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돈 안되는 출판 일, 왜 하냐고요?
[6411의 목소리]
오주연 | 힐데와소피 대표
힐데와 소피, 두명이 작은 출판사를 만들어 운영한 지 4년이 지났다.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 창업할 때처럼 여전히 많은 이들이 걱정한다. 출판시장이 이렇게 어려운데 책이 팔리느냐고.
시장 상황만 생각했다면 애초에 창업을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어렵지 않은 시장은 없다. 많은 영역에서 창업은 업력이 쌓인 베테랑들이 뛰어드는 것이다. 출판 관련 경력이 없는 내게 출판사 창업은 쉽지 않은, 아니 무모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를 창업한 이유를 묻는다면, 내가 하는 일에 임금만이 아니라 다른 보상이 필요했다고 답하고 싶다.
출판사를 창업하기 전 마지막으로 일했던 조직은 소통도 잘됐고 임금도 비교적 괜찮았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답답했다. 어느 조직이든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처음 세웠던 목표나 꿈 대신 조직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게 된다. 나는 오래된 조직의 이런 숙명, 자본이 강요하는 질서에 순응하게 되는 데 반발심을 갖게 됐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혁신적인 기업이 있지만 이는 자본의 흐름을 이끌고 혁신을 위해 재투자할 여력이 있는 경우에나 가능하다.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이야기한 것처럼 화폐의 흐름은 시장의 합리성이 아니라 화폐의 사용과 흐름을 주도할 힘과 기술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곤 한다. 권력을 갖지 못한 이들은 권력이 강요하는 질서를 따를지, 따르지 않고 이탈할지 결정할 뿐이다. 그나마 이 질서 속에 있어야만 노동에 대한 금전적인 대가라도 얻을 수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내가 받는 임금이 합당한가? 질문하기 시작했지만, 나도 임금을 정확히 책정할 수 없었다. 그저 동일 노동에 사회적으로 책정된 임금을 기준으로 ‘힘들다’, ‘버겁다’, ‘뿌듯하다’, ‘만만하다’ 같은 주관적인 감각에 따라 보상 수준을 스스로 평가했다. 고용주도 함께 노동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도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동의 대가를 어떻게 책정해야 합당한지 더욱 혼란스러웠다. 내 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이 필요했다. 결국 일의 결과물, 재미, 성취감,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다음 일에 대한 기대감 등 내가 직접 관여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들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거대한 시장의 질서에 따라 정해진 임금으로 내 일을 평가하고 싶지 않다는 반발심의 결과였다.
직장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노동에 대한 보상체계를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출판사를 창업했다. 창업 당시 내가 가진 콘텐츠를 전달할 매체로 ‘책’이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도 책 한권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첫 책을 만들고 느꼈던 일의 결과물과 성취도로 인한 만족감은 부족한 금전적 보상을 상쇄할 만큼 컸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고민해서 기획하고, 저자와 번역가를 섭외하고, 원고를 기다리고, 편집하고 협의하고, 책의 겉모습을 디자인하는 지난한 과정은, 모든 게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 자체를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다들 출판을 사양산업으로 여긴다. 정부도, 거대 자본도 ‘돈이 안 되는’ 분야라고 치부하는데, 나는 역설적으로 이런 점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물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한다. 플랫폼을 통해 다른 편집 일을 하거나 디자인 외주, 강의, 교육 등으로 보조금 사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즉 여전히 숙제는 남아 있다. 잘 팔릴 만한 책을 만들면 되지 왜 팔리지 않을 책을 만드느냐는 질문도 여전하다. 그럴 때면 내 책장에 있는 책들을 한번 훑어본다. 대체로 잘 안 팔리는 책들이다. 출판되고 몇년 지난 책들인데도 책의 판권면을 보면 초판인 경우가 많다. 남의 일 같지 않다. 판매와는 거리가 먼 책들만 읽으면서 잘 팔리는 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비록 아직 판매량은 아쉽지만, 나의 결정이 곧 나의 일이 되고, 거대 자본이 강제하는 질서에서 조금은 비켜나가 있다는 점에 만족하며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어려운 출판시장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출판 일을 하고 싶은 이유이자, 현재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신림동 흉기난동, 왜 또래 젊은 남성들만 공격했나
- 대통령실 “천공이 아니라서 말 안 했다”…풍수가 존재 함구 논란
- ‘오히려 손해’ ‘문제점 알아보려’…코인 거래 여야의원들 해명 하지만
- 모닝콜 해라, 이 문제 내라…교사들, ‘학부모 갑질’ 공유하며 울분
- 한 달간 700㎜ 넘게 온 전라·충청, 25일까지 최대 200㎜ 더 온다
- 천공 대신 등장 풍수·관상가 “악어상 윤 대통령, 경제 살릴 것”
- 우크라이나 대반격 이대로 끝나나…“진흙길 시즌까지 석 달 남아”
- 바닷가로 몰려갔다…그리스 로도스섬 최악 산불에 수천명 대피
- 폭염에 쓰러지지 않도록, 다시 쓰는 당신의 노동권
- “고생 많았구나, 라인 막아내며 기형 돼버린 내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