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천재지변 아닌 ‘인재지변’… 되풀이되는 저지대 참사

허시언 기자 2023. 7. 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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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 목숨 잃어
정부, 지난해 집중호우 사전 대비 약속
저지대 침수 사고 반복되자 '인재' 비판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이번 장마는 참 길었죠? 한 달 가까이 비가 내린 것 같아요. 멈출 때가 됐는데 끝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우리나라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잇따랐어요. 라노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딱 한 번 침수 피해를 겪은 적 있어요. 라노의 학교는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태풍 때문에 엄청난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배수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학교는 불어나는 빗물에 잠겨버리고 말았어요. 빗물은 성인 남성의 가슴 부근까지 순식간에 차올랐고, 학교는 마치 섬처럼 변해버렸죠. 학교가 잠겼을 때 내렸던 폭우는 엄청났었어요. 그런데 올해 장마 기간 동안은 그때보다 더 심한 폭우가 몇 번이나 내린 것 같아요.

지난 16일 충북 청주시 미호강 제방 유실로 침수된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에서 119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량’ 판박이 오송 참사

기록적인 폭우는 전국을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지난 15일 충북 청주의 오송 지하차도에서 대규모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사고는 인근 미호강 둑이 무너져 지하차도 안으로 다량의 물이 순식간에 들어차면서 발생했습니다. 이 구간은 하천 제방과 200여m 떨어져 있고 인근 논밭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사고가 예견됐습니다. 하지만 행정당국은 미호강에 홍수경보가 내린 뒤 4시간 30분이 지나도록 차량 통제를 하지 않았고, 배수펌프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제방이 무너지며 불과 2, 3분 만에 길이 430m의 지하차도가 약 6만t의 물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운행 중이던 차량 15대가 고립됐고 1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앞서 2020년 7월 23일 부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산 동구의 초량 지하차도가 잠기며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부산에는 시간당 최대 80mm의 비가 쏟아졌고, 도로를 타고 내려온 물이 순식간에 지하차도를 가득 채운 사고가 일어났죠. 지하차도 내에 차량 7대가 고립됐고, 9명은 가까스로 지하차도를 빠져나왔으나 3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고는 침수 대비 매뉴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재 당국이 이를 따르지 않아 차량 통제를 제때 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로 밝혀졌습니다. 전형적인 인재로 손꼽히죠.

지난해 8월 이례적인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한 후 정부가 철저한 사전 대비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올해 역시 비슷한 형태의 집중호우가 예고됐었지만 출입 통제·주민 대피 등이 늦어지며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 관리 부실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차도와 같은 저지대에서 침수 사고가 반복되면서 지하도 침수 참사는 사실상 ‘인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죠.

지난 17일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 입구에 차단시설이 가동된 모습. 이원준 기자


▮비슷한 얼굴의 재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모든 재난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재난에는 ‘하인리히 법칙’이란 것이 작용합니다. 큰 재해가 발생했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했고, 운 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사건이 300번 있었다는 법칙입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가 되는 현상이나 오류를 조기에 발견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사소한 사고는 큰 사고를 야기하고, 작은 사고 하나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연쇄적인 사고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 전에도 비슷한 사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저지대 침수는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일어났고, 부산에서도 이미 3년 전 아주 흡사한 사건이 발생했었죠. 하지만 사고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동의대 류상일(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설마 우리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겠어?’라는 생각에 따른 안전불감증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각종 재난은 똑같은 흐름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지자체가 안일했다는 것. 각각의 부처들 간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류 교수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집중호우 시 지하차도를 차단해야 한다”며 “지하차도가 차단되면 불편하겠지만, 안전은 불편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서울시립대 이수곤(토목공학과) 전 교수는 “재난관리에 있어서 국민이 빠져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하기 전 도움을 요청하는 신고전화가 몇 차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방재 당국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이미 지하차도가 다 잠긴 후였죠. 이 전 교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을 제일 잘 알아차리는 것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이지만 당국이 이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전 교수는 “분명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며 “사고 전 신고가 몇 차례나 있었는데 사전 경고가 묻히는 것이 말이 되냐”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이 전 교수는 “우리나라의 재난관리는 예방보다 복구에 치중돼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지자체 재난관리기금의 30%는 예방에, 70%는 복구에 쓰입니다.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예방하는 것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죠. 이 전 교수는 사고 예방에 돈을 들여도 당장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전 교수는 “인명피해가 일어나야지 문제가 있다고 파악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지 않고 왜 문제를 놓치는지 모르겠다. 인명피해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저지대 참사 막기 위해서는

류 교수는 “지하차도 자동 차단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사람이 판단해서 통제 여부를 결정하면 사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강우량과 지하차도 내 수위를 계산해 자동으로 차단기를 내리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 류 교수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차단 기준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며 “지역마다 기준이 다르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 교수는 “지역 주민으로 이루어진 ‘재난의용대’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참사부터 세월호,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주요 자연재해·사회재난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재해·재난 발생 이전 지역 주민이 먼저 사고 발생 가능성을 알아채고 이상 징후에 대한 제보와 신고를 잇따라 한 점입니다. 이 전 교수는 행정 시스템이 재해 가능 여부를 제대로 따질 수 없다면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주민에게 자경단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전 교수는 “재난은 살아있는 것”이라며 “재난상황은 시시각각 변한다. 이것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지역주민만 알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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