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죠?" 아산시장 '허위 네거티브' 유죄 뒤엔 선수로 뛴 기자

김예리 기자 2023. 7. 2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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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 아산시장 공직선거법 위반 당선무효형, 2심 선고 앞둬
A기자, 캠프 총괄에 "끌어내면 우리가 이겨요"
의혹 허위사실 판명…언론윤리 위반 경종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Gettyimages.

박경귀 충남 아산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은 뒤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1심에선 박경귀 캠프가 상대 후보에 사실과 다른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 기자가 개입한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해당 기자는 '건물 허위매매 의혹'과 관련해 박 후보 캠프에 제보하고, 토론회에서 이를 부각하지 않은 점을 질책하는 한편 캠프의 의혹 제기 성명을 그대로 보도했다.

대전고법 1형사부는 지난 19일 박 시장의 공직선거법(허위사실 유포) 혐의 항소심 첫 공판에서 추가 심리 없이 박 시장 측 항소이유서를 검토한 뒤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형사부는 박 시장에 1500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고 박 시장 측은 항소했다.

박 시장은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한 주 앞둔 5월25일 성명서에서 원룸 건물 허위매매 의혹을 제기했다. 박 당시 국민의힘 소속 후보는 상대 후보로 나온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세현 당시 아산시장이 이른바 'LH 사태'가 발생한 시기에 원룸 건물을 매각했는데 매수자와 오 전 시장의 배우자의 성이 일치한다며 친인척 관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부동산 소유권이 이전된 당일, 수익 반환을 전제로 맡기는 '관리신탁'이 이뤄졌다며 허위 매각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실상 오 전 시장 배우자와 부동산 매수자는 생면부지였고 관리신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박 시장에 대해 벌금 800만 원 형을 구형했으나 1심 재판부는 그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을 선고했다.

▲박경귀 아산시장. 아산시 홈페이지

“원룸 끌어내면 우리가 이겨요” 캠프에 '의혹 적극 제기' 다짐도

1심 선고에서 박 시장 캠프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 외에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기자의 개입 정황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아산지역에서 활동하는 A 기자가 박경귀 시장 후보 캠프에 건물 허위매각 의혹을 제보했다.

판결문을 보면 A 기자는 지난해 선거 보름 전인 5월15일 박경귀 당시 국민의힘 아산시장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오 전 시장이 향후 재개발 이익을 누리기 위해 이 사건 건물을 허위 매각한 것 같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보”했다. A 기자는 해당 원룸 건물의 부동산 등기부등본 사진을 문자로 박 후보에게 보냈고, 한 차례 더 통화했다. A 기자는 “매수인과 오 전 시장 배우자의 성씨가 같아 이들이 친인척 관계에 있는지 몇 개월 조사했는데 관계성이 안 나온다”는 말도 했다.

A 기자는 해당 의혹을 토론회에서 적극 제기하지 않은 박 후보 캠프 쪽을 질책하기도 했다. 닷새 뒤인 20일 열린 아산시장 후보자 토론회에서 박 당시 후보가 원룸 건물 허위매각 의혹을 언급했지만 중요한 토론 주제로 다뤄지지는 않았다. A 기자는 23일 박 후보 캠프를 총괄하는 B 총괄본부장에게 전화해 “이런 거 무조건 짚고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것 못 짚고 넘어가니까 내가 답답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A 기자와 B 총괄본부장의 대화에선 A 기자가 오 전 시장을 상대로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도록 다짐 받으면서 “우리가 이긴다”고 강조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아래는 판결문에 언급된 A 기자와 박경귀 시장 후보 캠프 B 총괄본부장의 대화다.

A 기자 : 한 번 할 수 있죠?

B 본부장 : 아, 자신 있어. 독하게 싸울 거야, 이번에.

A 기자 : 이거, 이거 굉장히 끌어낸 거예요. 원룸까지 끌어내면 이거 우리가 이깁니다.

B 본부장 : 그러니까.

A 기자 : 제가 다 배경 얘기했죠?

B 본부장 : 예, 알고요. 예, 들었어요.

B 본부장은 A 기자와 통화한 다음날인 24일 박 후보에게 '토론회 때 시간이 없어 의혹 제기를 못했으니 오 전 시장의 허위 매각 의혹을 다룬 성명서를 배포하자'고 건의했다. 박 후보는 캠프에서 작성한 성명서를 승인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성명서는 A 기자에게 가장 먼저 전달됐다. 그리고 2분과 1시간 28분 차이를 두고 나머지 아산시 기자들에게 배포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 A기자는 다른 기자와 함께 성명서를 동시에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A 기자는 해당 성명서를 인용해 의혹을 기사화했고, 다수 언론도 보도했다.

▲박경귀 아산시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 선고한 대전지법 천안지원 판결문 발췌. K는 A 기자이며, N은 박경귀 시장후보 캠프의 B 총괄본부장이다.

상대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운동에 언론인이 직접 개입한 사례로, 저널리즘 윤리는 물론 지역언론의 역할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A 기자는 두 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박경귀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공판 취재를 해온 아산신문의 지유석 기자는 “이번 박경귀 시장 사건은 재판부가 검찰이 구형한 양형을 넘어선 선고를 할 만큼 중한 사건이다. 선거 후보자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 행태에도 경종을 울리지만, 권력과 거리를 두고 취재와 사실 확인, 그리고 보도로 말해야 할 지역 언론의 현실에도 주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선고는 오는 8월25일 오전 진행된다.

A 기자는 23일 통화에서 “허위가 아님을 몰랐으며 등기부등본에서 냄새가 나서 박경귀 후보에게 줬다”며 “캠프가 배포한 성명서를 보면서 '관리신탁' 이야기가 새로 나오기에 '진짠가 보네' 하고 기사화했다”고 했다. 캠프 총괄본부장과 통화 등 박 후보 캠프 편에서 네거티브 선전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박 본부장과 사이에서 얘기한 것이다. 평상시에도 가깝고 통화를 많이 한다”며 “제 성향은 그 쪽에 있으니”라고 했다. 또 “토론회에 잔뜩 기대했는데 원룸 부분은 도덕적으로 심판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기사 수정 : 7월 25일 / 미디어오늘은 오세현 전 시장의 부동산 허위 매각 의혹을 다룬 성명서가 A기자에게 전달됐고 1시간30분가량 뒤 나머지 아산시 기자들에게 배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경귀 캠프 관계자가 A기자에게 가장 먼저 성명서를 전달한 것은 맞지만 나머지 기자들에게 성명서를 배포한 시각은 A기자에게 전달하고 난후 2분 뒤와 1시간 28분 뒤여서 정확한 시간을 표기해 바로 잡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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