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때리면 맞고, 학부모 폭언에 냉가슴… 교단이 멍든다 [학생 인권 아래 추락한 교권 <상>]

주원규 2023. 7. 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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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교권침해 심의 3035건.. 막무가내 악성민원에 '무력감'
교직 떠나는 젊은 교사 증가세.. 교권침해 대응 수단 사실상 없어
법률 전문가 "훈육지침 규정 시급"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국교사모임 주최로 열린 서초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23.7.2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사진=뉴스1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후 '교권 회복'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 등을 담은 '학생인권조례'가 주요 교육청에서 제정돼 시행됐지만 이로 인해 교사의 정당한 교육권도 학생 인권보호라는 이유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최근 들어 학교를 떠나는 젊은 교사들이 늘면서 '학생 인권'과 '교권' 사이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개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편집자주>

#.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30대 교사 이모씨는 지난해 자폐스펙트럼을 겪는 아이의 담임교사를 맡으며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아이가 반 친구와 다퉈 다른 학부모에게 "이 아이는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부모는 "돈 받고 다른 아이 편드는 것이냐"며 막말을 쏟아냈다. 이씨는 "요즘 아이 이름만 불러도 '아동학대'라며 학교에 찾아와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학부모들의 악성민원 때문에 교권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토로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교직사회가 들끓고 있다. 교사의 사망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동료 교사들을 중심으로 고인이 악성민원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교사들은 교권이 바닥까지 추락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아이들 불러 경위 물어봐도 아동학대"…교권침해 年 3035건

23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권침해 심의건수는 3035건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수업이 본격화된 2020년에는 1197건을 기록했고, 지난 2021년 2269건으로 다시 늘어나 지난해 절정에 달했다.

본지가 만난 교사들은 이 같은 교육 현실에 대해 "더 이상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겪은 교권침해 사례는 교사에 대한 기망과 폭력, 성희롱, 학부모의 악성민원 등 다양했다.

문제는 교사들이 교권침해에 대응할 마땅한 수단조차 없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잘못에 대해 정당한 지도를 해도 지난 2014년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따라 '아동학대' 사례로 신고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30대 교사 김모씨는 몇 년 전 담임을 맡았던 초등 6학년생들로부터 아동학대로 신고당했다. 욕설도 폭력도 사용하지 않았던 김씨가 아이들을 불러 경위를 묻자 "우리가 잘못한 건 맞지만 선생님이면 좀 받아주지 그랬냐"며 신고 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제 아이들을 지도만 해도 신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교권보호를 위해 학교 측이 교권보호위원회 등의 제도가 있지만 실제적 효과는 없다. 전북 지역의 2년 차 중학교 교사 조모씨(28)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봤자 힐링캠프나 개인 상담비용 지원 같은 피상적 대처가 이뤄지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교사들의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현장에서 학부모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서이초에서 삶을 마감한 A교사에 대한 동료 교사의 추모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열린 추모제에는 전국에서 모인 선생님들과 시민 2300여명이 조문에 참여했고 1500개 넘는 근조화환이 학교 담장을 둘러쌌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는 4000여명의 교사들이 추모집회를 열기도 했다.

■"정신과 3년 다녔다", 떠나는 젊은 교사들

교권침해를 버티지 못해 교단을 떠나는 젊은 교사도 늘었다. 국민의힘 권은희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간 5년차 미만 퇴직교사는 589명으로 전년 303명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7년 차 교사 조모씨(31)도 내년 2월 퇴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정신과 치료를 3년 이상 다니다가 결국 내 삶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전했다. 몇 해 전 초등 4학년 담임을 맡을 당시 "남자친구와 모텔을 다니느냐"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받기도 했고, 설명을 극적으로 했다고 "정신병자 같다"는 막말을 들었다.

조씨는 "환경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며 학부모가 교육청 민원을 넣은 적도 있었다"며 "또래 교사들은 이런 일들이 쌓여 퇴직을 고민하고, 실제로 매년 우리 학교에서도 한 명씩은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는 '내 자녀 권리'만 챙기도록 설계된 제도적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고의 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당한 지도도 아동학대로 치부돼 각종 민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교사 출신인 나현경 변호사는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제언했다. 그는 "몰상식한 일부 학부모가 문제로 지적되나, 이를 방관하는 제도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며 "지금도 학교 곳곳에서 학부모의 민원을 우려해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만류하는 관리자와 이들을 두둔하고 방조하는 교육청의 행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명확한 훈육지침을 규정해 교사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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