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가세요?” 한국 직장인들에게 물어보니…슬퍼졌다
한국 직장인 절반 이상은 올해 여름휴가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5명 중 1명은 이미 여름휴가를 아예 포기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였다. 정부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며 주 69시간까지 가능한 노동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인데, 한국 직장인들은 휴가철에조차 ‘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9일부터 15일까지 전국 성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이 조사는 여론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수행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올해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는 응답은 56.1%로 나타났다.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36.3%, ‘계획이 아예 없다(포기)’가 19.8%였다.
휴가 계획이 아예 없다는 응답은 5인 미만 민간 사업장(25.6%)이 300인 이상 민간 사업장(19.8%)보다, 월 임금 150만원 미만(25.5%)이 월 임금 500만원 이상(15.0%)보다 높았다. 열악한 사업장일수록 휴가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지만 큰 기업도 온전히 휴식권을 보장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여름휴가 계획이 없는 직장인에게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한 이유를 물은 결과, ‘휴가를 갈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가 61.9%로 가장 높았다. ‘바쁜 업무로 휴가 사용 후 업무 과중이 걱정돼서’가 17.8%, ‘연차유급휴가가 없거나 부족해서’가 12.8%, ‘휴가를 사용할 경우 회사에 눈치가 보여서’가 7.5%로 뒤를 이었다.
여름휴가 계획을 세운 직장인들도 66.0%는 ‘5일 미만’으로 휴가를 썼다. 여름휴가가 1주일(7일)을 넘는 응답자는 10.0%에 그쳤다. 비정규직일수록, 급여가 낮거나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휴가 기간은 짧아졌다.
노동자의 권리인 휴가를 둘러싼 갑질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올해 상반기 신원이 확인된 메일 제보 941건 중 10.9%인 103건이 휴가 관련 갑질 사례였다고 밝혔다.
휴가 기간을 회사가 미리 정해두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직장인 A씨는 직장갑질119에 “회사에 ‘공통 휴가’라는 것이 있는데, 1년이 지나면 생성되는 15개 연차를 미리 당겨서 쓰는 거라고 한다”며 “제가 정말 필요하고 원할 때는 못 쓰게 하는 연차를 회사가 필요할 때 억지로 쓰게 하는 것이냐며 항의했다”고 했다.
휴가 기간 중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례도 흔하다. 직장인 B씨는 “사장 아버지인 회장의 골프 예약을 해 드려야 한다”며 “출근하는 날은 그러려니 하지만 주말이나 여름휴가, 연차, 공휴일에도 아침 9시에 일어나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외에도 퇴사를 앞둔 직원의 휴가 사용을 금지한 사례, 원래 있던 여름휴가를 갑자기 없앤 사례 등이 있었다.
한국 직장인들이 휴식을 허락받지 못한 채 과도한 일에 내몰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일-생활 균형시간 보장의 유형화’ 연구를 보면 한국의 노동 시간 선택권 수준은 1점 만점에 0.11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최하위였다. 한국보다 낮은 곳은 그리스(0.02점)와 체코(0.09점)뿐이었다. 연간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조사대상 국가 중 1위였다.
직장갑질119는 “한국에는 귀족 노동자와 귀족이 아닌 노동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쉬지 못하는 노동자와 그보다 더 쉬지 못하는 노동자가 있을 뿐”이라며 “돈도 시간도 없어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내년 최저임금은 역대 최저 인상률인 2.5%를 기록했다”고 했다.
직장갑질119 야근갑질특별위원회의 최혜인 노무사는 “일중심 사회에서 사람중심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동자가 필요할 때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휴가 사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고용형태나 사업장 규모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여름휴가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 더 알아보기
한국 직장인들은 쉬지 못합니다. ‘휴가 쓸 권리’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뿐더러, 아파도 잘 쉬지 못합니다. 이는 생명과도 직결됩니다. 경향신문은 대학병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병가를 허락받지 못하고 일하다 끝내 숨진 20대 청년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많이 일해야 하는 걸까요.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6051451001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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