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정체불명 소포, ‘혹시 브러싱 스캠?’
대만 등에서 발송된 정체불명의 소포를 받았다는 신고가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이 해외에서 이미 기승을 부리고 있는 ‘브러싱 스캠’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브러싱 스캠은 온라인 판매 업체들이 무작위로 수집한 주소로 주문하지 않은 물건을 발송한 뒤 판매 실적을 부풀리는 행위를 뜻한다.
지난 2월 호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주문한 적도 없는 가짜 까르띠에 반지나 가짜 버버리 스카프가 배송된 것이다. 호주 ABC 방송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같은 사례가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앞서 2020년 7월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도 중국에서 발송한 정체불명의 씨앗들이 잇따라 발견된 바 있다. 소포 겉면에는 장난감, 보석 등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 내용물들은 일부 중국 온라인 쇼핑몰이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허위로 보낸 나팔꽃·양배추·장미 등의 씨앗들이었다.
브러싱 스캠은 이베이나 아마존 같은 쇼핑 플랫폼에 등록한 판매업자들이 리뷰를 늘려 온라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수법이다. 판매량과 리뷰가 많을수록 판매자 등급이 올라가고 검색 순위 상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더기로 가짜 계정을 만든 후 국내외에서 수집한 개인 정보를 이용해 해당 주소로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을 배송한다. 발송 자체가 목적이므로 대부분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작고 쓸모없는 물품들을 넣는다. 이후 가짜 계정에 직접 로긴해 거짓 리뷰를 작성한다. 물건을 발송하면 이베이나 아마존 리뷰에 ‘구매자’로 표시되므로 허위 리뷰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이버 전문가인 사이먼 스미스는 “브러싱 스캠 소포를 받더라도 (독극물이나 테러가 아니니) 당황할 필요는 없다”고 호주 ABC 방송에 말했다. 다만 그는 “그들이 당신의 이름과 주소를 알고 있다는 뜻이므로,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는 경고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우편검사국도 “(공짜로 물건을 얻었으니) 피해자 없는 범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개인 정보가 손상될 수 있다”면서 “종종 사기꾼은 악의적인 수단으로 개인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향후 여러 가지 사기 및 기타 불법 활동에 사용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현재 국내에서도 지난 20일 울산 동구 서부동 한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대만에서 발송된 노란색 비닐봉지로 된 소포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유사한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대만 등에서 수상한 소포가 배송됐다는 112 신고는 23일 오전 5시까지 나흘간 전국에서 총 1904건이 접수됐다.
주한 대만대표부는 지난 21일 “이번 사안을 즉각 우리 재정부관무서(대만의 세관 업무 기구)에 통보해 조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해당 소포는 중국에서 최초로 발송돼 대만을 중간 경유한 후 한국으로 최종 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알렸다.
대만 범죄수사국(CIB)은 해당 우편물이 중국에서 배편으로 최초 발송된 것으로 대만 국영 우체국인 중화우정 화물운송센터에서 분류된 후 항공 우편 등을 통해 한국으로 보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은 단순 경유지이므로 대만 세관 당국의 검사 대상은 아니었다.
중국의 우편물 처리 용량 부족 탓에 중국에서 발송되는 국제 소포는 종종 최종 목적지로 전달되기 전 대만을 경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중화우정은 경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 한국으로 향하는 환적 소포물 발송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상태다.
정원찬 대만 행정원 부원장은 “끝까지 추적 조사를 진행해 어떤 부분을 강화해야 할 지 모든 상황을 검토할 것”이라며 “이 사건은 고도의 경각심을 갖고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미국 우편 검사국은 웹사이트에서 권고하는 ‘브러싱 스킴’ 주의사항과 대처 방법이다.
미국 우편검사국이 권고하는 브러싱 스캠 대응 요령
1. 절대 상품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필요 없다. 혹시 판매자에게 전화가 오더라도 응하지 말라
2. 개인 정보가 손상됐을 수 있으니 계정의 비밀번호를 변경하라
3. 신용카드 청구서를 모니터링하라.
4. 상품이 알 수 없는 액체이거나 식품·식물일 경우 당국에 신고하라
5. 아마존, 이베이 등 판매사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허위 리뷰가 등록됐을 경우 삭제를 요청하라.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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