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해충 잡고 챗GPT로 온실관리…K스마트팜, 유럽 넘는다
◆ 매경 포커스 ◆
전주 혁신도시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박사만 1200여 명에 달하는 국내 농업 연구개발(R&D)의 산실이다. 여기에는 바닥면적이 1500평 정도 되는 첨단 디지털 온실이 있다. 첨단 온실이지만 농가 보급을 위해 소재는 유리가 아니라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이 비닐온실에 '첨단 디지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각종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디지털 농업을 연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온실 내 온도와 습도 등 환경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것은 기본이고 한여름에도 내부 온도를 낮출 수 있는 공조 기술을 적용하고 있어 1년 내내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 김경철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사는 "과거에는 온실을 지을 때 추운 겨울에 작물을 재배하려는 목적이 컸지만 최근 들어서는 뜨거운 여름철에도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열 차단과 냉방 효율을 높인 온실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 연구사는 "이곳 첨단 디지털 온실은 물안개 분사 등 다양한 시설을 통해 한여름에도 내부 온도를 낮출 수 있는 것이 큰 특징"이라며 "온실 높이가 측벽은 7.4m, 천장 고점은 8.2m로 일반 온실에 비해 높게 지은 것도 내부 체적을 넓혀 여름철 환기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토마토 익은 정도를 AI가 정확히 판별
이 온실에서는 현재 인공지능(AI)을 적용한 농업용 로봇에 대한 테스트가 한창이다. 대표적인 것이 토마토 생산량 예측 로봇이다.
레일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이 토마토가 얼마나 익었는지를 정확히 판별해준다. 로봇이 판단한 정보는 컴퓨터 화면에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저장된 정보를 나중에 농장주가 확인할 수도 있다.
실제로 로봇을 가동시켜 봤다. 레일을 따라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린 사이사이를 로봇이 지나가자 노트북 화면에 AI가 판단한 정보가 바로 표시된다. 각 토마토에는 AI가 매긴 일련번호가 부여된다. 얼마나 익었는지도 6단계로 나타났다. 6단계는 녹숙기(green)부터 변색기(breaker), 채색기(turning), 도색기(pink), 담적색기(light red), 완숙기(red)로 구분된다. 익은 정도를 여러 단계로 판별해야 하는 이유는 토마토가 후숙 과일이기 때문이다. 바나나와 마찬가지로 후숙이 필요하다 보니 내수용은 4단계에 해당하는 도색기(연한 적색과 황색이 혼재)에 수확하고, 수출용은 3단계에 해당하는 채색기(연한 적색과 녹색이 혼재)에 수확해야 한다.
화면을 캡처해 보니 토마토 6개가 찍혀 있다. 토마토마다 일련번호와 함께 익은 정도가 표기되는데 녹숙기부터 채색기, 도색기, 완숙기까지 다양했다. 같은 시기에도 토마토별로 익은 정도는 제각각인 셈이다.
이 생산량 예측 로봇은 얼마나 정확할까. 인식 정확도가 토마토는 95%, 색채는 97%에 달한다고 한다. 둘을 종합한 정확도는 92% 수준이다. 꽤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종합적인 정확도를 95%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AI의 토마토 이미지에 대한 학습량만 늘려서는 곤란하다. 토마토가 아닌 이미지, 즉 토마토로 착각할 수 있는 이미지에 대한 학습도 필요하다고 한다. 김 연구사는 "토마토 뒤에 있는 박스가 겹쳐 보이면서 토마토로 잘못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토마토로 오인될 수 있는 온실 내 객체에 대한 이미지 학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 눈보다 정확한 병해충 진단 AI
작물의 병해충을 진단하는 데 AI를 활용하는 서비스도 조만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농사는 병해충과의 싸움이나 다름없다. 특히 요즘처럼 비가 많이 내린 직후에는 어떤 작물이든 병해충에 취약하다. 그런데 아무리 경험이 많은 농부라도 모든 병해충을 판별하기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어떤 병해충인지를 정확히 판별하지 못하면 적절한 방제를 하지 못해 결국 농사를 망치는 일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농민들이 곧바로 전문가를 불러 병해충 원인과 대책을 즉각 확인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AI를 활용하면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이 서비스 개발의 계기가 됐다.
농진청은 농민들이 작물의 문제 부위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AI가 자동으로 어떤 병해충인지, 방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모델 개발에 나섰다. 2021년 시작한 연구는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개발된 병해충 진단 서비스에 대한 시연이 다음달 이뤄질 예정이다. 이 시연에 성공하면 내년에는 본격적인 농가 보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서비스 도입을 위해 농진청은 주요 작물 30종에 대한 병해충 사진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고품질의 병해충 사진 데이터가 있어야 AI의 판별 정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반 농가를 대상으로 사진을 모으면 작업 속도가 빨랐겠지만 농진청은 전문가를 활용한 수집 방식을 택했다. 일반인들도 충분히 병해충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지만, 사진 데이터의 품질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진청은 전국 12개 대학을 포함한 19개 기관에 속한 전문가들이 데이터 수집에 참여하도록 했다. 병해충 하나당 최소 1000장 이상의 사진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됐다.
