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은 미사일이고 인공위성은 인공위성이다

김창수 2023. 7. 2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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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7차례 위성 발사를 시도해 지구궤도에 진입시킨 위성은 두 개다. 위성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한 사실상 ‘죽은 위성’인데,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 개발 내력이 담겨 있다.
2012년 4월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 미사일발사장. 위성운반로켓 ‘은하 3호’가 설치되어 있다. ⓒAP Photo

7월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지구궤도를 돌고 있던 북한의 인공위성 ‘광명성 4호’가 지구로 낙하하여 소멸했다고 보도했다. 다소 느닷없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5월31일 북한이 발사한 정찰위성이 서해로 추락했다. 북한은 추락한 군사정찰위성은 ‘만리경 1호’, 발사체는 신형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이라고 했다. 당시 북한의 정찰위성 추락에 대해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오발령하여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이 발사한 인공위성이 그동안 지구궤도를 돌다가 이번에 낙하하여 소멸했다고 한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아직도 ‘광명성 3-2호’라고 불리는 북한의 인공위성이 지구궤도를 돌고 있다고 한다. 광명성 3-2호도 머지않아 광명성 4호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곧 지구로 낙하하여 소멸할 것이다. 이들 위성은 소형 위성이기 때문에 대기권으로 낙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열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다. 잔해로 인한 피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낙하 시점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만약 밤에 낙하할 경우 증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빛줄기 때문에 유성처럼 보일 수 있다.

■ ‘죽은 위성’ 2개에서 주목해야 할 점

북한은 만리경 1호 위성까지 포함하여 7차례 위성 발사를 시도했다. 이 가운데 지구궤도에 진입한 위성은 2012년 광명성 3-2호와 2016년 광명성 4호 총 두 개다. 두 위성은 모두 위성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사실상 ‘죽은 위성’이었다. 이 죽은 위성 두 개에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인공위성을 개발해온 내력이 담겨 있다.

5월31일 ‘천리마 1형’ 발사 장면. 북한은 발사 후 2시간30분 만에 발사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인공위성이나 미사일은 모두 로켓을 기반으로 한다. 로켓 상단에 탄두를 장착하면 미사일이 되고, 위성을 장착하면 인공위성 발사체가 된다. 로켓, 미사일, 위성. 이 세 가지는 사실상 한 세트다. 미사일과 위성은 모두 로켓에 기반하고 있다. 이 둘은 로켓이 잉태한 이란성 쌍생아와 같은 관계이다. 실제로 인공위성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선두 주자인 미국과 옛 소련은 모두 독일의 V2 로켓을 기반으로 해서 미사일과 인공위성 개발에 착수했다.

미국은 V2 로켓의 개발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한테 로켓 기술을 전수받았다. 오늘날 미국의 인공위성·ICBM 세계 최강국 지위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을 점령하여 V2 로켓 100여 기의 부품을 획득했다. 이로부터 ICBM을 개발해 최초의 ICBM인 R-7을 만들었다.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로 알려진 1956년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도 R-7 로켓으로 가능했다.

■ 핵·ICBM·인공위성 3종 세트 개발 과정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할 때마다 국제사회는 미사일 개발로 여겼다. 1998년 8월 북한은 백두산 엔진을 이용해 광명성 1호 위성을 발사다.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에는 스푸트니크 쇼크 못지않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를 대포동 미사일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광명성 1호가 지구궤도를 돌며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송출한다고 했지만, 지구에서 이를 수신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었다.

대포동 1호를 '실패한 ICBM'이라고 보는 이유는 위성이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방백서'에 대포동 1호를 ICBM이라고 부르면서도, 위성을 궤도에 올리지는 못했다는 모순된 기술을 하고 있다. 로켓을 이용해 위성을 우주로 실어 나르는 실험을 했지만, 실제 목적은 ICBM에 활용할 장거리 로켓 기술 개발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사일은 미사일이고 인공위성은 인공위성이다. 군사적으로는 미사일에 대한 수요가 있지만, 경제와 과학 측면에서는 인공위성에 대한 수요가 있다. 북한도 군사 분야에서는 미사일 수요가, 경제와 과학에서는 인공위성에 대한 수요가 있다. 장거리 발사체를 모두 미사일이라고 단정한다면 인공위성의 수요에 대한 분석과 예측에 실패하게 된다.

