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 시대, 글로벌 공급망 새로운 대안 ‘알타시아’ 뜬다 [이슈 속으로]

서필웅 2023. 7. 2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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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등 亞 14개국 역할 주목
‘세계의 공장’ 中이 생산망 통제 나서자
기업들, 인접 아시아 국가서 해법 모색
풍부한 자원·노동력에 첨단기술 겸비
단일 국가처럼 움직이면 잠재력 충분
상당수가 RCEP·IPEF 가입 ‘통합 채비’
美도 中 공급망 대신할 ‘플랜B’로 여겨
지역 내 효율적 역할 배분 중요 과제로
中선 “허풍 섞인 주장… 대체 불가” 반발
1990년대 이후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중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며 생긴 일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글로벌 ‘빅2’로 자리 잡은 중국이 정치 및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자국 생산망을 조금씩 통제하기 시작한 것. 과거 기업들은 중국의 공장에서 언제든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수급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흐름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됐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필리핀 말바르에 위치한 대만계 전자기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중국 공안 당국이 세계 3대 컨설팅 업체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미국 베인앤드컴퍼니의 중국 상하이 지사를 급습해 직원들을 심문하고, 5월엔 미국 기업신용조사 업체인 민츠그룹 베이징지사의 중국 국적 직원들이 구속되고 해당 지점이 폐쇄되는 등 정치적 압력도 본격화하는 중이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급망을 찾기 위한 기업들의 고민도 본격화했다. 점점 더 많은 글로벌 기업이 중국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중국 밖에서 또 다른 성장을 모색할 대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살바에 위치한 아웃도어 의류 공장에서 2021년 노동자들이 옷을 재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안은 중국 옆에 있었다. 중국만큼 거대한 인구 대국, 중국을 훌쩍 뛰어넘는 기술력과 인재풀, 막강한 자본력, 심지어 풍부한 천연자원까지 세계 산업의 핵심 공급망으로 기능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중국과 인접한 아시아 대륙 동쪽에 몰려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중국처럼 하나의 나라라는 틀로 묶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이들 지역을 ‘알타시아’(alternative+asia)라는 개념으로 묶어 주목을 받는 중이다.
◆필요한 것은 모두 존재한다!

알타시아는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라오스, 캄보디아, 브루나이 등 14개국을 묶어 부르는 용어다. 아시아 대륙 동쪽에 몰려 있다는 공통점 빼고는 오히려 이질감이 더 느껴지는 조합이다.

산업 환경도 다르다. 한국과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은 오랫동안 세계 경제 중추에서 활약해 온 고도 산업국인 반면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은 이제 막 주요 산업 국가로 발돋움하는 국가들이다. 라오스, 캄보디아 등 본격적으로 세계로 뻗어 나갈 채비를 하는 국가들과 인구 45만명의 소국 브루나이 등도 포함돼 있다.
다만, 이들 국가가 갖춘 역량을 하나씩 뽑아 조합하면 중국을 뛰어넘는 역량의 공급망이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중국을 앞질러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 된 인도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많은 인구를 갖춘 국가들에게서 값싼 노동력이 공급된다. 알타시아 국가들의 15∼64세 나이의 생산가능 노동인구 숫자는 무려 14억300만명으로 9억5000만명인 중국을 훌쩍 넘어선다.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국가의 시간당 평균 제조인력 임금은 2∼3달러로 8.3달러까지 오른 중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기도 하다.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 노동력의 숫자도 중국을 뛰어넘어 1억5500만명에 달한다.
한국과 일본, 대만 등의 존재 덕분에 정보기술(IT) 등 최신 산업 흐름에 대응할 기술력도 충분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춘 나라다. 여기에 금융과 물류산업 등에서 세계 최정상을 달리는 싱가포르가 돈과 자원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이미 이들 지역은 2021년 4분기∼2022년 3분기 기간 동안 대미 수출 6340억달러로 6140억달러의 중국을 뛰어넘는 무역액을 기록했다. 역량의 통합 없이 강점만 발휘하며 14개국이 ‘각자의 레이스’를 하면서 얻은 성과다. 만약, 이들 지역이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면 단일 국가로 노동력, 기술, 자원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해 ‘세계의 공장’ 지위를 얻어낸 중국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상상을 충분히 해 볼 만하다.
태국 방콕의 한 섬유 공장에서 2016년 노동자들이 재봉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 알타시아가 중국을 대체하는 것이 당장 실현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가장 큰 장점은 공급업체, 노동자,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지 않고도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적절한 인프라와 결합된 광대한 단일 시장이라는 것”이라면서 “따라서 알타시아가 중국과 진정한 경쟁을 하려면 공급망이 훨씬 더 통합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보도했다.

◆알타시아?… 중국 “허풍 섞인 주장일 뿐”

알타시아 통합의 기반은 갖춰져 있다. 14개국 중 상당수가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가입돼 있는 것. RCEP는 한·중·일·호주·뉴질랜드와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이 참여하는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지난해부터 협정이 발효됐다.
인도 노이다의 스마트폰 제조 공장에서 2020년 노동자들이 스마트폰을 조립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기에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알타시아 국가들은 지난해 출범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소속돼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디커플링 전략의 일환으로 출범한 기구이지만 FTA보다 더 범위가 넓은 경제협력체를 지향하고 있기에 알타시아 통합의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특히 IPEF는 미국의 필요에 의해 공급망 확충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데, 지난 5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IPEF 장관회의에서 공급망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 간 공조 등을 담은 협정이 타결되기도 했다. IPEF 공급망 협정은 상호 공조를 요청하고 대체 공급처 파악, 대체 운송 경로 개발, 신속 통관 등 협력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공급망 위기 대응 네트워크 가동, 공급망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조치를 자제하고 투자 확대와 공동 연구개발(R&D) 등으로 공급선 다변화에 노력하기 위한 공급망 위원회 구성, 공급망 안정화에 필수인 숙련 노동자의 육성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각국의 노동권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 사항을 발굴하기 위한 노사정 자문기구 구성 등 내용을 담았다. 중국과 정치 및 경제적 경쟁 중인 미국도 알타시아를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의 명확한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다.
말레이시아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RCEP, IPEF 등 협력의 틀이 정해진 만큼 필요한 것은 지역 내의 효율적인 역할 배분이다. 알타시아가 단일 국가인 중국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강점을 살리면서 중복 투자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인종, 문화, 종교 등 상이한 부분이 많은 이 지역 국가들 간에 지속적인 소통은 필수다.
이런 알타시아의 연결 가능성에 대해 중국은 ‘허풍 섞인 주장’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지난 3월 ‘중국 공급망 대체에 대한 서방의 비생산적인 집착’이라는 기사를 통해 “인도와 베트남이 중국 공급망을 독자적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이코노미스트가 알타시아라는 허풍 섞인 표현을 만들어 냈다”고 보도한 것. 이 매체는 “중국의 인프라와 물류 네트워크는 효율성이 매우 높아 다른 국가에 비해 전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되어 있다”면서 “여러 국가 간의 물류, 시간, 규정 준수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알타시아가 이런 중국의 공급망을 인위적으로 대체할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남딘에 위치한 스포츠 의류 공장에서 2017년 노동자들이 옷을 재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매체는 이어 “향후 알타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물류 및 인프라 측면에서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더라도 중국은 여전히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면서 “이미 중국이 이들 국가의 경제에도 중요한 부분이 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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