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포커스] 온난화가 당긴 방아쇠… 지진·홍수까지 `도미노재난` 번진다
경제적 손실만 2조9700억 달러
인위재난 혼합된 복합재난 심각
AI 활용 방재 시스템 구축 필요
기후위기가 이끈 '복합재난'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도시 노후화, 과밀화 현상의 영향으로 인해 재난의 양상이 한 가지 재난에 그치지 않고 복합재난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세계적 이상기후로 인해 빈번해지는 자연재해가 사회적·국가적 재난의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하면서 연쇄적·대규모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도 폭우라는 자연재해가 대규모 사회적·국가적 재난을 초래한 복합재난이다. 이례적으로 쏟아진 집중호우로 인해 미호천이 범람해 임시 제방을 무너뜨리면서 한순간에 많은 양의 물이 지하차도를 빠르게 침수시켜 지나던 시민들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참사로 이어졌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와 함께 연쇄적·대규모 복합재난을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시민들의 생활 공간인 도시가 자연재해로 인해 주요 인프라인 도로, 철도, 지하철, 통신, 상하수도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도시는 물론 국가 마비 사태까지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나의 재난으로 끝나지 않는다"…'복합재난' 계속 된다=
세계적으로 자연재해에 따른 재난 피해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이 발표한 전 세계 자연재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년 간(2000∼2019년) 세계적으로 총 7348건의 자연 재난이 발생해 연간 평균 6만 명이 사망하고, 4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재난 피해를 입었다. 자연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약 2조9700억 달러에 달했다. 특히 이전 20년간(1980∼1999년)에 비해 자연재난 발생 빈도와 피해 규모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됐다.
UNDRR은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실패에 따른 세계 평균기온 상승이 대규모 자연재해 발생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지목했다.
문제는 기후변화, 대기오염, 도시 난개발, 사회기반 시설 노후화, 생물 다양성 훼손 같은 경제·사회·환경적 위기가 맞물리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신종 복합재난 위험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더 심각해지는 위험의 정도에 대응해 재해·재난 예방과 대응을 위한 방재 예산, 인력 확대뿐 아니라 도시 인프라의 설계 기준 전면 새로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AI(인공지능)·디지털 트윈·빅데이터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방재기술 개발과 시스템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한다.
특히 지질재해의 심각성이 과거와는 다른 수준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 8일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나 경북 예천·봉화 산사태 등은 지표나 지하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으로 인한 지질재해에 해당한다. 지진, 쓰나미, 화산 분화, 산사태 , 지반 침하·융기, 지반 함몰 등이 지질재해에 포함된다. 이런 지질재해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폭우·폭염 등 이상 기후의 영향으로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도시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요소와 연결돼 연쇄적·대규모 재난으로 피해를 키운다. 자연 재난과 인위 재난이 혼합된 새로운 유형의 복합 재난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中 쓰촨성·동일본 대지진 등 빈번해지는 '복합재난'=
복합재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것이 2008년 중국 쓰촨성에 발생한 규모 8.0 지진이다. 쓰촨성 지진은 이 일대 건물의 80%를 붕괴시켰고, 산사태와 암반 사태를 촉발해 2300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강 상류에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로 인해 댐이 범람하고 폭우 영향으로 하천 수위가 높아져 5년 뒤 마을의 80%가 침수되는 연쇄적인 피해로 이어졌다. 이는 대규모 지질재해(지진)가 다른 유형의 지질재난의 원인으로 작용해 피해 규모를 키우고, 기상 이변 같은 지질재난이 다른 형태의 자연재난과 인과 관계를 가지면서 '재해사슬'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역사상 최악의 지질재해로 기록된 2011년 동일본 대지진도 지진 발생 이후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방사능 오염으로 이어지는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자연재난과 기술재난의 상호 연쇄적 발생에 따른 신종 복합재난으로 꼽히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지질재난은 시공간을 달리하면서 연쇄적·대규모로 발생되는 만큼 지금까지 해온 것과 같은 차원에서 개별 지질재해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복합재난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해 예측과 예방을 복합재난 개념으로 확장해 피해 최소화와 재난 이후 대응·복구단계를 포함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도시 지하에도 '기후변화' 가속화…커진 지하 열원이 '건물 건전성'도 흔든다=
우리나라는 도시화가 1960년대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후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많은 도시들이 새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기존 도시들이 확장되면서 도시 집중화와 과밀화가 심해졌다. 더욱이 대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한정된 지상공간을 대체하기 위해 지하공간 개발과 활용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이로 인해 재난 발생 시 도심 지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난 대응에 관심을 덜 기울인 지하가 위험지대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 같은 도시 지하의 위험성을 보여주가 최근 발표되기도 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타 로리아 교수 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도시 지하를 운행하는 지하철에서 방출되는 열과 난방관, 상하수도관, 고압 통신케이블, 지역난방시스템 등 지하 매설 인프라가 열원으로 작용해 지하 온도를 높이는 '지하 기후변화'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시카고에 고밀도 상업건물이 몰려있는 '루프' 지역 지상과 지하에 온도센서 150개를 설치해 그랜트공원 땅에 설치한 3년 간의 센서 값과, 1951년부터 2051년까지 지하 기후변화 영향을 시뮬레이션한 값 등을 비교한 결과, 루프 지하가 공원 땅보다 10도 더 따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선행연구를 통해 지난 10년간 건물과 지하철 등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 도시 지하 100m의 평균 온도가 0.1∼2.5도 상승했다는 결과를 얻은 바 있다.
로리아 교수는 "지하 기후변화가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구조물과 건물 붕괴를 위협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과도한 지반 변형은 구조물의 기능과 내구성 문제를 야기해 균열로 이어지는 '조용한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장기적 관점의 지하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지하 기후변화로 인해 균열이 생긴 구조물에 지하수가 더 쉽게 유입돼 철근 콘크리트 와 자재 등을 부식시켜 건물 건전성에 영향을 주는 식이다. 로리아 교수는 "지하 기후변화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밀집된 도시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한다"며 "지하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 열원을 '열 수확' 개념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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