북한 의도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1차적이다. 대포동을 미사일이라 해놓고,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것이 실패했다고 기술하는 건 과학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분석의 실패를 동반한다.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바탕으로 인공위성 발사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하자 핵실험을 했고, 핵 능력을 갖추자 ICBM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ICBM 발사 능력을 보유하자 이를 바탕으로 다시 인공위성을 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1970년대에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 스커드미사일 개발, 2000년대 초반 인공위성 발사와 핵실험, 최근 5년간 ICBM 실험은 모두 연속된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지난 5월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로 계속 진행 중이다.

북한의 핵·ICBM·인공위성 3종 세트 개발 과정은 5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1단계는 단거리 미사일 개발, 2단계는 인공위성 발사, 3단계는 핵 개발, 4단계는 ICBM 개발, 5단계는 정찰위성 발사이다. 물론 이 단계는 모두 단절적이지 않고 중첩적이지만, 특징을 중심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북한이 핵과 ICBM을 개발한다고 단정해왔다. 북한이 핵·ICBM·인공위성 3종 세트로 개발해온 국가전략을 피상적으로만 살폈다. 당연히 북한의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동결시킬 카드를 연구해 대안을 마련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분석이 허술해진 틈을 타고 북한은 핵·미사일·인공위성 3종 세트를 완비하는 길로 다가가고 있다. 물론 이 과정은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한 길이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그림 1〉 참조).

1976년 북한은 이집트로부터 스커드B 미사일을 획득하면서 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욤 키푸르 전쟁으로 알려진 1973년 4차 중동전쟁에 북한은 전투기 조종사 20여 명을 비롯하여 군사지원단을 파병했다. 이때 북한 공군 조종사가 김정일 시대에 북한의 2인자로서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조명록 총참모장고 알려졌다.

당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소련 군사고문단을 돌려보낸 뒤였기 때문에 북한 당국의 공군력 지원을 높이 평가했다. 이집트는 지금도 4차 중동전쟁을 자신들이 승리한 전쟁이라 주장한다. 이 전쟁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된 배경이 되었다. 사다트는 북한의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1976년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북한에 제공했다. 이것이 훗날 북한의 핵·ICBM·인공위성 3종 세트 개발의 1단계로 이어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은 1998년 8월 대포동 미사일로 알려진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 북한은 인공위성을 쏘면서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강조했다. 우주 개발은 세계적 추세이고, 우주의 평화적 이용은 모든 국가의 합법적 권리라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북한은 광명성 1호 발사를 성공이라고 했지만, 궤도에 올리지 못했다. 이후 북한은 2006년 6월 대포동 2호를 발사했지만 발사 40초 만에 추락했다. 북한은 이 운반체와 탑재 위성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통상 서방이 부르는 대포동 2호로만 알려졌다.

■ 북한의 새로운 개발 패턴

대포동 2호 발사 때부터 북한의 새로운 패턴이 나타난다. 발사체를 쏜 다음 핵실험을 하는 것이다. 북한은 1·2·3차 핵실험을 모두 장거리 발사체 발사 이후에 실시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핵실험의 명분으로 자위적 조치를 내세웠다. 북한 입장에서 발사체 발사는 우주 공간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권리를 행사한 것인데, 국제사회가 이를 규탄하자 자신에 대한 압박으로 인식했다. 북한은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부당하다는 점을 호소하고 싶었지만, 국제사회에 통용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미국과 북한의 충돌은 네오콘이 주축이던 부시 정부 집권 시기부터 본격화되었다. 부시 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전임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접근법인 ‘페리 프로세스’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이러한 대북 압박에 북한은 자위적 차원에서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고 내세웠는데, 북한 핵실험은 유엔 대북 제재로 이어졌다. 이런 악순환은 오바마·트럼프 정부에서도 계속되었다.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지 못하고 압박을 계속할 경우 결국 북한의 핵 무기고만 키워줄 것이라는 우려는 이렇게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그림 2〉 참조).

