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현장은 아비규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재난대응 구멍… 8곳 모두 "내일 내책임 아니다"
지난 15일 오전 8시 30분경, 갑작스럽게 몰려든 흙탕물에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는 아비규환의 공포에 휩싸였다. 터진 제방을 넘어온 강물이 버스와 승용차 등 17대를 덮쳤고, "살려달라"는 절규가 터져나왔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의 관계 공무원은 모두 책상에 앉아 전화만 돌리고 있었다. 14명의 소중한 목숨은 그렇게 격류에 묻혀 숨을 거뒀다.
궁평2지하차도 대참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재(人災)였다. 수십차례 신고가 접수되고, 홍수통제소에서 경고를 내리는 등 참사를 막을 기회가 많았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참사 단초 제공한 미호천 임시제방 붕괴>
오송 대참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호강과 지하차도의 안전을 책임지는 관계기관 전체에 안전불감증이 만연했다는 점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미호천교 임시제방은 이번 사고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5일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 침수는 강물이 임시제방(40m 정도)을 무너뜨리면서 시작됐다. 제방이 무너지자 6만여 톤의 강물이 400m 떨어진 지하차도로 밀려들면서 차량과 인명을 휩쓴 것이다. 제방 붕괴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포크레인이 보강작업을 하는 게 주민들에 의해 목격됐다.
미호천교 건설 주체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제방의 일부를 철거했다가 우기를 앞두고 6월 29일-7월 7일 다시 축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행복청은 임시제방을 설계빈도 100년의 계획홍수위(28.78m)보다 0.96m 높게 쌓았다며 단시간에 수량이 늘어나 강물이 둑을 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제방 붕괴의 원인을 극한호우로 지목한 것이다.
그 책임 소재는 향후 수사에서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시공사가 임시제방을 제대로 복구했는지, 감리단과 행복청이 적절하게 확인하고 관리감독을 했는지 밝혀야 할 부분이다. 미호강 전반을 관리하는 금강유역환경청이 업무를 적절하게 수행했는지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임시제방의 철거·복구·관리감독과 관련 시공사, 감리단, 행복청, 금강유역환경청 중에서 어느곳 하나라도 제대로 챙겼으면 이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시민들 신고 수십건, 담당기관 모두 구경만>
강물 범람 이후 교통통제 등 재난관리 시스템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지하차도가 침수되기 직전 행정과 민간에서 수십 차례 경고음이 울렸다.
환경부 산하 금강홍수통제소는 참사가 일어나기 4시간 전인 4시 40분경 미호강 미호천교 주변에 홍수경보를 발령하고 이 사실을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충북도, 청주시, 흥덕구 등에 통보했다. 2시간 뒤인 오전 6시 34분 경에는 유선전화로 구청에 교통통제와 주민 대피 등의 필요성을 알렸다고 한다.
시민들의 민원과 신고도 잇따랐다. 현지 주민과 마을 관계자. 차를 몰고 지나가던 시민들이 119, 112, 흥덕구청, 청주시, 충북도 등에 미호강의 범람과 지하차도의 침수 위험성을 알렸다. 각 기관에 접수된 신고와 민원이 수십 건에 이른다.
이처럼 경고음이 울렸는데 어느 기관도 교통통제를 하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인근 공사현장 감리단장이 청주시 등에, 행복청도 충북도에 여러 차례 위급 상황을 알렸다고 한다. 그러나 청주시는 지하차도는 충북도 담당이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충북도에도 알리지 않았다.
<충북도, 청주시, 행복청, 경찰 등 "난몰라">
이날 오전 8시 30분경 궁평2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차량 17대와 인명이 실종됐지만 김영환 충북지사는 9시 44분, 이범석 청주시장은 9시 40분에 상황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일어난지 1시간도 넘어 보고를 받았으니 사전 예방과 대처는 이미 물 건너간 뒤였다. 더욱이 김 지사는 이 사실을 알고도 괴산 수해현장으로 갔다가, 오후 1시 20분경에야 오송 참사현장을 찾는,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
교통통제 책임을 싸고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청주시는 지방도와 지하차도 관리가 충북도 소관이라는 입장이고, 충북도는 행복청 교량공사 현장의 제방 붕괴가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도로통제의 권한은 지자체에 있다며 떠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일 오송지하차도 참사 수사단 본부장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장으로 교체했다. 충북경찰청에서 수사를 진행했으나 경찰이 사고 당일 궁평2지하차도 교통통제를 못했다는 논란과 관련 수뇌부를 교체한 것이다.
교통통제의 책임 소재는 수사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각 기관에서 홍수통제소의 홍수경보와 통지를 어떻게 조치하고 보고했는지, 지방도와 지하차도의 관리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정확하게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문제의 지방도에 대한 관리가 충북도 소관인지 산하 지자체에 사무가 위임돼 있는 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상황 발생시 교통통제를 도로법에 따라 지자체가 하는지 도로교통법에 따라 경찰이 해야 했는 지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 초미 관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중대재해와 관련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 등을 처벌하는 법이다. 이 법은 공중이용시설 등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중대시민재해'도 처벌하도록 돼 있는데 궁평2지하차도(685m)는 공중이용시설에 해당된다. 유족들과 시민단체가 충북지사와 청주시장, 행복청장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해달라고 고발한 상황이다. 단체장과 중앙부처의 수장에 대한 첫 번째 처벌 사례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충북도와 청주시, 흥덕구청, 경찰청 어느 한 곳이라도 서둘러 차량을 통제했다면 14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할 이유이다.
물관리와 재난관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개선도 필요하다.
이번 사건과 관련 물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존재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미호강은 국가하천으로 환경부가 관리를 맡고 있다. 청주에서 조치원을 거쳐 금강 본류와 합류하는 하천으로 해마다 수해 위험성이 제기돼 왔다. 수십년 동안 환경생태계 보전을 이유로 강바닥의 토사를 준설하지 않아 하상이 매우 높아졌다. 미호강 일원 주민들은 "강바닥에 토사가 쌓여 조금만 비가 와도 제방 위로 물이 넘칠 것처럼 보인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댐이나 국가하천의 설계기준을 최대 500년 빈도까지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고, 아무리 제방을 높게 쌓더라도 준설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환경보호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며 환경부를 질타했다. 환경부가 치수의 중요성을 도외시한 채 생태보전에 치우쳐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물 관리 정책의 대대적인 궤도수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치수 외면한 물관리, 대대적 궤도수정 시급>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수와 가뭄, 무더위와 혹한 등 수십년-수백년 만의 재난과 재해가 일상화돼 가고 있다. 자연재난과 재해에 인식의 대변화와 구체적 과학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매뉴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처럼 일선 공무원들이 전화만 받고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재난대응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봐 정부와 지자체, 경찰, 소방 등 각 기관의 협업과 지원의 범위,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참사는 미호천교 임시제방 붕괴와 관련 시공사, 감리단, 행복청, 금강유역환경청 4곳, 궁평2지하차도 교통통제와 관련 흥덕구청, 청주시, 충북도, 경찰 4곳 등 모두 8개의 회사·기관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들 중에서 어느 한곳이라도 현장을 확인하고 움직였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총체적 안전불감증이고 업무태만인 것이다.
재난은 예고 없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걸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직을 만들고, 시설도 설치하고, 교육과 훈련을 실시한다. 예상 못한 재난이라 아무 일도 못했다는 것은 핑계고 변명이고 책임회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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