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200만 호 건설’의 역습…특별법은 1기 신도시를 구원할까 [창+]

구경하 2023. 7.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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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만 호.

앞으로 10년간 재건축 대상에 추가될 수도권 아파트 물량이다. 30년 전,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으로 한꺼번에 지은 아파트들이 한 세대가 지나 노후 아파트로 몰려온다.

조성한 지 30년이 된 계획도시를 정비하는 사례는 다른 나라에 선례가 없다. 눈앞에 닥쳤지만, 길잡이가 없는 노후 계획도시의 정비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시대 과제다.

시사기획 창은 18일 방송한 '오래된 신도시의 꿈' 편에서 노후 계획도시 정비 특별법을 중심으로 1기 신도시 현장 상황과 정부의 준비 상태를 짚었다. 도시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특별법의 쟁점과 보완할 점을 짚어본다.

■ 1기 신도시는 노후 도시인가

지난 2월, 국토교통부는 특별법을 발표하면서, 택지조성사업 완료 후 20년 이상 경과한 100만㎡ 이상의 택지지구를 노후 계획도시로 규정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 상당수는 20년 이상 된 계획 도시가 노후 도시라는 정의에 동의하지 않았다.

1기 신도시 중 분당, 일산, 평촌을 설계한 안건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설계 당시에는 2~30년 후에 신도시를 재정비할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고 회상했다. 1960년대 중반 신도시로 건설한 일본의 다마 뉴타운, 영국의 밀턴 케인즈는 조성한 지 40년이 지나면서 쇠락했지만, 아직 정비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주택학회장인 김진유 경기대 스마트시티공학부 교수는 "1기 신도시처럼 30만 호를 공급하는 신도시는 해외라면 10~20년 걸리는 프로젝트인데, 우리나라는 발표에서 입주까지 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면서, 계획도시 정비 역시 전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200년이 걸린 서구의 근대화를 한국 사회가 50년 만에 경험하면서, 소득의 증가, 인프라 구축 등 신도시를 조성한 기간도 다른 나라의 1/5밖에 걸리지 않았고, 도시 정비도 마찬가지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1기 신도시 정비기본방침 수립 연구를 발주하면서, 과업지시서에 해외 사례 검토를 요구하지 않았다. 본보기로 삼을 해외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가 노후 도시냐는 질문에, 정비기본방침 수립 연구를 진행 중인 김중은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도시 전문가와의 일화로 대답을 대신했다. '노후 계획도시'에 관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한글로 올렸더니, 일본 전문가가 '노후'의 한자 표기가 '노후(老後)'인지 질문했다고 한다. 30년 된 도시가 '노후(老朽)'된 상태일거라 생각하지 않아, 노인을 위한 실버타운 계획으로 잘못 이해했다는 거다. 김 연구위원은 "30년 전에 만들어진 중장년기에 접어든 도시가 노년기에 들어서도 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특별법이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분당 신도시


■ 1기 신도시의 정비는 필요한가

1기 신도시가 노후 도시인지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전문가들은 도시 정비의 필요성을 대체로 인정했다. 안건혁 교수는 "1기 신도시 정비를 빨리 서두를 필요는 사실 없다."면서도 "도시는 주민들이 변경의 필요를 느끼고, 미래에 필요한 도시 기능과 주택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라면 정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일산 신도시 총괄기획가(마스터 플래너, MP)인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단독주택은 소유주가 정비 연한 규제 없이 개보수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공동주택의 정비가 규제되는 것은 주거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가 겪는 노후 배관이나 주차장 부족 등의 문제는 정비 사업이 아니면 해결하기 힘든데, 기존 재건축 방법으로는 안전진단을 통과하기 힘들어 정비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안전진단의 구조안전성 비율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변경됐는데, 이는 안전진단 기준 자체가 자의성이 개입되어 있을 여지가 큰 기준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 30년 간 장기 수선에 대한 계획이나 충당금 적립을 통해 주택을 장수명으로 유지하도록 정부가 유도하는 제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1기 신도시 정비 사업의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도시가 성장하기 때문에 재건축이 필요한 거지, 사실 노후화돼서 재건축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3~40년이 지났다고 집을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성장기의 생각"이라면서 "재건축을 당연하게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필요한 곳에만 정비사업을 진행하도록 제한된 구도의 미래 모습을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정비의 필요성이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시장에서 차별화할 것"이라면서, "그런 고려 없이 뭉뚱그려서 정치적인 표라는 관점에서 다 끌고 간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시장의 힘이 없는 곳에서는 사업이 진행되지 않거나, 시장 침체로 어그러지면 지역사회의 갈등만 심화시킬 수 있다며, 쇠퇴기에 다가서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산본 신도시의 한 노후 아파트 복도 모습


■ 1기 신도시, 그대로 두면 슬럼이 될까

인터넷상에는 1기 신도시가 미래에 슬럼이 될 거라는 주장이 있다. 특히, 주민이 고령화되면서 빈집이 늘어난 일본 도쿄 외곽의 신도시 다마 뉴타운 사례를 가져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와 다마 뉴타운은 다르다고 얘기한다.

다마 뉴타운을 여러 차례 현장 연구했던 김중은 연구위원은 "다마 뉴타운은 초기에 소규모 임대주택 위주로 공급했는데, 집이 좁다보니 자녀들의 분가 시점이 빨라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의 1기 신도시는 다양한 규모의 분양주택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이후에도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수도권보다 고령화 속도가 느리다고 밝혔다.

