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 설립 소형모듈원자로 기업 “美정부 20억달러 투자…데스밸리 넘어” [특파원+]
“에너지 사업에서 ‘데스밸리’(죽음의 구간)이라는 표현을 쓴다. 첫 번째 데스밸리는 연구개발(R&D), 두 번째는 재정적 부분이다. 테라파워는 연구개발 단계는 넘겼고, 재정적 부분에서도 데스밸리를 잘 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설립 기업 테라파워의 최고경영자(CEO) 크리스 르베크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테라파워는 4세대 SMR의 기술 분야에서 실증에 가장 근접했고, 미국 에너지부(DOE)로부터 약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라는 대규모 투자를 지원을 받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약 6500㎡(약 2000평) 규모의 격납고식 연구소에 들어서자 테라파워가 소듐냉각고속로(SFR)에 용융염 열저장설비(MSS)를 결합한 형태로 자체 개발 중인 SMR 제품 나트륨(Natrium) 실험장비와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실험설비, 염소염 용융염원자로 실험장비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SMR은 대형 원전의 발전 용량과 크기를 줄인 500㎿(메가와트) 이하 소형 원전으로,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안전도가 1000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전원 없이 자연 냉각이 가능하고, 외부에 배관 노출이 없는 일체형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소형화, 모듈화를 통해 전력 수요지 인근에 설치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날 연구소에서는 고온에서 녹인 소금인 용융염을 냉각제로 사용하는 실험이 시연됐다. 연구원이 액체 소금을 실험용 선반에 붓자, 투명하던 액체 소금이 곧 고체 소금의 상태로 변했다. 액체 소금은 끓는점이 800도가 넘기 때문에 원자로가 뜨거워져도 물처럼 쉽게 증발하지 않고, 대기에 노출되면 고체 상태로 굳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테라파워는 미국 와이오밍주에 부지 선정을 완료하고 2030년까지 345㎿ 규모의 실증단지를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이 실증단지가 완공되면 약 25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테라파워의 기술에 지원 및 투자를 추진 중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7일 한국을 방문한 르베크 테라파워 CEO와 만나 SMR 기술과 향후 계획 등을 논의했다. 이 장관은 글로벌 SMR 산업 전망에 대해 질의하며 향후 한·미 기업 간 SMR 협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의지를 밝혔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8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승인을 받아 테라파워에 2억5000만 달러(3000억 원)를 투자했다.
르베크 CEO는 원전에 대한 안전 우려에 대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 이미 원전이 많은 에너지를 안전하게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화석연료나 재생에너지 등 어떤 형태의 발전보다 더 안전하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원전은 또 (온실가스) 배출 없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며 “미국에서는 핵에너지가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는데, 이들은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가진 원전에 대한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과의 협력과 관련해서는 “한국 내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수용성이 높다는 것과 한·미 간 관계가 좋다”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차례 만났으며 원자력 에너지 협력에 대해 논의했기 때문에 매우 좋은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과의 면담에서 한국에 나트륨 원자로를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도 소개했다.
이날 현장에 동행한 SK관계자는 “테라파워와 협력을 통해 SMR 사업뿐만 아니라 치료제 개발·위탁생산 등 영역에서도 다양한 사업 기회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테라파워는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정부, 민간기업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상업화에 빠르게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다.
벨뷰=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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