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악귀’는 김태리의 태자귀 아닌 김해숙의 돈귀신!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다. 세상사 영험하기로는 돈만한 것이 없다는 의미다. 단, 귀신 중 돈귀신은 인간도 부리는 모양이다.
22일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악귀' 10화에서는 염해상(오정세 분) 집안에 악귀를 들인 나병희(김해숙 분)의 악행이 속속 드러났다.
이홍세(홍경 분)는 염해상(오정세 분)의 부친이자 중현캐피탈 염재우(이재원 분) 대표에 대해 조사하다 염재우는 물론 그 부친인 염승옥까지 모두 젊은 나이에 산애병원에서 사망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산애병원장을 추궁해 일련의 사실을 확인했다.
교통사고로 산애병원에 후송돼 연명하고 있던 김우진(김신비 분)은 나병희가 병실을 떠난 후 죽어있었다. 나병희가 떠난 병실 바닥엔 베개가 떨어져 있었다. 정황상, 자신과 구강모(진선규 분)의 내밀한 이야기를 김우진이 엿들었음을 알아챈 나병희가 직접 죽인 모양새다.
나병희는 또한 남편 염승옥(강길우 분)의 죽음을 악귀에게 사주했고 아들 염재우의 죽음도 방임을 넘어 조장했다.
1979년 당시 나병희는 ‘벌만큼 벌었으니 이제 귀신 떼버리고 즐기면서 살겠다’는 염승옥과 맞서다 매까지 맞았다. 염승옥의 작은 배포에 “고작 푼돈이나 만지겠다고 그 귀신을 만들었는 지 알아?”라며 적의도 불태웠다.
그리고 그런 나병희에게 염승옥의 겉치레를 한 악귀가 접근했다. 그런 악귀의 “죽여버릴까?”는 제안은 나병희 귀에 솔깃했다. 악귀는 제안에 동의한 나병희에게 “그럼 다른 걸 건네 줘. 그리고 진짜는 너만 알고 있어.”라 거래조건을 제시했고 “그럼 나는?”하고 묻는 나병희에겐 “내가 살면 너도 살아”라며 운명공동체가 됐음을 강조했다. 그 야합의 결과가 염승옥의 죽음이다.
그 아들 염재우(이재원 분)는 해상모(박효주 분)를 악귀로부터 지키려다 죽음을 맞았다. “악귀가 해상이 엄마를 죽이려고 해요.”라 염재우가 호소했을 때 나병희는 심상하게 “왜인줄 알아? 니가 가장 좋아하는 거니까. 악귀가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 주는 대신 우리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해. 너에게 가장 소중한 거.”라고 대꾸한다.
경악한 염재우가 “그럼 아버님 때도 그랬어요? 아버님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죽였어요. 그걸 알면서도 나한테 악귀가 붙게 만든 건가요?” 다그쳤을 때 나병희는 “덕분에 우리는 돈을 가졌지.”라 당연한 듯 말한다.
나병희의 이같은 극단의 배금주의는 돈귀신 들린 거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그러니 순서상 돈귀신이 나병희에게 붙은 것이 맨 처음이다. 그 돈귀신이 태자귀를 만들게 했고 1958년 이후 줄줄이 17명의 사람들을 죽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나병희에 붙은 돈귀신이야말로 최초의 악귀다.
나병희는 악귀가 가져다 주는 부의 대가로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해야 된다고 말했다. 염재우는 아버지 염승옥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해상모도 염재우가 가장 아끼는 존재인 까닭에 죽음을 맞는다.
그럼 나병희가 희생한 것은 무얼까? 즉 악귀가 염승옥을 죽여주는 대신 달라고 한 ‘다른 것’은 과연 무얼까? 또 죽었다는 ‘염승옥의 소중한 사람’은 누군가? 이 두 지점은 어쩐지 작가가 반전을 위해 애써 모호하게 처리한 느낌이 든다.
