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수상한 소포

이명희 기자 2023. 7.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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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울산 동구의 한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독극물이 담긴 것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발견돼 경찰과 소방당국이 해당 우편물을 조사하고 있다. 울산소방본부 제공

주문한 적 없는 대만발 ‘수상한 소포’에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지난 20일 울산에 기체 독극물이 든 것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배달돼 이를 뜯어본 3명이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이송됐다. 다음날에는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에서 유해물질이 담긴 것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발견돼 170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수상한 해외 우편물을 받았다는 신고는 23일까지 2000건에 육박한다. 다행히 소포에서 독극물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수사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2001년 10월 ‘탄저균 우편물 테러’ 사건이 미국 전역을 백색가루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해 10월 타블로이드지 ‘선’의 로버트 스티븐스가 사무실로 온 정체불명의 소포를 열어본 후 탄저병 양성반응을 보이다 사망했다. 이어 다른 언론사와 의회에도 치명적인 탄저균이 묻은 우편물이 배달됐다. 이 테러로 모두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사건은 수사를 받던 세균 전문가 브루스 아이빈스가 기소를 앞두고 자살함으로써 어정쩡하게 종결됐다. 우편 테러범으로는 ‘유나바머’라 불린 미국의 수학자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악명이 높다. 그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망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1978년부터 17년간 수십명에게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3명을 죽이고 29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카진스키는 1996년 동생의 신고로 붙잡혀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 중이던 지난 6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국내에서는 우편 테러가 발생한 적은 없다. 당국은 전국에 배달된 우편물을 수사 중이다. 소포 중에는 립밤 등이 들어 있거나 비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부 소포의 발신지는 2020년 미국·캐나다에 정체불명의 씨앗을 배달해 논란을 일으켰던 대만의 주소지와 동일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우편물들이 ‘브러싱 스캠(brushing scam)’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브러싱 스캠은 온라인 쇼핑몰 평점 조작을 위해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을 다수에게 발송하는 사기 수법이다.

우편이 테러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끔찍하다. 이젠 소포가 오면 의심부터 해야 한다니, 언제 도착할지 모를 소포를 기다리느라 설레는 마음마저 빼앗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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