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한 갈등, 도구가 된 성폭력…실체 드러나는 인도 마니푸르 참상
인도와 미얀마 국경지대인 인도 마니푸르주에서는 지난 5월 3일(현지시간)부터 메이테이족과 쿠키족 간의 유혈 충돌이 진행 중이다. 마니푸르주에서 발생한 성범죄 영상이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되면서 ‘마니푸르의 참상’이 비로소 조명되고 있다.
현지 매체인 인디언 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영상은 유혈충돌 발생 하루 만인 5월 4일 마니푸르 캉폭피의 한 마을에서 촬영됐다. 26초 분량의 이 영상에는 한 무리의 남성들이 여성 두 명을 발가벗겨 길거리에 끌고 다니는 장면이 담겼다. 남성들은 울부짖으며 자비를 호소하는 여성의 몸을 긴 막대기로 더듬으며 들판으로 끌고 갔다. 메이테이족 남성들이 이날 쿠키족 거주지를 습격해 남성 2명을 살해한 뒤 그들의 가족을 상대로 벌인 일로 전해졌다.
동영상이 공개된 것은 그로부터 두달이 훨씬 넘어서인 지난 19일이었다. 이후 인도 전역에서 가담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CNN에 따르면 마니푸르 인권단체가 용의자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마니푸르원주민단체(ITLF)는 성명을 내고 “쿠키족 공동체를 상대로 잔혹행위가 벌어졌다”며 “여성들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들은 지난 18일 고소장을 제출했다.
나롄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 20일 “인도 시민사회를 부끄럽게 만든 사건”이라며 “가담자들은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 관련 첫 언급이었다. 그제서야 수사가 시작됐다. 인도 제1야당인 말리카르준 카르게는 모디 총리의 뒤늦은 대응을 두고 트위터에 “데모크라시(민주주의)를 모보크라시(Mobocracy·군중심리에 휘둘리는 중우정치)로 바꿨다”고 비난했다.
마니푸르주 현지 경찰이 범행을 방조했다는 폭로도 쏟아지고 있다. 쿠키족 피해 여성들은 “경찰이 사건 당일 마을에서 달아났던 우리를 발견하자 메이테이족에게 넘겼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성범죄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도이체벨레는 마니푸르 주도 임팔에서도 지난 5월 5일 20대 여성 2명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됐다는 폭로가 나왔고, 5월 6일 또 다른 20대 여성이 알몸 상태에서 불에 타 숨진 채로 발견됐다고 현지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모두 경찰이 범행 사실을 알고도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국의 늑장 수사와 묵인 속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부족 간 공격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니푸르주의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메이테이족은 주로 임팔에 거주하며 힌두교도이다. 쿠키, 나가족은 산악지대에 살며 대부분 기독교를 믿는다. 이들 부족 간 갈등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대규모 유혈 충돌은 30년 만에 처음이다.
힌두 민족주의 성향인 집권 인도인민당(BJP)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마니푸르에서 BJP 정치인들은 미얀마인과 인종적으로 연결된 쿠키족을 외부인, 이민자 등으로 묘사하거나 마약 범죄와 연관짓는 발언을 해 왔다. 메이테이족 사이에서 미얀마 쿠데타 이후 난민이 몰려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주정부는 지난해부터 습지·삼림보호 명분으로 쿠키족과 나가족 공동체 퇴거를 추진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 법원이 메이테이족을 ‘지정부족’으로 인정한 것은 합헌이라며 메이테이족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자 갈등이 폭발하며 유혈 충돌이 시작됐다. 지정부족은 원래 차별 받아온 소수민족을 위한 제도로, 지정부족으로 인정되면 주택·토지구입·대학입시 등에서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난 5월 유혈 충돌이 시작된 후 7월 중순까지 130명이 사망하고 6만명이 피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공개된 성범죄 동영상은 특히 여성이 표적이 됐음을 드러내고 있다. 인도 대법원에서 소송을 맡은 변호사 브린다 그로버는 “우리는 인도에서 집단 충돌이 있을 때마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표적으로 삼는 것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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