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자원 '전기차 배터리' 해외로 빠져나간다
작년 등록말소 전기차 87% 반출
글로벌 재사용 추세…확보 경쟁
수출땐 보조금 회수 방법도 없어
정부 생애주기 관리체계 강화를
대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 배터리 대부분이 해외로 반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 전기차 수출 영향으로, 사용후배터리(폐배터리)를 자원화하려는 글로벌 움직임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배터리 반출을 최소화할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등록 말소된 전기차는 총 5800여 대로 이 중 87%에 해당하는 5100여 대가 수출됐다. 올해상반기에도 등록 말소된 차량 3200여 대 중 87%에 해당하는 2800여 대가 수출돼 이런 추세가 이어졌다. 2021년에도 총 등록말소 차량 3800여 대 중 90%인 약 3500대가 수출됐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국가 보조금이 지급된다. 대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예산이 쓰인다. 정부가 일정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고차가 수출되면 이를 회수할 길이 없다.
이런 문제로 환경부는 지난해 시행규칙을 개정해 보유 기간에 따라 보조금 일부를 반납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예를 들어 전기차를 24~30개월 동안 운행하다가 수출을 위해 등록을 말소하면 보조금 절반을 다시 반납해야 하는 식이다. 국가 보조금 유출이 심각하다는 지적에 마련된 보완조치였다.
하지만 중고 전기차 및 배터리 반출이 여전하다. 개정 규칙이 시행된지 얼마 안 됐고, 보조금 축소에 따른 부담도 줄어 중고차 수출이 더 큰 수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전기차 1대당 국고보조금은 최대 680만원이다. 대당 최대 1500만원이 지급되던 2016년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줄었다.
또 운행기간에 따라 반납해야 하는 보조금, 즉 보조금 회수 요율이 줄어 4년을 넘기면 20%만 반납하면 된다. 중고 전기차 수출 가격은 국내 시세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의무운행기간을 유지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보조금 반납 규정이 2022년 6월 30일 이후 등록된 전기차부터 해당되기 때문에 그 이전 보급된 전기차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2021년 1월 1일 이전 등록된 전기차는 배터리 반납 의무가 있지만 수출하는 경우 의무가 적용되지 않아 2년 의무운행기간만 채우면 제한없이 수출할 수 있다. 2020년 말까지 누적 보급된 전기차 13만7637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최근 전기차 성능이 크게 개선되면서 이에 맞춰서 의무운행기간을 늘리고 보조금도 낮추는 정책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다만 기존 전기차까지 의무운행기간을 소급해 늘리는 방안은 법리적으로 가능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고 전기차의 해외 수출은 자원 활용 측면에서도 손해다. 배터리 원재료 금속 가격이 오르고 배터리 재사용 시장도 커지면서 폐배터리 가치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수된 폐배터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재사용되거나 리튬·니켈·코발트 추출에 활용된다. 국내에서도 최근 수요가 급증하면서 폐배터리가 4~5배 높은 가격에 낙찰이 이뤄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폐배터리 자원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유럽 이차전지 기업들은 EU에 “페배터리를 유해폐기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목적은 수출 금지다. EU 폐기물 선적 규정에 따라 유해 폐기물로 지정된 자원은 EU 역외 수출이 제한된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 전기차 보급 대수는 40만대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폐배터리 규모도 2024년 1만3826개, 2026년 4만2092개, 2030년에는 10만개 이상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배터리 생애주기 전반에 대한 관리 체계를 보다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보조금이 투입된 전기차가 해외 수출되면 정부의 저공해차 보급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은 몰론 국가 자원인 사용후배터리가 새어나가는 것”이라면서 “무분별한 반출을 막는 관리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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