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가 만든 '테라파워'…세상 바꿀 수 있을까?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만든 소형모듈원전(SMR·Small Modular Reactor) 개발 기업 테라파워(TerraPower)의 크리스 르베크 최고경영자(CEO)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탈(脫) 원전'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젊은 세대는 저희 세대와는 달리 원자력 에너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갈수록 원자력이 더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주에 위치한 테라파워 에버렛연구소에서 한국 언론과 가진 간담회에서 "젊은 사람들의 걱정은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후 문제에 더 관심과 걱정이 많고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원자력을 찾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테라파워측은 이날 약 2천평 규모의 격납창고식 건물로 지어진 에버렛 연구소를 한국 언론에 최초로 공개했다. 연구소에서는 크게 나트륨 실험장비와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실험설비 그리고 염소염 용융염원자로 실험장비 등이 갖춰져 있었다.
르베크 CEO는 체르노빌·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며 '더욱 안전한 원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SMR시장이 부쩍 커진 것과 관련해서도 "원자력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안전성을 우려하지만 사실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만큼 안전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은 원자력을 통해 우리가 지금 안전하게 얼마나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며 "원자력을 통해 탄소 배출없이 대량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금세기에 커다란 혜택이 아닐 수 없다"고 부연했다.
르베크 CEO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서도 엔지니어로서의 견해라는 단서를 달고 "'괜찮을 것 같다(It's OK. I think you shouldn't worry)'"고 말했다.
르베크 CEO는 미 렌셀러대 공대를 졸업하고 MIT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마친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해군 근무때 핵잠수함이 연료를 충전하기 위해 들르는 해군 기지에 가족과 함께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다"며 "그렇게 가까이에 살았는데도 괜찮았기 때문에 저는 원자력 에너지를 매우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원자력을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부 지역사회나 이해관계자들이 의구심을 제기하는 건 당연하다"며 "박사 과정에서 다룰 법한 거창한 수식이나 과학 이론이 아닌 중·고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소통하고 다가갈 때 원자력 기술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테라파워는 안전한 원자력과 원자력 혁신을 통해 전 세계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자는 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창립자 빌 게이츠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로는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원자력에 기댈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빌 게이츠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원전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대표적인 원전 옹호론자이며, 그 수단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SMR이다.
대신 기존 원전보다 발전 용량과 크기를 줄이되 안전성을 크게 높여, 친환경 에너지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르베크 CEO는 이날 간담회에서 "2050년쯤 되면 전 세계에 나트륨(Natrium)을 냉각재로 하는 SMR이 수백 개가 만들어져 청정에너지 공급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테라파워의 SMR은 미국 에너지부(DOE, Department of Energy)로부터 1단계 실증단지 구축 비용(약 40억달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20억달러(약 2조 6000억원)를 지원 받으면서 상업화 속도전에서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MR은 발전 규모가 500㎿ 이하인 원전으로, 원자로·증기발생기·냉각재 펌프·가압기 등이 원자력 압력용기에 함께 담겨 있는 일체형이라 기존의 대형 원전과 비교해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부 전원 없이 자연 냉각도 가능하다. 대형 원전과 달리 연결 부위에서 방사능이 흘러나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셈으로, 업계에선 SMR이 대형 원전보다 1천배 더 안전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소형화·모듈화를 통해 전력 수요지 인근에 설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건설 기간이 짧은 것도 큰 장점이다. 5조~6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원전보다 자금 조달 규모도 작은 편이어서 민간 기업의 참여 비중도 쉽게 높일 수 있다.
냉각재로 물이 아닌 다른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4세대 SMR로 규정하는데,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나트륨 원전'은 고속 중성자를 이용한 핵분열로 발생한 열을 액체 나트륨이 냉각하면서 만드는 증기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액체 나트륨이 냉각재로 갖는 다른 장점은 끓는 점이 물보다 8배가량 높아, 냉각재가 갑자기 기화해 고압 증기가 될 위험이 낮다고 한다.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오염수도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테라파워의 SMR도 아직은 실증단계에 머물러 있다. 테라파워는 현재 345㎿ 규모의 1단계 실증단지를 미 서부 와이오밍주에 짓고 있는 중이다. 오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약 25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계획이다.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실증에 가장 먼저 성공한 기업이 SMR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은 2040년까지 SMR 시장이 연평균 22%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영국 국가원자력연구원은 2035년 SMR 시장 규모가 약 400조 ~ 600조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르베크 CEO는 한국 언론들의 연구소 방문 내내 원전 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튼튼한 한국과의 협력 의지를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여러 차례 만나 한미 양국이 원자력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하도록 독려해 왔다"며 "양국 정부차원의 협력·우호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무르익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7일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이창양 장관을 만나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SMR 기술과 향후 계획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창양 장관은 글로벌 SMR 산업 전망에 대해 질의하며 향후 한미 기업 간 SMR 협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한국 기업 중 SK㈜와 SK이노베이션이 모두 2억5천만달러(약 3천억원)를 투자해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함께 공동 선도투자자 지위를 갖고 있다.
테라파워는 또 SK㈜·SK이노베이션, 한국수력원자력과 지난 4월 나트륨 원자로 개발 협력 등을 위한 '차세대 원전기술개발 사업화 상호협력 계약'을 하기도 했다.
원전 업계에서는 한국이 원전 건설·운영으로 노하우를 축적했기 때문에 지금이 SMR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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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CBS노컷뉴스 최철 특파원 steelcho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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