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흡연에 징계 줬다고”… 교사들이 말하는 ‘학부모 민원’ 실태

김유나 2023. 7. 2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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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 ‘학부모의 과도한 악성 민원’에 불만 고조
지각 지워달라, 부정행위처리 막아달라 민원도
한 교사 “어이없는 민원들… ‘민원한국’ 망해가”
낮밤 가리지 않는 학부모의 연락도 큰 스트레스
“개인 번호 공개 후 방과후·주말에도 민원전화”
“학생의 교내 흡연으로 선도위원회가 개최되자 학부모가 ‘요즘 다 피우는데 학교가 무슨 권리로 징계 주냐’는 민원을 했습니다. 또 교내에서 실외화를 착용하는 학생을 지도했더니 학부모가 ‘중요한 것도 아닌 일로 아이 스트레스 주지 마라’고 항의했습니다.” (경북의 한 중학교 교사)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알려진 이후 교사들 사이에서 ‘학부모의 과도한 악성 민원’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숨진 교사의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고인이 사망 전 학부모의 전화 등으로 괴로워했다는 동료 교사의 제보가 이어지자 교직사회에서는 ‘더이상 참고 넘어갈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21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교사의 추모공간에 동료교사의 메모가 붙어 있다. 뉴스1
23일 세계일보가 교사노동조합연맹을 통해 받은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 사례에서는 교사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면 학부모의 민원이 쏟아진다고 토로했다. 경기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수업시간에 대놓고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우니 욕설이 되돌아왔다”며 “자는 학생을 계속 깨우면 학부모가 전화해서 ‘아이 진로에 그 과목이 필요없는데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자꾸 깨워서 아이가 모욕감을 느낀다’는 민원을 넣었다”고 밝혔다.

경남의 중학교 교사는 “동료교사가 학생끼리 싸워서 서로 사과시켰더니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다른 교사들이 다 있는 앞에서 ‘니까짓게 어디 감히 내 자식을 사과시키냐’며 폭언을 퍼부었다”며 “피해 교사는 며칠간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힘들어했지만 매일 교실에 들어가서는 아무일 없는 듯 학생을 지도해야 했다”고 전했다.

대전의 한 중학교 교사도 “학생의 잘못으로 선도위원회에 올라가자 학부모가 화를 내며 자식을 두둔하고 평소 교사들의 지도내용, 발언 등에 대해 모두 민원 제기를 하며 학생에 대한 지도를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해당 교사는 “또 어떤 일로 민원을 걸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며 “학부모의 막무가내 민원이 너무 힘들다. 이를 담당하는 중재센터나 강력한 법적인 교원보호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밖에 경기의 중학교 교사는 “복도에서 다른 아이의 목발을 가져다 마구 휘젓는 학생이 있어서 경위서를 받았더니 학부모가 ‘대노’해서 ’당신같은 사람이 있는 학교에 애 안보내겠다’고 소리쳤다”고 밝혔고, 충남의 고등학교 교사도 “지각을 지워달라는 민원, 부정행위처리를 막아달라는 민원이 어이가 없다. ‘민원한국’은 망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2일 한 교육청에 극단 선택을 한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전화도 교사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경기의 고등학교 교사는 전화는 물론 집앞까지 찾아오는 학부모 때문에 고충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학교폭력 연루 학생의 학부모가 매일 전화하고 집앞까지 찾아와 1시간씩 하소연했다. 또다른 가족은 교육청에 있는 사람이라며 똑바로 하라는 협박전화를 하는 등 온가족이 괴롭했다”며 “몇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학생의 가족이 일년에 1∼2번씩 전화해서 괴롭힌다. 이런 일을 겪은 뒤 교직에 회의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해 교원평가때 학교폭력 사건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서운하다고 했다. 아이들 잘못인데 결론은 담임이 대역죄인이 된 것”이라며 “그 뒤로 교원평가 결과도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기의 중학교 교사도 “개인 전화번호 공개 후 방과후나 주말 민원전화에 시달린다”며 “현장체험학습에서 아이가 잘 놀고 갔는데도 학부모가 ‘아이가 조원을 마음에 안들어했다’며 저녁 8시까지 통화한다. 근무시간 인정도 안되는 민원전화는 받고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지난 2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전국교사 긴급 추모행동을 열고 초등교사 사망 사건 진상규명, 대책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협박도 일상이다. 충북의 고등학교 교사는 “학교폭력 사안 진행 중 상담일지 공개를 요구해 거절하자 아동학대가 있었다며 허위고소 협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경기의 한 중학교 교사는 “요즘은 아이들도, 학부모도 아동학대가 무기라는 것을 안다”며 “수업시간에 주의를 주면 정서학대가 될 수 있고, 자리에 앉으라고 팔을 잡아도 신체 학대가 되 수 있다. 아동학대로 신고한다는 협박 앞에서 교사들은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경기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이 수업시간에 부적절한 용어를 말해서 지도하니 ‘그건 나의 자유니까 간섭하지 말라’고 하고, 학부모는 ‘선생님 아직 결혼 안했죠? 아이 없죠? 작년에 담임반 어떻게 했는지 제가 다 들었어요’ 등의 폭언을 하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교사 인권 보호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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