, 돌봄교실 등의 교육 활동으로 학교에 마련된 분향소를 이날까지만 운영한다고 밝혔다. 최상수 기자
이때마다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관련 정책은 매끄럽게 추진되지 못했다. 교사와 학생이 대척점에 있는 구도로 흘러가면서 “교사를 보호하면 학생 인권이 하락할 것”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나와서다. 예를 들어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교권침해 관련 조치 기재를 추진하겠다고 하면 전국교직원단체연합(전교조) 등 진보 교육계가 “학생 낙인 효과 등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며 반대하는 식이다.

교사들은 현재 학교는 학생의 인권이 과도하게 강조돼 교사가 힘을 잃은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웠더니 학부모가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자꾸 깨워서 아이가 모욕감을 느낀다’고 민원을 넣었다”고 전했다. 경북의 한 중학교 교사도 “학생의 교내 흡연을 지적했더니 학부모가 ‘요즘 다 피우는데 학교가 무슨 권리로 징계를 주냐’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최근 교원단체의 요구로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은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개정안은 ‘학교장과 교원은 교육목적 달성을 위해 학생 생활 전반에 관한 조언, 상담, 주의, 훈육·훈계, 지시, 과제 부여 등의 조치(학생 생활지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 중학교 교사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면 ‘선생님이 무슨 권한으로 이러냐’는 말이 되돌아오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에 ‘교사는 학생에게 주의를 줄 수 있다’는 말을 넣어야 할 정도로 현장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문에 추모객들이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며 쓴 메시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권 추락의 책임을 진보 교육계로 돌리는 목소리도 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우려는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 등이 학생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학생인권조례 등을 내세우며 학생인권만을 강조하다 보니 부정적인 영향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논리다. 보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학생인권조례는 서울·경기 등 6곳에서만 시행되지만 ‘과잉 인권’의 부작용은 전국 모든 학생에게 미치고 있다. 학생 권리만 부각해 왜곡된 인권 의식을 갖게 한다”며 “학생인권조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부총리도 지난 21일 현장 교원과의 간담회에서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돼 교실이 붕괴하고 있다”며 학생인권조례 속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개인의 사생활 자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향후 교육부 차원에서 학생인권조례 재정비 등 학생 인권 중시 기조를 지양하는 조치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26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학생인권조례 정비 등 교권 보호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23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추모객들이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며 쓴 메시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교육당국이 교권침해, 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교사들은 늘 ‘선생님이 참아야 한다’는 말을 강요당했다는 분위기다. 지난해 세종의 한 고교에서 남학생이 익명의 교원평가 문항을 이용해 다수 여성 교사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 논란이 됐을 당시, 피해 교사들은 가해 학생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교육자답지 못하다’는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이 밖에 교육감 선거의 지나친 정치화, 교원단체의 편향된 정치 행보 등도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학생을 볼모로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키우느라 교육 현장에서 정작 필요한 부분은 소홀히 취급했다는 지적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는 “민원이 제기되면 학교는 교사를 보호해야 하는데 현재는 대부분 민원을 덮는 데 급급하고 학부모들은 ‘민원만 제기하면 말이 안 돼도 학교가 굽힌다’고 학습하는 구조”라며 “교육부가 구체적인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유나·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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