데이터가 확보되면서 판별 정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류재기 농진청 병해충연구단장은 "사람이 사물을 눈으로 구분하는 정확도가 95.3%인데, 이번에 개발된 병해충 진단 AI의 정확도는 96.6%로 측정됐다"며 "이 정도면 사람의 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병해충에 대해서는 AI에 맡겨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병해충 중에서도 바이러스에 대한 판별은 전 세계 최초로 시도되고 있다. 류 단장은 "다른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시도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개발한 AI 병해충 자동진단 서비스는 바이러스 판별 정확도가 97.5%에 달한다"고 말했다.
챗GPT 활용한 AI 농장운영 앱 개발도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챗GPT를 적용해 AI 농장관리 시스템을 선보인 곳도 있다. AI 농업 스타트업인 크로프트는 '팜 메이트'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지난달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 최대 스마트팜 박람회 '그린테크 2023'에서 처음 소개했다.
이 앱은 농부가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농장용 ERP 시스템'으로 오픈AI의 챗GPT를 적용해 대화형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예컨대 농부가 팜 메이트 앱을 켜고 '최근 닷새간 광량이 어땠는지 확인해달라'고 입력하면 순식간에 광원별 광량과 전기요금을 일별 그래프로 알기 쉽게 보여준다. 작물 종류에 따라 최적의 광량이 정해져 있는 만큼 농부는 이런 그래프를 통해 LED 조명을 얼마나 더 켜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크로프트가 이런 서비스를 고안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공동 창업자인 류희경 대표와 이우람 최고기술경영자(CTO)는 작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3회 농업AI대회'에서 본선 3위에 입상했다. AI를 활용해 4개월간 유리온실에서 상추를 재배해 누가 더 많은 이익을 올렸는지를 겨루는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AI 재배의 가능성을 확인한 두 창업자는 본격적인 AI 재배 솔루션 개발에 나섰지만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AI 재배 솔루션을 개발하려면 모든 작목에 대한 각종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류 대표는 "작물의 종류나 재배 지역, 지역별 날씨 등 AI 솔루션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그 대안으로 농부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농장용 ERP 솔루션을 앱으로 보급해 농장주도 좋고, 우리도 데이터를 확보하는 길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로프트는 이 앱을 우선 농업 강국인 네덜란드에서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유리온실 기반의 시설농업이 발달한 네덜란드는 이미 각 농장들이 데이터 기반 농업을 수행하고 있어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기가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CTO는 "챗GPT가 나온 덕분에 농장주가 쉽게 활용할 수 있는 AI 앱 개발이 가능했다"며 "1차적으로 앱을 통해 각 농장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주력하고, 그다음 단계로는 AI에 기반한 환경제어 솔루션을 개발한 뒤 마지막으로 완전 자율 제어되는 AI 온실 솔루션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받는 '농식품AI아카데미' 성과
AI가 농업에 활발하게 접목되고 있는 이유는 그로 인한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고(故) 이어령 교수는 생전 매일경제가 주최한 포럼에서 "AI가 결합됐을 때 가장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산업이 바로 농업"이라며 "AI의 등장으로 농사에 대한 경계가 무너지면서 장소와 육체 노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농사꾼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농업 분야에서 AI 인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모든 산업계에서 AI 활용 수요가 늘어나면서 AI 인력들이 블랙홀처럼 각종 산업계로 빨려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2회 농업AI대회에 참여해 본선 3위에 오른 디지로그팀의 단장을 맡았던 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는 "디지로그팀 구성 당시 처음에는 농진청이나 농협중앙회 같은 대형 농업 관계기관들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AI 전문가를 찾는 데 실패하고는 방향을 바꿔 스타트업에서 AI 경력자를 찾아 함께 팀을 구성했다"며 "많은 농업 관계기관들이 입으로는 AI 농업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실제로 AI 농업을 수행할 인재를 확보하는 데는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매일경제와 멀티캠퍼스, 메타버스 전문업체인 맘테크가 주관하는 '농식품 AI 아카데미'의 성과는 눈에 띈다. 이 아카데미는 지난해 1기, 올해 2기 과정을 마친 데 이어 다음달 3기 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이 아카데미의 운영 성과는 이달 초 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산하 미래기술특별위원회 세미나에서 발표돼 참석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농식품 AI 아카데미의 설립 취지는 AI 전문가를 조직 밖에서 구하는 것보다 오히려 기업·기관 내부에서 선발된 인재에게 AI 교육을 시키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데 있다. 그런 사실은 AI 인력 양성에 경험이 많은 멀티캠퍼스에서 입증된 바 있다. 멀티캠퍼스 관계자는 "AI 등 소프트웨어 교육 과정에서 정보기술(IT) 비전공자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AI 기술을 가진 사람이 특정 산업에 새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이미 특정 산업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을 쌓은 사람이 AI 역량을 익혔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아카데미에 수강생을 보낸 한 농식품 기업 인사 담당자는 "농식품 분야에서는 급여가 비싼 AI 인재를 영입하기도 어렵지만 어렵게 AI 인력을 채용해도 현장에 적응해 성과를 내기까지 최소 5년 이상이 필요하다"며 "이에 비해 현업 경험이 있는 내부 인재를 선발해 교육을 실시한 결과 오히려 AI를 적용한 업무 개발에서 더 두각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의 1기 수강생인 조정건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는 "그동안 데이터를 다뤄오긴 했지만 AI 아카데미 과정을 통해 데이터 분석부터 AI 적용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배운 덕분에 업무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연구사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진행하는 '데이터·AI 분석 경진대회'에 자체적으로 고안한 '사과 품질예측 모델 개발' 문제를 제출해 채택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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