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수출 막히면 美공장 지을 필요 없어"…미국 반도체업체들이 한 말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관계자들과 미국 반도체 리더들의 회동 내용이 외신을 통해 공개됐다. 업계는 중국을 겨냥한 정부의 수출통제는 미국의 반도체 리더십을 해칠 뿐 아니라 중국의 기술 개발을 늦추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며 규제 중단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21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반도체 업계 수장들이 17일 회동에서 정부가 새 수출통제를 추진하기 전에 우선 업계에 미칠 영향부터 분석돼야 한다는 우려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중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추가로 반도체 수출통제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가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선 것이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정부가 클라우드 컴퓨팅과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만든 저사양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을 포함한 추가 제재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주 회동엔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 등 미국 반도체 공룡 리더들이 총출동했다.
소식통은 겔싱어 CEO가 이 자리에서 중국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지 못하면 오하이오주에 새 공장을 지을 필요가 줄어든다면서 바이든 정권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노력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고 귀띔했다. 200억달러(약 25조6000억원)가 투입되는 인텔의 오하이오 신규 공장은 미국 내 첨단 기술 투자를 강조하는 '바이드노믹스'의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착공식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19일 아스펜안보포럼 연설에서도 당시 회동과 관련해 "현재 중국은 반도체 수출의 25~30%를 차지한다. 시장이 20~30% 줄면 공장을 덜 짓는 게 당연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그는 반도체 회사들이 중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을 때 미국에 이익이며 양자 컴퓨팅 같은 첨단 기술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수출로 번 돈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을 수 있으며 시장 차단은 되레 중국의 기술 자립만 부채질한다는 논리다.
최근 AI 인기로 수혜를 입고 있는 엔비디아의 황 CEO는 중국에 반도체 판매를 금지하면 대체품 수요만 부채질하게 될 것이란 우려를 전했다고 한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수출통제로 첨단 AI 반도체의 대중 수출길이 막히자 중국 수출용으로 사양이 낮은 AI 반도체를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추가 조치로 저사양 반도체까지 수출이 막힐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편 당시 회동에서 정부 관계자들은 기업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구체적인 약속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과 함께 당시 회동에 참석했던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21일 아스펜안보포럼에서 대중 수출통제가 "좁은 범위에서 높은 강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서도, 지금까지 행정부의 조치가 정밀 겨냥돼 미·중 간 반도체 거래에 큰 영향이 없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는 미·중 패권 전쟁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미국은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를 적용했다. 일본은 23일부터 여기에 동참했다. 기업들로선 대중 수출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에 중국은 미국 반도체회사 마이크론 제품을 핵심 인프라에서 배제하고, 첨단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원자재인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통제하는 등 보복에 나서면서 기업들은 또 다른 불확실성에 직면한 상태다. 중국 세계 갈륨, 게르마늄 공급량의 각 94%, 83%를 맡고 있다. 퀄컴의 경우 중국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60% 이상이며, 인텔은 매출 가운데 약 4분의 1, 엔비디아는 5분의 1을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산된다. 겔싱어 CEO는 올해에만 중국을 두 번이나 찾아 현지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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