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회원국이 권고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정부 “검토하겠다”지만, 논의는 장기간 정체
정부가 유엔 회원국들이 권고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수립’ 관련 권고에 대해 ‘검토 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적어도 올해부터 관련 논의를 시작해야 했음에도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며 “말 뿐인 권고 수용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지난 7일(현지시간) 한국의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다. 정부는 95개 유엔 회원국이 제시한 총 263개 권고 가운데 159개의 권고를 수용하고 5개를 일부 수용, 99개를 참조하겠다고 밝혔다.
2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검토 후 수용’ 의사를 밝힌 권고 중에는 NAP 수립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다. 유엔 회원국들은 한국의 NAP 수립에 대해 ‘인권현안에 대해 새로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국제적 기준을 충실히 이행하는 방식으로 수립하도록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NAP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포함하도록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부가 ‘검토 후 수용’이라는 전향적 입장을 밝혔음에도 시민사회계에서는 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법무부는 지난달 22일 제3차 NAP 이행평가와 관련한 연구용역 자료를 공개한 바 있지만, 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미 지난해 7월 제4차 NAP 권고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출했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1년가량 관련 논의가 정체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례로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법무부 인권국을 중심으로 ‘제4차 NAP 수립 방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이태원 참사’ 추모를 이유로 공청회를 미뤘다. 이후 약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청회는 열리지 않고 있다. 부처 내 주무부서인 법무부 인권국은 지난 2월 국장 사임 이후 현재까지도 국장직이 공석인 상태여서 앞으로도 논의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던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원래대로라면 지난해 말쯤 NAP가 정부에 의해 확정돼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2023년이 절반이 지나감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며 “도무지 정부의 인권 의지를 읽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은경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도 “제4차 NAP를 수립과 관련한 정부의 의견 수렴 절차가 많이 늦어진 감이 있다”며 “정부가 올해 하반기라도 시민사회와의 공청회를 재개하는 등 논의를 속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논의를 지속해왔으며 공청회나 대국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을 연내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측은 “(제 4차 NAP 수립을 위해) 인권위 권고, 시민사회 의견, 국제기구 권고, 새 정부 국정과제 및 새로운 인권 수요를 반영한 신규과제 등에 대해 관계부처 의견조회와 전문가 자문 등을 진행해왔다”며 “향후 공청회, 관계부처 협의, 분야별 정부시민단체 간담회, 홈페이지를 통한 대국민 의견수렴 등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거친 뒤 연내 국가인권정책협의회 및 국무회의를 거쳐 NAP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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