우주 발사체 띄우기에 집중한 시기에 북한은 국가우주개발국을 설립하고,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북한은 2013년 4월 ‘우주개발법’을 채택하고, ‘국가우주개발국’을 신설했다. 국가우주개발국은 우주 발사체 및 인공위성 개발·발사, 동해와 서해에 있는 우주 발사체 발사장과 평양에 있는 위성관제종합지휘소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이처럼 법·조직을 갖추고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북한이 우주 개발과 인공위성 개발을 목표로 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ICBM을 발사하기 위해서 굳이 이렇게 위장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북한도 우주 개발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의 영향

북한의 위성 기술은 낙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궤도 진입에 성공한 광명성 3-2호, 광명성 4호는 모두 위성의 기능을 하지 못한 죽은 위성이다. 두 위성은 궤도 진입엔 성공했지만 이후 흔들거리며 불안정한 운행을 해왔다. 지금까지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아서 지상과 송수신 능력이 없어 보인다.

‘죽은 위성’이라고 해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거리 로켓 발사능력 확보, 핵실험 성공이라는 군사적 기술을 강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즉, 죽은 위성 발사로 ICBM 운행 능력과 핵실험이라는 두 가지를 얻은 셈이다. 북한의 돌발행위에 대해 냉철한 분석 없이 목소리만 높이는 것은 더 이상 능사가 아니다.

4차 핵실험부터는 인공위성 발사보다 핵실험을 먼저 했다. 북한은 4차 핵실험이 수소탄 실험이라고 밝혔다.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본격적으로 핵능력 강화에 나섰다. 2017년 6차 핵실험과 그해 11월 ICBM인 화성 15형을 발사한 이후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이후 평창올림픽의 성공과 연이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봄이 왔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로 정세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북한은 추가 핵실험을 하지는 않았으나 ICBM 성능 향상을 본격화했다.

북한은 북·미 대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유지했지만,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엔 이를 파기하고 화성 15형의 사거리를 대폭 향상한 화성 18형을 발사하기에 이르렀다. 동전의 양면처럼, 북한의 미사일 성능 향상은 우주 발사체 발사 능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2023년 5월 정찰위성 발사로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를 재개했다. 2차 국가우주개발계획 기간(2016~2020년)에는 지구관측위성이나 과학·농업 등에 사용할 인공위성 발사를 언급해왔다. 하지만 3차 국가우주개발계획이 시작된 2021년부터 김정은 위원장은 정찰위성 개발을 지시했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명분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정세 판단으로 보인다.

2016년 2월7일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의 광명성 4호 발사 소식을 서울역에 모인 시민들이 접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화성 18형을 발사하여 ICBM 성능을 향상했으나 여전히 대기권 재진입 실험은 하지 않았다. 이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으나, 북한 스스로 이를 입증하지는 않고 있다.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찰위성 발사를 시도하는 것은 과거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발사했을 때 상황과 비슷하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에서 V2 로켓 기술을 획득한 소련은 이를 응용하여 ICBM인 R-7 로켓을 개발했다. 하지만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ICBM 개발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1957년 10월4일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 공간으로 띄우는 데 성공했다. 미국을 충격에 빠뜨리고 소련 과학의 위대함을 높여서 소련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북한도 만리경 1호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해 이러한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실패했으나, 다시 쏠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북한은 미사일과 인공위성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에 착안해 국제사회와 대화가 단절될 때마다 핵, 미사일, 위성, 로켓의 능력을 향상해왔다. 그 의도를 정밀하게 읽지 못하면, 북한의 무기고가 점점 늘어갈 것이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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