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동…현장선 “교권이랑 무슨 상관인가”

윤기은·전지현 기자 2023. 7. 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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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23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최근 발생한 초등 교사의 극단적 선택은 학생인권조례가 빚은 교육 파탄의 단적인 예.”(대통령실 관계자)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하고 있다. 교육감들과 협의해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학생인권조례로 교사에 대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고소·고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교사들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정부와 여당이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시동을 걸고 나섰다. “교권을 되살려야 한다”는 명목을 앞세우고 있지만 교육현장에서는 당정이 내세우고 있는 ‘교권 대 학생 인권’이라는 상호 대립 구도 자체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교사에게 ‘안전한 일터’를 마련해주지 못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는 대신 학생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는 ‘책임 전가’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7년의 교직 경력이 있는 고교 교사 A씨는 한 달 내내 아침마다 “휴대전화 수리 비용을 물어내라”는 학생 부친의 연락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매일 등교시 학생을 통해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했다 하교 때 돌려주는데 이 학부모는 막무가내로 “물어내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했다고 한다. 그는 교장·교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담임 선에서 해결하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했다. A씨는 교원평가에서 학생으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입기도 했다.

A씨는 23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악성 민원을 교사 혼자 감당하게 하고, 성희롱 피해에도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현실이 문제”라며 “교권 보호책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지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체벌하고 싶어하는 교사는 없다. 현장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정치적 의도로 학생인권조례를 손보려 하는 것은 교사에 대한 기만이자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서초구 초등학교 앞 추모공간을 찾은 20년차 초등교사 이모씨도 “학생 인권과 교권을 묶고 싶지 않다. 따로 존중받아야 하는 게 맞다”며 “학부모 응대와 관련해 교육청이 해주는 게 없고, 교사가 소리 내서 요청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 본인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8년차 초등교사 신모씨는 “교사도 학생이었고, 학부모일 수도 있다”며 “학생 인권의 반대급부에 교권이 있는 게 아니다. 학생과 교사가 교실에서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시민단체 교육희망네트워크 김옥성 대표는 학생 인권과 교권은 ‘별개’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학생인권조례는 무분별한 체벌, 학교 폭력, 복장 제한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 교권침해 사건이 늘어난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상황도 있다”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교권을 노동 현장의 문제로 바라보는 구조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초등교사 B씨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이 들어오면 ‘지침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 민원인이 난동을 피울 때 상위 기관에 넘기거나 제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성욱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소송이나 민원 제도를 통해 교사가 민원인으로부터 취약하게 노출되는 상황이 조성되면서 노동권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교사와 학생, 한쪽이 무너져서 다른 한쪽이 높아지지 않는다. 서로 존중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자리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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