사실 나병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돈이다. 남편·자식·손자도 안중에 없을만큼 소중하다. 하지만 그 돈은 악귀와의 거래조건이다. 악귀가 무엇 대신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악귀가 가져갈 수 있는, 나병희에게 돈에 버금갈만한 귀한 것이 무얼까? 혹시 돈에 대한 탐심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감정, 곧 인간성 아닐까? 그래서 남편도 자식도 손자도 스스럼없이 던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쨌거나 나병희는 염승옥·염재우 부자에게 순순히 악귀의 금제 비방을 건넨 모양이다. 그리고 그 비방엔 ‘이목단’의 이름이 씌어져 있었겠다. 그리고 비방을 획득한 두 사람은 죽었다. 무당 최만월이 “5가지 물건과 이름 하나라도 틀리면 악귀를 없애려는 사람에게 화가 미친다”는 경고가 제대로 적중한 것이다. 나병희와 악귀의 이 트릭에는 해상모와 구강모도 걸려들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구강모의 유산을 신봉했던 염해상과 구산영(김태리 분)도 그 전철을 밟아갔다. 하지만 악귀의 정체를 이목단으로 믿어왔던 두 사람은 언제부턴가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특히 악귀의 기억을 공유하는 구산영은 창고에 갇힌 채 보름달을 지켜보며 죽임을 당한 장면을 기억하지만 정작 이목단은 그 보름달을 볼 수 없었다. 이목단의 실종부터 시신으로 돌아오기까지 만월의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염해상 역시 악귀가 오히려 금제 물품을 찾도록 종용하는 듯해 그 저의를 의심한다. 게다가 악귀의 피해자 중 장진중 교사 신승주와, 도서관 사서 채서린이 구강모와 연결고리가 없어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던 중 악귀를 만났다는 이홍세로부터 악귀는 아이가 아닌 사춘기 소녀의 성향을 보였다는 말을 듣고 ‘악귀=이목단’이란 전제를 의심하게 된다.
결국 의견을 조합한 세 사람은 끝내 악귀의 정체가 10살 이목단이 아니라 장진중학교를 다녔던 누군가로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답을 혼자만 알고 있는 나병희 입으로 직접 듣기로 했다.
염해상은 악귀의 정체를 밝힐 절호의 기회로 음력 2월 9일 ‘무방수날’을 선택했다. 지상의 신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 어떤 귀신도 농간을 부릴 수 없는 날.
그리고 그 전 날인 2월 27일 구산영은 나병희 집을 찾는다. 구산영은 “왜 왔어?”묻는 나병희에게 “니 손자, 내 이름 알고 싶어서 난리야. 낼 널 다시 찾아올 거야. 내 이름 물어보러.”라 방문 이유를 밝힌다. 나병희는 “그래 무방수날, 민속학 교수니 모를 리 없지”라며 납득한다.
이어 “해상이도 죽일 거니?” 묻고는 “왜, 그럼 안돼?”라는 산영의 되물음에 “남편에 자식까지 죽였는데 손주라고 안될까.”라 답한다. 그리곤 첫 거래 날 악귀가 한 말을 뒤집어 “그래, 니가 살면 나도 산다. 향이야.”라며 악귀의 진명일지 모를 낯선 이름을 전한다.
나병희 서재에 들이닥친 구산영이 과연 악귀일지 산영일지도 모호한만큼 나병희가 말한 ‘향이’가 악귀일지, 나병희의 함정일 지도 장담할 수 없다. 아직 2회가 남았으니 또 어떤 허방을 마련해 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악귀가 빙의한 구산영보다, 사람 탈은 썼지만 사람 아닌 듯한 나병희가 더 섬뜩하다는 점이다. 또 매개체를 만지고 문을 열어야 접하는 악귀보다 사람 스스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래서 씌인 줄도 모른 채 인간성을 잃게 만드는 돈귀신의 위력이 소름끼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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