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섬’ 10여년째 흉물로···지지부진한 울산 장생포 ‘죽도 살리기’ 대책 있나[현장에서]
울산 남구 장생포 ‘죽도’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래를 잡아 생활하던 주민들에게 환상의 섬으로 불렸다. 장생포는 국내 유일의 고래특구로 고래박물관·고래생태체험관·고래문화마을 등 고래 관련 관광인프라가 즐비한 곳이다. 옛 장생포 주민들은 해가 떠오르거나 석양의 노을 속에 비친 이 섬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지친 하루를 달래곤 했다.
장생포가 고향인 가수 윤수일씨는 어린시절 죽도를 회상하며 1985년 ‘환상의 섬’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내 고향 바닷가 외딴 섬 하나~ (중략) 인어 같은 소녀가~ 내 곁에 다가왔지’라며 죽도를 노래했다.
하지만 최근 죽도의 명성은 예전과 같지 않다. 철조망 속에 잡풀만이 무성한 흉물로 전락했다. 울산남구는 죽도를 활용한 고래 관련 관광인프라 구축을 검토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1일 찾은 죽도 입구 철제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인근 보도블럭과 죽도로 진입하는 콘크리트 계단은 아무렇게나 자란 잡풀로 뒤덮였다. 철제문에는 녹슨 쇠사슬과 자물쇠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우거진 숲 위로 솟아오른 3층 건물의 유리창은 거의 뜯겨나갔다. 간판도 없어 음산한 분위기 마저 감돌았다. 이 건물은 과거 해상교통관제센터로 사용됐던 곳이다.
죽도는 1990년대 초반까지 울산항 주변 바다에 있었지만, 1995년 해안 매립으로 육지의 야산처럼 변했다. 해상교통관제센터가 2013년 인근 건물로 옮겨가면서 죽도는 지금까지 10여년째 방치되고 있다.
죽도는 관할 지자체가 울산남구지만 소유권은 울산시교육청에 있다. 교육청은 1963년부터 죽도를 공유재산으로 관리해왔고 항만청이 무상임대해 사용하던 옛 해상교통관제센터도 기부채납 형식으로 넘겨받았다.
남구는 지난 3월 죽도에 옛 장생포 주민들의 삶을 담은 전시실·둘레길·산책길·쉼터 등을 만들어 고래특구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것을 검토했다. 그러나 남구가 죽도를 활용하려면 교육청으로부터 땅을 사들이거나 무상임대해야 가능하다. 남구는 당시 전체 4000여㎡인 죽도를 매입하려면 15억~20억원 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남구는 죽도의 매각 여부를 지난 4월 교육청에 타진했다. 교육청은 유상매각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회신했지만 현재까지 사업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남구로부터 유상매각에 관한 의사가 있는지 전달받은 적은 있지만 이후 거래관계에 대한 추가적인 의사 타진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뒤늦게 남구가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사업검토 과정에서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기초단체가 20억원에 이르는 부지 매입비를 조달하기 쉽지 않은데다 매입 이후 건물 리모델링과 둘레길 조성 등에도 추가 비용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남구 관계자는 “죽도가 박물관이나 고래문화마을 같은 관광자원 밀집지역과 거리가 좀 떨어진 것도 문제”라며 “투자비용 대비 효과가 불투명해 현재로선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지부진한 죽도 활성화 방안에 답답해하고 있다. 주민 박진만씨(60)는 “죽도가 몰락하면서 나의 어린시절 추억도 서서히 잊혀져 가는게 안타깝다”면서 “죽도를 되살릴 방법을 빨리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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