1기 신도시 정비기본방침을 공동 연구하는 기효성 한아도시연구소 본부장도 "1기 신도시 대부분이 주변 지역에 도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 도시"라면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1기 신도시는 슬럼화가 될 만한 도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역세권을 중심으로 도시 기능을 정비하면 일자리나 자족성을 강화할 수 있고 정주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택 중심으로 조성된 1기 신도시가 오늘날 경쟁력을 잃어가는 건 맞지만, 여전히 중산층 거주지로서 쇠퇴와는 거리가 멀다는 의견이다.

특별법 도입 이유 : 한꺼번에 몰려온 노후 아파트

이처럼 1기 신도시의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데도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자 다른 지역, 특히 쇠퇴가 더욱 심각한 지방 원도심과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논란이 뒤따른다. 정부가 특별법을 통해 노후 계획도시를 정비하려는 이유는 뭘까. 정부가 개입하는 이유는 한꺼번에 정비 대상이 된 노후 아파트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점이다. 1기 신도시에 대한 진단이 엇갈리는 전문가들도 이 점에 대해서만큼은 정부 개입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1992년부터 12년간 수도권에 공급한 아파트는 193만 호로, 올해부터 재건축 정비 연한을 채우기 시작한다. 이는 이전 20년간 지어진 수도권 아파트 총 호수 77만 호의 2.5배에 이른다. 이 물량의 상당한 분량이 택지개발을 통해 공급된 아파트인데, 이미 높은 밀도로 건축돼 기존 제도에서는 재건축이 쉽지 않다.

정부 입장에서도 많은 아파트가 동시에 노후화되는 것은 부담이다. 일부 물량이라도 재건축을 할 수 있도록 해서 정비 사업이 일시에 몰리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한꺼번에 재건축이 추진되면 대규모 이주 수요로 인해 전월세 시장이 교란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1기 신도시를 비롯한 계획도시들은 정부의 마스터플랜으로 기반시설과 함께 조성됐다. 이 때문에 단지별로 재건축을 하면 상하수도나 전기, 가스 등 도시기반시설이 부족해질 수 있고, 새로운 기능을 넣을 여유 부지를 찾기 힘들다. 김중은 연구위원은 "특별법을 통해 정비를 하는 목적은 도시 차원의 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이지, 주민들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하는데 사업성을 높이고 분담금을 줄여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이주대책이 없으면 정비가 불가능하다

특별법은 이주대책의 수립을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 명시했다. 중앙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이주대책이 없으면 노후 계획도시의 정비가 불가능하다는데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주단지를 조성할 수 있는 땅이 없다고 난감해하고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가용토지가 전무하다"며 "이주대책은 정부가 행정적, 재정적으로 주도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특히, 평촌과 산본이 인접한 점을 강조하며 이주수요에 대해 중앙정부 차원의 광역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평촌과 산본은 생활권을 공유하기에, 지자체가 각각 이주대책을 세워도 이주 수요는 시 경계를 넘어 상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비 사업의 전체 속도는 이주 대책과 긴밀하게 연관될 전망이다.

2월 9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1기 신도시 5개 지방자치단체장 간담회 모습


지방자치단체의 난개발을 막을 수 있을까

노후 계획도시 정비에서 높이 계획과 용적률 등의 실질적인 인허가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다. 중앙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만, 시장 군수의 최종 결정에 따라 정비 사업이 진행된다. 전문가들은 정무직 공무원인 지자체장들이 유권자들의 압력에 도시를 난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김준형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성장세력과 연합해서, 장기 인구 예측 없이 모든 지역을 개발의 대상으로 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도시 정비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데, 장기 인구 추계나 주택수요보다는 선거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계획이 변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유 교수는 "정부가 너무 일반적인 기준만을 제시하면 마지막 인허가권을 가진 시장 군수에 의해서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비기본방침에 현실적인 방침이 담기고, 국토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일부 개입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도, 정비기본계획 수립은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에 버거운 일이 될 거라는 예상도 나온다. 김진유 교수는 "교통영향평가를 제외하면 경관, 학교시설 등 기반시설에 대한 검토는 수작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기반시설 용량을 파악한 뒤 그에 따라 적정 용적률을 산출하는 시뮬레이션을 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시장 군수가 예산과 전문가를 동원해 계획을 수립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이에 대해 공을 떠넘기는 양상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1기 신도시와 다른 정비사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지방 행정에는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창무 교수는 "기존에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거나, 진행 가능성이 있는 지구와 1기 신도시가 경쟁적인 공급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서 "공급 확대에 대한 부담, 사업 조정에서 행정 갈등 요인도 앞으로 무시할 수 없는 지자체의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천 중동신도시에 들어선 용적률 900%대 주상복합건물


개발이익을 통한 도시 정비, 한계 직면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은 1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20년 이상 경과한 100만㎡ 이상의 전국 택지지구에 적용된다. 하지만 지방도시들은 주사업성이 낮아, 실제 특별법에 따른 정비사업 추진이 원활하지 않을 거로 전망된다. 김진유 교수는 "사업성이 확보되는 곳은 기본적으로 수요가 아주 많은 수도권, 그 중에서도 현재 개발 밀도가 낮은데 수요가 상당히 집중되는 곳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비 사업은 민간의 개발이익을 공공이 환수해 도시 기반시설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도시 성장기에는 작동하지만, 쇠퇴기 지방 도시에서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방식이다. 김 교수는 "특별법의 정비 방식은 의도하지 않아도, 수도권을 활성화하고 지방과 격차를 더 벌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지방 노후 계획도시의 정비를 위해서는 중앙 정부가 재정을 투자해 도시 기반 시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들도 수도권과 같은 도서관이나 학교, 공원 같은 생활기반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접근 방식이 바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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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시 : 2023년 7월 18(화) 밤 10시 20분 KBS 1TV/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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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 기자 (isegor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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