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혹은 진실

한겨레 2023. 7. 23. 18:1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초록머리 언니가 그 집 딸래미와 현관문 넘는 걸 봤다더라, 하는 소문은 어린 나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분은 내 스포츠머리가 깎은 밤처럼 예쁘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를 수용하며, 나는 반갑게 인사하는 것으로 각별함을 드러낸다.

그건 왜 이렇게 존재가 받아들여진 것 같은 느낌을 주나.

어린 시절의 나는 현실도피로 책과 인터넷에 빠져들었는데, 그것들은 이제 와 현실을 만들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말고]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말고] 서한나 | <사랑의 은어> 저자

초록머리 언니가 그 집 딸래미와 현관문 넘는 걸 봤다더라, 하는 소문은 어린 나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레즈비언이라는 존재는 머리가 검은색이래도 용서 못할 칼단발의 사회부적응자로 통했다. 눈동자가 검고 머리가 초록색인 그 선배를 마주친 날이면 잔상이 오래 갔다. 소문과 편견은 그를 혐오스럽고 신비롭게 만들었다.

여학교에서 온갖 기운을 느끼는 여자애는 인터넷에 중독될 수 있다. 자기를 빗대어 볼 만한 글들은 여자 아이돌 팬카페에 있었다. 동성애자는 눈빛에서부터 티가 나고, 뒤에 여자가 있으면 반드시 문을 잡아준다 같은. 그는 신촌공원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언니들이 궁금했지만 대신 익명의 토막글을 보며 상상했다.

시간이 흘러 여자들은 레즈비언 농담을 즐기게 되었다. 부치(“ 여성적인 젠더 규범, 스타일, 정체성보다 남성적인 것을 더 편안해 하는 여자를 가리키는 레즈비언 집단의 용어 ”, 게일 루빈)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것이다. 부치는 글을 쓰지 않는다 따위의.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가 쌓였다.

서울 합정동의 요릿집에서 너무 많은 예술가를 보았다. 동성 연인을 찾다 탈진한 친구에게 “거기서 앉아있으면 연애하게 되지 않을까요?” 물었고 그가 말했다. “거긴 퀴어계의 역전할머니맥주예요 … .”

친한 사람이 생기면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간다. 초등학교와 시장을 보고, 거기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얼마나 멀어지지 못했는지 생각한다. 대전 가수원동 아이들은 신흥 개발지역을 의식했다. 관저동 애들은 브랜드 옷만 입고 다녀서 가수원을 무시한다던데 … . 야심 있는 아이들은 이 동네를 부족하게 여겼다. 그 평가는 자신에 관한 것이기도 해서 우리는 동네를 내치지 못했다.

내 기저귀를 갈아주었던 이웃은 아직 가수원동에 산다. 그분은 내 스포츠머리가 깎은 밤처럼 예쁘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를 수용하며, 나는 반갑게 인사하는 것으로 각별함을 드러낸다. 우리의 삶은 다르게 흘러가지만 어릴 때 봤다는 이유로 서로 반갑다. 그건 왜 이렇게 존재가 받아들여진 것 같은 느낌을 주나. 나는 돌아와 친구들과 정치문화경제사회에 관해 떠들며 난자 냉동을 검색한다. 나는 이 “ 시골” 동네에서 내 몸과 정신에 들이차는 변화를 맞았고,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정서와 “급진적인” 사상을 함께 지니게 되었다 .

대전은 젊은 레즈비언이 오고 싶어 하는 도시다. 현아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 전화번호를 남기고 3 분 거리에 있는 선아의 작업실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 강아지와 밤 산책하다 레즈비언이 득실거리는 주점에 들러 사장님과 인사한다. 그는 인천에서 이주했다. 몇사람이 대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아는 작업실에서 피자를 먹고 가위질을 돕는다.

이들이 사는 방식을 설명할 문장은 일라이 클레어의 책 < 망명과 자긍심 > 에서 찾을 수 있다. “지리적인 뿌리가 아니라 열정, 상상,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선택한 가족들 … ” 내가 원할 때 충분히 대상화될 수 있는 이 공간은 금욕과 고립을 지향하느냐고 오해받는 비혼 여성의 활동과 함께 활발해졌다. 나는 이 커뮤니티 안에서 섹슈얼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자신이 겪는 분열을 규명할 언어를 가질 때 소수자는 그로기 상태에서 벗어날 힘을 가진다. 난 대충 이런 건가 보네 … 그건 그렇고 …

사업하는 레즈비언은 다른 여자를 고용한다. 한 여자는 다른 여자의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 모든 것이 매끄럽지 않지만 전보다 자발적일 수 있다. 이들은 글을 쓴다. “ 공통언어 ” 안에서 독자는 계속해서 생겨난다. 어린 시절의 나는 현실도피로 책과 인터넷에 빠져들었는데, 그것들은 이제 와 현실을 만들었다. 지금 나는 그것을 살고 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