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누구의 위기에 주목하나"…소외된 재난, 공동체미디어 해답 될까

노지민 기자 2023. 7. 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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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주최, 방송문화진흥회 후원 '돌봄과 공동체, 미디어의 역할과 가능성' 세미나
재난 상황에서 이주민·장애인 위한 지역공동체 필요…공동체라디오, 정권 따라 위기 "줬던 예산도 빼앗아"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전국적인 '극한 호우', 정체불명의 '노란 소포' 등으로 재난문자 발송이 잇따르고 있지만 한글을 모르는 이주민들은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행정안전부의 외국인용 재난정보 안내 앱 '이머전시 레디'(Emergency Ready)는 접근성이 낮은 데다 영어·중국어·일본어 외의 외국어는 제공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레거시 미디어는 재난·위기관리의 빈 틈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주류의 언어와 플랫폼에서 소외된 이들은 “방송·언론이 누구의 어떤 위기에 주목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지역 공동체에선 스스로 사회가 돌보지 않는 공백을 메꾸려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21일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가 주최하고 방송문화진흥회가 후원한 '돌봄과 공동체, 미디어의 역할과 가능성' 세미나를 통해 이런 시도들에 대한 이야기가 공유됐다.

▲행정안전부의 외국인용 재난정보 안내 앱 '이머전시 레디'(Emergency Ready) 메인화면 및 언어 설정 화면

경기도 안산시 공동체라디오 '단원FM'(88.7MHz)의 정혜실 본부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저희는 의무는 없지만 사업계획서를 낼 때부터 (지역에) 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거냐를 끊임 없이 요구 받았다. 이주민은 한글로 문자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재난안전 문자로부터 소외된 이주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방송의 부족함을 공동체 라디오로서 메워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대구 달서구 지역에서 이주노동자와 주민들 이야기를 전하는 '성서공동체FM'을 단원FM이 지향할 모범 답안으로 꼽았다. 그는 “원래 재난 방송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아무도 밖으로 못 나가는 상황에서 방송마저 쉬어 버리면 지역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가능한가 생각했다. 주류 미디어가 안산 지역을 특별히 집중해 말해주진 않는다”고 말했다.

100여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안산에서 단원FM은 '10개국어 방송'을 목표로 삼았다. 현재 네팔어 방송(너머스테 코리아), 중국어 방송(歌之 중국음악사랑방) 등이 제작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이주민들의 언어를 다 할 수 없지만 10개국어를 마음 먹은 건 안산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주민을 없는 시민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단체들이 많지만 국민의힘이 지원하는 단체와 지원하지 않는 단체는 갈라치기되어 있다. 이동권 투쟁을 하는 곳과 하지 않는 곳”이라며 “단원FM은 어느 곳을 지향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단원FM에 참여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는 “장애인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존재하고 있다는 말을 하더라”며 “말하기 힘들어도 말을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비장애인에게 명확히 들리지 않아도 '내 목소리'로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이 부분을 미디어에서 어떻게 살려낼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단원FM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네팔어, 중국어 방송 영상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학생·교사 262명을 떠나보낸 세월호 참사도 단원FM이 놓지 않고 있는 지역 이슈 중 하나다. 세월호 유가족 2명이 단원FM에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8월에는 기후위기와 재난에 중점을 둔 지역 공동체미디어들의 앱이 공개될 예정이다. 앱에 참여하는 곳들은 매주 1시간씩 기후위기를 다루기로 했다. 정 본부장은 “공동체라디오가 재난에 대한 대비, 안전 등 기후위기, 넓게는 전 지구적이지만 작게는 지역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며 “공해물질이 수시로 배출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저희로서는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충청북도 옥천군의 '옥천FM'은 청소년들이 지역의 다양한 이들과 소통할 가교로서의 역할도 강조했다. 옥천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해수 편성국장은 “대학 졸업하고 다시 옥천에 갔을 때 지역 미디어와 연결되는 일을 통해 지역 공동체에 대해서 알게되고 우리 동네에 이렇게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이 있구나, 나도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지역 축제를 활용한 생방송을 진행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다양한 주민들이 참석했다. 장애인들이 나오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 휠체어 이용자가 방송을 하는 모습 등을 처음 접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국장은 “투표권이 없어 여러 의제에서 소외되는 청소년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역에서 다양한 세대가 소통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며 “청소년 이야기가 전체 방송 40개 중 약 10개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지역 내 청소년 공간이 부족해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은 옥천FM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이야기가 전해지는 공간, 주민이 주인이 되는 미디어 공간이 되었을 때 옥천 공동체라디오가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고 지역사회 돌봄 가치를 실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옥천FM 유튜브 채널 갈무리

한편 정권에 따라 널뛰는 정책이 공동체 미디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혜실 본부장은 “저희는 정권을 엄청 탄다. (허가 받기까지) 15년간 정부 변명엔 주파수가 없다는 게 아니라 지역의 소소한 소리까지 듣기 싫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 같았다”며 “박근혜, 이명박 정권에선 시도조차 되지 못했고 문재인 정권 들어설 때 공약사항으로 들어갔던 게 유효하게 돼서 정권 말에 다급하게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정권이 바뀌고는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예산도 부족하고, 지자체 호응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부 지역의 사례를 들어 “(지자체가) 줬던 예산도 빼앗고 있다. 상주, 구리 지역에 대해선 예산을 반납하라, 이자까지 물어라 하면서 정권에 의해 공동체 라디오가 지자체로부터 외면당하는 위태로운 시기”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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