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AI의 눈물을 마신 적 있나요
생성 AI와 인간이 시와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경험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시 조각하기'로 이름 붙인 일이다. 우리에게 문학과 프롬프트 지식만 있다면, 비인간 조력자와 더불어 놀라운 창의를 이룰 듯해도, 실험을 반복할 때마다 끝없는 고민이 이어지는 주제임을 절감한다. 한번은 머리 아픈 상황을 잠시 벗어나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펼쳤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 이야기를 만났다. 짙은 어둠과 고요가 만나는 밤, 야생이 주인공인 열대 섬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은 잠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깨 있는 시간엔, 피해야 할 포식자의 눈가에 용감하게도 혀를 들이미는 작은 생명이라니. 생태 피라미드를 역주행해, 투명한 희망이 어린 아침 이슬엔 없는, 짭짤하고 슬픈 삶의 에너지를 구하는 나방은 작가의 표현대로, 몇 글자 필요도 없이 한 편의 시를 완성했다.
한 마리 나방이 쓴 기막힌 시를 동료에게 나누자, 탐구열 강한 그는 아마존에서 촬영된 실제 영상을 찾아 내게 보내주었다. 현장 상황은 텍스트보다 맹렬했다. 작은 나방은 새의 뒤통수에 앉아 몸이 흔들거릴 정도로 격하게 눈물을 빨아들였다. 그때 나는 솔닛과 다른 결로, 나방을 응징하지 않는 새의 침묵에서도 시를 느꼈다. 예민하다더니, 결코 감은 눈을 뜨지 않는 새는, 자는 게 아니라 죽었나 싶을 정도로 무감각해 보였는데, 나도 여름밤 윙윙대는 모기에게 전의를 상실한 채 "나는 아무것도 못 느낀다" 잠꼬대하며 비슷한 행동을 한 적 있어서다. 물론, 과학은 잠든 새가 슬퍼서 우는 게 아니고, 나방은 생존에 필요한 단백질과 염분을 취할 뿐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둘 사이에서 이미 시를 발견한 솔닛과 나는 멈추지 않고 상상을 이어갔다.
아동문학가 신현득은 시인이란 자연과 사물의 언어를 번역하는 사람이라 말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스치는 산들바람, 말 없이 수천 년 한자리를 지키는 첨성대도 오직 제 언어로 표현하지만, 인간은 비인간 언어에서 발견한 수많은 감정, 경험, 추억을 우리 언어로 바꿀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시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심기일전해, 나는 커서가 깜박이는 AI의 창을 들여다본다. AI와 내 모습에 나방과 새가 겹치며, 못 보던 시가 보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났던 어떤 비인간 언어보다 인간 언어를 닮은, 하지만 엄연한 기계 언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결코 시인의 일이 아니라는 외침도 들었다. 오히려 슬픔을 모르는 AI의 눈물에서 인간의 삶이 채우지 못한 것을 취하고 싶어 하는 나와 이 상황이, 인간 언어로 변주되어야 할 시로 다가왔다. AI 시대, 먼저 그려야 하는 AI와 인간의 시는 바로 이 모습이라는 소리를 분명 들었다. 그래서 다시 시 조각을 하고 있다. 인간인 내가 AI의 뒤통수에 올라타 얻으려는 게 뭔지 알고 싶다. 작업은 미완성이지만, 이번 시 조각하기는 '당신은 AI의 눈물을 마신 적 있나요'를 제목으로 정했다. 마다가스카르와 아마존에서 눈물을 나누는 새와 나방이 나에게 준 귀한 출발점이다.
[권보연 인터랙티브 스토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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