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國 청년들… 하나 된 ‘아리랑’… 촉촉이 젖은 서울의 밤

이강은 2023. 7.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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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 국제아카데미
만 34세 이하 글로벌 인재 육성 목표
2023년 3회째… 韓 26명 포함 52명 화합
정현식 작곡가 ‘무의식’ 전 세계 초연
‘임윤찬 스승’ 손민수와 베토벤 협연도
“세계적인 ‘K클래식’ 비결 몸소 체험
기술 뿐 아니라 팀이 되는 방법 배워”
지난 18일 저녁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 ‘아리랑’ 선율이 울려펴졌다. 다국적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국립심포니(KNSO) 국제아카데미 오케스트라’가 2부 공연(브람스 교향곡 제2번)을 마친 뒤 앙코르를 요청하는 관객들의 박수에 우리 민요 아리랑으로 화답한 것이다. 클래식 전용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을 기회가 드문 아리랑인데, 그것도 다국적 연주자의 하모니로 들으니 감동은 배가됐다. 오케스트라 지휘를 이끈 폴 다니엘과 단원, 관객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지난 1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국립심포니(KNSO) 국제아카데미 오케스트라’가 ‘임윤찬 스승’으로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협연하고 있다. 국립심포니 제공
이날 공연은 지난 3일 시작해 19일 수료식으로 마무리한 KNSO 국제아카데미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한 자리였다. 만 34세 이하 전 세계 음악 인재 육성을 위한 KNSO 국제아카데미는 올해 3회째를 맞았다. 국내 연주자 26명을 포함해 19개 나라에서 평균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52명이 모였다. 서로 처음 만난 3기 참가자들은 국립심포니 단원들과의 일대일 연주 교육,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실내악) 연주, 미샤 그로일(취리히 예술대 음악 생리학 교수)의 신체·정신 건강 관리 워크숍, 정현식 작곡가와의 만남 등을 거쳐 관객이 꽉 들어찬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섰다. 1부에서 정현식이 작곡한 ‘무의식’을 세계 초연한 뒤, ‘K클래식 스타’ 임윤찬의 스승이기도 한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호흡을 맞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려줬다. 손민수는 임윤찬과 곧 미국 명문 뉴잉글랜드 음악원으로 떠나 사제 관계를 이어간다. ‘고별 연주’를 세계 각국의 젊은 연주자와 함께 한 손민수는 앞서 이들과 세 차례 리허설을 했다. 그는 “매번 완전히 다른 오케스트라와 만나는 느낌이 들 만큼 서로의 음악에 즉각 반응하고 화합하는 순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인간을 화합하는 것”이라며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이런) 프로젝트가 한국에 더 활발히 생겨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아카데미 참가자들 반응도 비슷했다. 호주에서 온 비올리스트 말레나 스태넙(22)은 “친구들도 저와 같겠지만 오케스트라 공연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국의 현대음악과 민요, 클래식 고전인 베토벤과 브람스의 음악이 공존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가 세계 각국에서 모인 것처럼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시간들이 공존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서 2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스태넙은 브람스 교향곡 연주가 끝난 다음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뒤 또박또박 우리말로 인사하며 앙코르곡 아리랑을 소개해 갈채를 받기도 했다. 최연소 참가자인 바이올리니스트 빈센트 리만토로(19·인도네시아)는 “음악적인 기술뿐 아니라 한 팀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며, 순수 국내파인 바수니스트 조기화(33)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소통되는 게 신기했다. 음악만이 가진 특별함으로 느껴졌다”며 KNSO 국제아카데미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히, 외국 참가자들은 한국이 음악성과 연주 실력이 뛰어난 음악가를 줄줄이 배출하는 것에 놀라워하면서 그 비결에도 주목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엔(N)스튜디오에서 만난 네덜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신 시한(29)은 “유럽에서 한국 음악가들은 이미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결같이 기초가 탄탄하다”며 “오차 없이 정확하고 정교한 연주를 하면서도 자기 개성을 어떻게 가미할지 알고 연주한다”고 호평했다. 이번 공연에서 악장을 맡았던 그는 인도네시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뒀으며,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8)와 같이 공부했다. 인도네시아 명문 반둥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영국 왕립국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는 아르야 푸갈라(33)도 “한국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를 휩쓰는 현상이 정말 궁금했는데, (와서 보니) 한국 연주자들은 기초가 탄탄해서 어떤 문제나 새로운 상황을 대처하고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무료 음악교육 프로그램)’ 출신인 첼리스트 앙헬 미구엘(30)은 “베네수엘라에선 악기 소리만 낼 줄 알면 곧바로 오케스트라에 내던져지는데 한국에선 오랜 시간 기초를 닦고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어야 단원이 되는 것 같다”며 질서정연하고 철두철미한 교육 방식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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