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전 택시기사 살해범들, 신상 미공개에 징역 30년…유족 울분
지금으로부터 16년전 택시 기사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 두 명이 지난 20일 1심에서 각각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동안 고통 받아온 피해자 유족들은 범인들이 저지른 범행의 정도에 비해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며 울분을 삼키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7년 6월 30일 세찬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토요일 택시 기사 A(사망 당시 43세)씨는 집을 나섰다. 늦둥이 1살 아들과 아내, 함께 모시고 사는 어머니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동료 기사와 인천시 부평구 기사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그는 다음 날 새벽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오전 2시 33분 미추홀구 한 아파트 앞에서 남성 손님 2명이 택시를 멈춰세웠다. 택시 뒷좌석에 올라탄 손님들은 남동구의 남인천세무서(현 남동세무서)로 가 달라고 했다.
1분쯤 뒤 A씨 목에 흉기를 들이댄 그들은 "움직이지 마. 말 안 들으면 죽여버린다"고 위협했다. 택시강도로 돌변한 승객들은 A씨의 양손을 끈으로 묶은 뒤, 미리 준비한 대형 가방을 들고 "안에 들어가라"고 협박했다. 뒷좌석 가방에 갇혀 있던 그는 강도 중 한 명이 택시를 모는 사이 닫힌 지퍼를 열고 가방에서 빠져나왔다.
강도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친 A씨는 끝내 붙잡혔고, 온몸을 흉기에 찔린 끝에 숨졌다.
강도들은 A씨 시신을 범행 현장에 방치한 채 그의 택시를 훔쳐 몰았다.이어 2.8㎞ 떨어진 미추홀구 주택가에 택시를 버렸고, 뒷좌석에 불을 지른 뒤 도주했다.
경찰은 전담반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으나 용의자를 특정할 단서는 찾지 못했다.
2남 1녀 중 막내아들이었던 A씨와 함께 살던 그의 어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딸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사건 발생 2년쯤 뒤 막내아들 관련 사건을 끝내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A씨 매형 박모(67)씨는 "장모님은 6·25 전쟁 때 남한으로 온 실향민 출신"이라며 "끔찍이 아끼셨던 막내아들이 살해됐다고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겨질 뻔했던 했던 이 사건은 뜻밖의 전기를 맞았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확보한 쪽지문(작은 지문)을 토대로 사건 발생 16년 만인 올해 1월과 3월 범인들을 잇달아 검거한 것이다. 결정적 증거가 된 쪽지문은 범인들이 택시를 방화할 때 불쏘시개로 사용한 차량 설명서 책자를 경찰이 여러 차례 감정한 끝에 찾아냈다.
강도살인 혐의로 붙잡힌 주범은 B(47)씨, 공범은 C(48)씨였다. 그들은 2000년 절도 사건으로 각자 인천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서로 알게 된 친구 사이였다. 사건 당시 특별한 직업이 없던 이들은 생활비가 부족하자 범행을 계획했고, 흉기와 운동화 끈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범인 B씨는 재판에서 "사건 발생 당일 범행 현장에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공범 C씨도 "친구와 함께 강도 범행은 계획했지만, 살인은 같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지난 20일 선고 공판에서 유전자 정보(DNA) 검사 결과와 신빙성이 없는 피고인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징역 30년을 각각 선고했다.
하지만 피해자 유족들은 16년 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아 겪은 고통에 비하면 형량이 너무 낮다며 분노를 이기지 못했다.
16년 전 남편을 잃은 A씨 아내는 당시 1살인 아들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 혼자 힘들게 키웠다. A씨 매형 박씨는 "아버지 얼굴을 기억 못 하는 조카는 범인들이 검거된 이후 기사를 보고 사건을 자세히 알았을 것이다. 처남댁도 식당 일을 하며 힘들게 아들을 키웠다"고 말했다.
A씨 누나 이모(67)씨는 "가족들 모두 동생을 가슴에 묻고 지냈는데 올해 들어 범인들이 잡히면서 또다시 힘들어졌다. 법정에서 반성도 하지 않는 범인들을 보면 형량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A씨 매형도 "먼저 검거된 주범 B씨가 기소된 이후에 공범 C씨가 잡히면서 형평성을 이유로 둘 모두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며 "수사 단계에서 신상 공개를 해야 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B씨는 선고 다음 날인 지난 21일 변호인을 통해 항소했다. 피고인들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판결문을 검토할 예정이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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