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이제야 "교권보호"… 정치권의 뒷북

김세희 2023. 7. 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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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폭행·모욕 등 매년 증가세
큰 사고나야 반짝관심 고질병
국회 표류 수해방지법 닮은꼴
"교내 민원 취합 별도기구 둬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교권 붕괴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간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잇따랐지만 정치권은 무관심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이 터지고서야 정치권은 '교권보호' 논의에 들어가기로 했다. 큰 사고가 나야 반짝 관심을 보이는 고질병이 또 도진 것이다. 수해 방지법안이 국회서 표류하고 있는 것과 닮은꼴이다. '사후약방문' (때가 지난 뒤 어리석게 애를 쓰는 경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교육활동침해 심의건수'에 따르면 △2018년 2244건 △2019년 2662건 △2020년 1197건 △2021년 2269건 △2022년 1학기 1596건이다. 매년 2000건이 넘는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발생했다. 상해·폭행, 모욕·명예훼손, 성폭력 범죄, 교육활동 부당 간섭 등이 주를 이뤘고, 학부모가 가해자인 경우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 2021년 11월에는 인천의 한 초등학생 학부모가 수업 중인 교실에 찾아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폭행해 상해를 입힌 사건까지 일어났다. 같은 해 9월에는 경남의 한 고등학생 학부모가 전화, 메시지, 학교 방문 등을 통해 부당하고 반복적인 민원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몇년 전부터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교권회복과 관련한 법안은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이하 교원지위법)11개가 상임위 접수 및 심사 단계에 있다. 특히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발의된 교원지위법은 학생의 교권침해 행위를 생활부에 기록하는 내용, 교권보호위원회를 지역청 관할로 이관하는 내용,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 아동학대 면책권을 부여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번 비극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야는 교권침해 생기부 기록 등을 놓고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특히 민주당측의 반대에 막혀 있다. 오는 28일 교육위 전체회의를 앞두고도 조희연 교육감 출석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결국 교사들이 나섰다. 이번 사건에 대한 문제 의식을 느낀 개별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였고, 지난 22일 서울 종로 보신각 일대에서 '서이초교 교사 추모 및 교사 생존권 위한 전국 교사 집회'가 열렸다. 숨진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검은색 옷과 검은색 마스크 등을 착용한 참석자들은 '교사 생존권 보장'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진상규명 촉구한다', '교권수호 이뤄내자' 등 구호를 외쳤다. 교사들은 연단에 올라 교권침해 실태를 고발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이날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 앞에서 극단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했다.

총선표를 우려한 정치권이 부랴부랴 나섰다.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3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심도깊은 토론을 통해 관련법(교원지위법)이 통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김 의장은 교사에 대한 학부모 민원과 관련해 "교사와 학부모 간 대면 차단, 생활지도 전담 교사제 도입, 상담교사 배치 확대, 보호자 학교 방문시 사전 예고 등의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며 "교권침해 행위의 생기부 기록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전날 고인의 분향소를 조문한 뒤 페이스북을 통해 "선생님들이 가르칠 자유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람이 희생되고 나서 정치권이 논의한다는 것은 예방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학생들의 인권뿐만 아니라 교사 인권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대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내에 교사를 향한 민원을 취합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를 만들고, 교육청 산하에는 교사-학부모·학생 간의 법률적 문제를 지원해줄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며 "더 이상 교사를 방치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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