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가 성장하려면? SK사장님의 '노하우' 대방출 [남정민의 붐바이오]
화이자가 코로나19 백신을 팔아서 100조원(800억달러)을 벌었습니다. 그중 절반인 50조원을 때려부어서 미국 시젠이라는 회사를 샀습니다. 항체약물접합체(ADC)를 하는 회사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보통 기술이 무르익어서 제품이 나오기까지 5~7년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 ADC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늦었죠. 경쟁자도 많고요. 우리는 ADC가 50조원에 팔린 것처럼 5~7년 뒤에 50조원에 팔릴 기술을 찾는 게 맞는거죠. 그렇게 찾은 게 방사성의약품, 표적단백질분해(TPD) 기술입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
지난 18일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입니다. 이번 기자간담회는 SK바이오팜의 미래 사업방향을 설명하는 자리기도 했지만, 이 사장이 10년 넘게 제약·바이오업계에 몸 담으며 체득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기도 했습니다.
이 사장은 어느 기술에 언제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신약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인지, 한국 바이오 산업이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습니다.
SK바이오팜 회사의 미래 전략은 이미 기사로 많이 접하셨을테니, 이번 붐바이오에서는 이 사장의 노하우를 일부 담아보려 합니다.
기술 성숙도 + 시장 성장률 + 회사만의 강점 '3박자'
어떤 기술에 투자해 어떤 약을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제약·바이오업계를 꿰뚫는 근본적인 고민입니다. 이에 대해 이 사장은 기술적 성숙도가 있으면서, 시장이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거기에 각 기업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 뛰어들라고 조언합니다.
SK바이오팜이 차세대 먹거리로 택한 방사성 의약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방사성 의약품은 항체나 합성약품(전투기)에 방사성 동위원소(폭탄)를 달아줘서 암세포를 죽이는 원리입니다. 기전도 밝혀졌기 때문에 아주 초기 단계의 기술은 아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성숙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대표적인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가 전립선암 치료제인 방사성 의약품 ‘플루빅토’를 지난해 출시하면서 시장도 활짝 열렸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서플라이 체인)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해 출시된 플루빅토가 생각보다 적은 매출을 기록한 이유도 방사성 동위원소 부족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공급망 병목현상에 걸린 것이죠. SK그룹은 이 지점에서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이죠. 약의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으니까요.
아까 말씀드렸죠. ADC라는 기술이 나오기 시작한 게 2017~2018년인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 화이자가 50조원에 사는 기술이 됐습니다. 기술이 성숙되면서 가치가 올라간 것이죠. 그렇다면 투자 의사결정을 할 때 있어서 5~7년 먼저 해야하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방사성 의약품 시장을 택했습니다.
5~7년 후 뜰 기술에 투자해야지 지금 뜨는 기술은 저희하고는 무관합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
"실패는 당연한 것"
통상 신약 개발 성공확률을 1% 미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실험 단계에서 본임상으로 넘어가지도 못하고 역사 뒤편으로 사라진 연구가 수십 수백만건에 달합니다.
신약은 되게 신기한 거에요. 그냥 끊임없이 실패를 반복해야 하는거에요. 실패를 반복해서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그게 다시 쌓여서 신약이 나오는 겁니다. 계속 실패를 하면서 단계별로 가고 임상 1상에 들어가고 하겠죠.
SK가 투자하려고 하는 기술도 앞으로 좀 더 실패할 겁니다. 좋은 뉴스보다는 나쁜 뉴스가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
지나친 애착은 금물
이 사장은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이 나오면 나오는대로 다 끌고가는 것 역시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일부는 팔기도 하고, 또 시도해봐서 ‘아니다’ 싶으면 빨리 포기하는 유연한 문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너무 영업기밀을 말씀드리는데요(웃음) 내 기술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것이 연구개발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착을 너무 가지면 오히려 독이 돼요.
지난 10년간 많은 한국 바이오기업들이 왜 글로벌 회사처럼 성장하지 못했을까 라는 고민을 제가 해왔는데, 그 답 중 하나가 이겁니다. 애착이 너무 강해요.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거죠.
그 애착이 심해지면 심지어 남의 기술을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것까지 나아갑니다.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이라고, ‘여기서 발명된 게 아니잖아’ ‘우리 조직이 아니라 외부 아이디어잖아’라고 하면서 폄하하는 것. 그러면서 내가 만든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타파하는 것이 조직문화 개혁입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
한국 제약·바이오산업도 10년 전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연구인력의 질도 높아지고,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도 대폭 증가했습니다. 지난 10년처럼 앞으로의 10년도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제약·바이오업계 ‘선진국’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길 소망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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