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갚는 돈 줄지만 평생 빚 족쇄? 50년 만기 주담대 득실 따져보니

김지섭 기자 2023. 7. 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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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전세 7억원대 아파트(전용 면적 84㎡)에 사는 직장인 박모(41)씨는 요즘 집을 살지 고민하고 있다. 연초 떨어진다던 집값이 다시 꿈틀대는 데다 최근 은행에서 출시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대출자에게 유리하단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대출 만기가 길어지면 월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서 이번에 집을 장만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 긴축 기조 속에서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달 들어 5대 은행에서만 가계대출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다시 3천억원 이상 늘어 금융권 전체로 4개월 연속 증가를 눈앞에 뒀다. 사진은 23일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 도심 아파트./연합뉴스

최근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기존 30~40년에서 50년으로 늘린 상품을 잇따라 내고 있다. 이에 주택 매매를 저울질하는 실수요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DSR) 등 규제를 감안할 때 만기가 늘어나면 대출 한도가 올라가고, 은행에 매달 갚아야 할 돈은 줄어든다. DSR은 연소득에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모든 대출금의 원리금(원금+이자)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가리킨다. 하지만 50년 만기 대출을 선택하면 이자 총액은 불어나고, 평생 ‘빚’에 짓눌릴 수 있는 만큼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김의균
그래픽=김의균
그래픽=김의균

◇50년 만기 대출, 한도 늘고 원리금 부담 줄어

50년 만기 대출은 지난 1월 Sh수협은행이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대구은행이 50년 만기 상품을 내놓은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NH농협은행과 하나은행, KB국민은행이 차례로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만기를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10년 연장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50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속속 등장하는 것은 은행과 소비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은 은행 입장에서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기에 돈 떼일 염려 없이 큰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효자 상품이다. 집을 사고 싶지만 대출 한도가 부족하거나 이자 부담이 커서 망설이던 소비자도 만기를 늘리면 숨통이 트이기 때문에 당장 나쁠 것이 없다.

예컨대 연소득 5000만원인 사람이 현행 DSR 40% 규제에 맞춰 금리 연 4.36%(지난달 5대 은행의 원리금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로 돈을 빌린다고 할 때 만기가 30년인 경우 최대 대출 한도는 3억3400만원이다. 하지만 만기가 50년으로 늘어나면 대출 한도가 4억600만원으로 증가한다. 만기 50년이 되면 매달 은행에 내는 돈도 줄어든다. 은행에서 원리금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로 3억원을 빌린다고 할 때(금리 연 4.36%) 30년 만기 상품은 매달 145만9203원을 내야 하지만 50년 만기는 122만9539원만 내면 된다. 매달 23만원가량 부담이 줄어든다.

◇시세 차익 따지면 이익...”‘빚 폭탄’은 유의”

하지만 50년 만기 대출은 이자 총액이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 예컨대 3억원을 30년간 갚을 경우(금리 연 4.36%), 이자 총액은 2억3800만원인데 50년간 갚으면 이자 총액이 4억3800만원으로 늘어난다. 5억원을 50년간 빌리면 이자 총액이 7억3000만원에 달해 만기 30년(3억9700만원)보다 3억3300만원이나 많아진다.

그럼에도 50년 만기 상품이 호응을 얻는 것은 집값이 꾸준히 오를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不敗)’ 신화가 굳건하기 때문이다. 초장기로 목돈을 빌려도 집값이 크게 오르면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실행 3년 이후 중도상환수수료를 전액 면제해준다. 이 때문에 짧게는 3~5년, 길게는 10~20년 집을 보유하다 가격이 크게 뛴 집을 팔고, 남은 대출금을 갚아 쏠쏠한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다. 또 대출 실행 3년 뒤 더 낮은 금리 대출이 있으면 수수료 없이 갈아탈 수도 있다. 그래서 당장 대출 한도가 크고, 이자를 적게 내는 초장기 상품이 인기를 끄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선 주택 매매 활성화를 위해 만기가 105년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스웨덴)까지 출시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영국을 비롯해 스페인·프랑스·포르투갈에서도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늘었고, 핀란드에선 60년 만기 상품도 나왔다. 만기가 50~60년을 넘는 일부 상품은 자손이 이어받아 돈을 갚는 구조로까지 설계돼 있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경우, 초장기 주택담보대출은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초장기 대출은 집값이 떨어지면 대출 원금을 상환하기 어렵고, 노후에 이자 부담만 커지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과열되지 않게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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