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장 서는 중동·우크라…금융이 기업 진출 마중물 될 것

채종원 기자(jjong0922@mk.co.kr) 2023. 7. 2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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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 윤희성 수출입은행장
수출확대 지원하는 전통 모델 넘어 개도국 경협 금융 강화
법정자본금 10년째 제자리…증액땐 더 많은 일 할 수 있어

"한국 기업의 수출 진흥을 위한 금융 지원이라는 전통적 모델을 업그레이드한 'ECA(공적수출신용기관) 버전 2.0'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윤희성 한국수출입은행장이 취임 1년을 앞두고 지난 18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수은은 수출 경쟁력 강화와 국익 및 글로벌 영향력 확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보다 유연하고 전략적인 접근법으로 새 기능과 역할을 시도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수은 역사상 첫 내부 출신 수장답게 윤 행장은 본인의 은행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조직의 발전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경영 전략도 '비욘드코어(Beyond Core)'다. 윤 행장은 수출 확대 지원이라는 핵심 업무의 경쟁력 강화를 넘어 진화하는 ECA 모습을 구상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제한적 투자업무 활성화를 고려하고 있다.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투자전문 자회사를 세웠고, 캐나다 수출개발공사(EDC)도 개발도상국 개발을 위한 개발금융 자회사를 설립한 사례가 있다.

윤 행장은 "JBIC는 자회사를 만들고 그걸 민간기관과 조인트벤처 형식으로 운영 중인데 그런 모델을 한번 고려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이어 "해외 인프라 사업에서 기존의 대출·보증 외에 일종의 에퀴티(equity·자기자본) 투자를 해야 할 때가 있다"며 "수은이 생각하는 투자업무는 한국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늘리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현재 운영 중인 24개 해외 사무소와 5개 현지법인의 위치·기능도 재정비할 계획이다. 실제 다른 나라 ECA들은 해외 네트워크를 경쟁적으로 확장하고 있어 수은도 폴란드, 호주 등에 추가 사무소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

윤 행장은 미래 비전 못지않게 수출금융 지원이라는 현 핵심(Core) 업무에도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그는 "배터리,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의 초격차 기술 확보, 인프라·원전·방산 등 대규모 수주산업의 경쟁력 강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선제적인 금융 지원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윤 행장 취임 후 수은의 존재감이 부쩍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사례로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과 보반트엉 베트남 국가주석이 하노이 주석궁에 임석한 가운데 윤 행장은 베트남 재무부와 20억달러 규모의 경협자금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윤 행장은 "양국 경협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해 뿌듯했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최근 폴란드도 다녀왔다. 그는 폴란드에서 윤 대통령이 주재한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기업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와 관련해 그는 "현지에서 저는 당장 민간 자본이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고 공적 자금이나 ECA 역할을 통해 전후 복구가 이뤄지고 인프라가 깔리면 본격적으로 민간 자본이 들어올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초기 공적 자금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최근 폴란드가 방산물자 수출 특수를 누리면서 주목받고 있는데 중동 인프라 사업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미 수은은 중동의 주요 발주처와 기본여신약정(FA) 및 금융협력 MOU를 맺었다. '선(先)금융 후(後)발주' 전략을 통해 한국 기업이 중동 시장에서 사업 수주 성공률을 높이도록 후방 지원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와 60억달러 FA,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국유석유공사(ADNOC)와 50억달러 FA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윤 행장은 "중동이 탈석유·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친환경 관련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한국 기업이 이를 수주할 수 있도록 더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탈석유 제조업 육성정책을 펼치는 중동 국가에 수은은 금융 지원만 하는게 아니라 ECA 노하우 전수 등 플러스 알파를 해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미리 상대국과 FA를 체결해두는 '선금융 후발주' 전략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윤 행장이 중동 공략에 적극적인 배경엔 그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2011년 11월 당시 수은 국제금융부 외화조달팀장으로서 아시아 금융기관 최초로 사우디에서 현지 화폐 리얄로 채권을 발행해 2억달러를 구해왔다.

그는 "팀장으로 처음 방문했던 사우디를 은행장이 된 뒤 두 번째 갔는데 '2011년에 누구누구를 만났다'는 등 개인 히스토리를 언급하니까 상대 측에서 크게 호감을 보였다"며 "사우디 입장에선 외국 자본이 과실만 따먹고 바로 떠나는 사례가 있는데 저의 과거 경험 때문에 수은을 장기 비즈니스 파트너로 인식했다"고 전했다.

윤 행장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도 적극 대처할 생각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3일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해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윤 행장은 "지난해 1월부터 글로벌 공급망 대응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데 이달 이 프로그램에 자원 가공, 재자원화, 물류 서비스 등을 지원 분야로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정 국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장비 품목의 국내 생산 기반 마련을 비롯해 공급망 취약 분야를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수은의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현실적 제약에 대해 안타까움도 내비쳤다. 법정자본금이 2014년 법 개정 이후 지난 10년간 15조원으로 제자리여서 추가 자본 확충 여력이 제한돼 있다. 윤 행장은 "자본금이 커져야 수은이 역할을 더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채종원 기자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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