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없어 기계도 못돌려"… 상생임금, 中企 인력난에 '단비'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축소
정부지원없인 폐업 줄 이을판
노후산단에 상생패키지 확대
채용지원·임금격차 해소 기대
반도체·車, 기술이전도 논의
파견법 손질해 지원사격해야
지난 18일 찾아간 경기도 안산의 반월산업단지. 국내 굴지의 반도체 대기업의 3차 협력사인 A사는 작업으로 한창 바빠야 할 오전 시간 중에 설비 30% 이상을 '유휴 상태'로 놀리고 있었다. 설비를 가동할 수 있는 인력이 올 상반기에 2명 줄었기 때문이다. 전체 임직원이 30명이 되지 않는 A사 입장에서는 기계를 더 돌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형편이다.
A사 관계자는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내고 있지만 인력을 충원하기 쉽지 않다"며 "최소 1년 이상 교육이 필요한 구직자들도 원도급 기업에 준하는 연봉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원도급은 오히려 계약 단가를 낮추려고 한다"며 "정부 지원이 없으면 폐업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3월 발표한 조선업 상생 패키지를 다른 산업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반도체와 자동차 분야 중소기업들은 기대감 속에 업종별 특성이 반영돼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23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상생임금위원회는 1980년대 후반 출범한 반월·시화 등 노후 산단과 자동차·반도체 등 주력 산업 분야로의 원·하도급 상생 패키지 확장을 검토하고 있다. △임금·복지 격차 완화 △숙련인력 양성 지원 △협력업체 채용 활성화 지원 등 기존 조선업의 상생 패키지 내용을 기본적으로 준용할 전망이다.
반월산단에서 만난 기업들은 조선업 상생 패키지처럼 '희망공제' 도입으로 임금 보전이 이뤄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희망공제는 근로자가 150만원을 부담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 600만원으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연간 450만원의 추가 소득을 기대할 수 있다.
자동차 대기업의 2차 협력사인 B사 관계자는 "설비 투자 이후 회사가 실제로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최소 2년의 시차가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커졌지만 원도급은 이 같은 부담을 고려해주지 않는다. 원·하도급 상생 협약을 통해 적정 단가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돼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A사 관계자도 "2021년 주 52시간 상한제가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면서 인력난이 예견됐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배달 등으로 월급에 준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탈한 인력이 많다. 조선업 상생 패키지처럼 채용 지원 항목이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했다. 조선업의 경우 정부가 채용장려금을 최대 1년간 지원하고 숙련 퇴직자의 재취업 지원금도 도입하기로 한 상태다.
다만 반도체·자동차 분야 기업들은 파견법 등 관련 법에 대한 사전 정비가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원도급 기업이 하도급 기업의 공정을 개선하거나 인사·노무관리 등을 지원할 경우 불법 파견으로 판단하는 등 법률적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가능성이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으로 원도급 기업의 의무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반도체 대기업 C사 관계자는 "반도체 분야는 원·하도급 간 기술 이전도 이슈"라며 "그러나 파견법 관련 규제로 인해 제약이 크다. 최근 법원에서 불법 파견 판단 기준을 엄격하게 세우면서 괜히 불똥이 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안산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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