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심사 첫 단추’ 국회 소위원회, 총선 걱정에 ‘뒷전’
“의결정족수 됩니다.” (김종민 법안심사 소위 위원장)
“의결하지 말죠, 제가 나갈게요.” (윤창현 의원)
지난달 20일 열린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순직 의무군경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순직 의무군경의 날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의결 보류를 요구했다. 소위원장인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대로 의결을 진행하려 하자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그러면 내가 나갈 테니 의결하지 말자”며 퇴장했다. 결국 의결 정족수 미달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법안소위 의결을 지연시키기 위해 고의로 의결 정족수를 미달시킨 것이다.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는 법안 처리의 첫 단추다. 법안에 대한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검토가 이뤄진다. 상임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전체회의,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법안이 비로소 완성되지만 소관 상임위 소위원회만큼 법안 하나하나를 두고 세밀한 심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입법 여부와 내용은 대부분 법안소위 단계에서 결정된다. 정무위 소위 사례처럼 의도적으로 정족수를 미달시켜 쟁점 법안 처리를 막으려고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법안소위의 중요성은 경시되곤 한다. 주로 비공개로 진행되다 보니 언론과 시민의 관심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의원들의 참석률도 떨어진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의원들이 입법보다 지역구 활동에 집중하느라 소위원회에 더욱 무관심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23일 경향신문이 국회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올해 열린 소위원회 166회 중 140회가 위원 전원 참석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의결 정족수인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의결이 미뤄진 횟수가 17회에 달했다. 의원들이 회의 도중 자리를 떠도 회의록에 기록되지 않아서다. 기록상 위원들이 전원 참석한 회의에서도 의결 정족수인 과반을 채우지 못해 법안 의결이 미뤄지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했다.
이렇다 보니 법안소위 의결 정족수 확보를 두고 실랑이가 종종 벌어진다. 지난 4월 20일 열린 정무위 법안심사 제2 소위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논의됐다. 이 법안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국가기관이 그 이행내역 보고 대상을 국회에서 소관 상임위로 구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당시 회의에서 한 명이 모자라 의결이 지연됐다. 강병원 민주당 의원이 “(한 명이 추가로) 오시면 (정족수가 되니깐) 의결할 거냐”고 물었으나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졸속으로 넘어갈 수 없다”며 의결을 거부했다.
의원들의 무관심으로 법안소위 입법이 난항을 겪는 경우도 있다. 지난 5월24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상표법 의결을 앞뒀을 당시에는 여당 의원들의 이석으로 인해 의결 정족수가 부족해졌다. 회의록상 소위 소속 여당 의원 5명이 모두 참석했지만 의결 시점에선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민주당 소속 김한정 소위원장은 “정부·여당에서 이석을 이렇게 많이 하고 법률안 심사를 하게끔 하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전세사기특별법의 시급한 제정이 요구됐을 당시에도 일부 의원들은 소위원회 자리를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일 특별법과 관련해 처음으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소속인 김정재 소위원장은 “자꾸 시간이 다가오니까 다 가셔서 의결 정족수가 부족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12명 전원 참석으로 시작한 회의는 후반부 법안 의결 시점에서 의결 정족수인 7명을 겨우 지켰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소위원회 개최는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의원들이 지역구 활동에 매달리느라 소위원회 참석을 소홀히 해서다. 여야 원내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소위원회 ‘필참’을 당부했지만 잘 먹히지 않는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공천 시즌이 되니까 의원님들이 소위원회를 하다가도 법안심사는 나 몰라라 하고 자리를 비운다”며 “여당 의원 중 나 혼자 자리를 지킬 때도 많다”고 말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소위원회는 실질적인 법안 심사가 이뤄지는 자리”라며 “소위원회 참석은 여야를 불문하고 의원들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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