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앞에 무릎 꿇은 反日 [노원명 에세이]
2019년 이맘때는 반일 열풍이 뜨거웠다. 그해 6월 말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하자 유니클로, 아사히 맥주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자신의 렉서스 승용차를 부순 ‘의인’도 나타났다. 인스타그램에서 일본 여행 다녀온 티를 낸 인플루언서들이 ‘매국노’ 취급을 당했다. 그 와중에 삿포로에서 휴가를 보낸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칼럼(제목도 ‘삿포로에서’였다)까지 써 내 보냈으니 반응이 순할 리가 없었다.
그 칼럼에 달린 댓글을 지금 ‘공감비율순’으로 찾아본다. 맨 먼저 나오는 것이 ‘잽머니 쳐먹은 토착왜구 기레기’다. ‘일본에서 돈 받아먹은 친일파 쓰레기 기자’라는 뜻이다. 거의 모든 댓글이 분노와 경멸로 가득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댓글에는 별 감정이 없다. 궁금한 것은 4년 전 ‘화이트리스트’ 사태 때 들불처럼 번졌던 ‘일본 보이코트’ 운동이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 국면에선 왜 안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엔저’가 이유중 하나가 될 것같다. 2019년 8월1일 당시 100엔당 1091원이었던 원·엔 환율은 지난 21일 현재 909원까지 내려왔다. 4년 전에도 엔값은 어지간히 낮았는데 그때보다 17% 가량 더 싸졌다. 기본적으로 ‘No 재팬’이 불가능해지는 환율대다. 내 주변만 돌아봐도 이 기록적인 엔저 국면을 활용해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다녀올 사람들, 일정을 맞추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넘쳐난다.
4년 전 일본 보이코트 운동을 펼쳤던 이들 중에서도 꽤 많이 다녀오지 않았을까. 오염수 괴담 운동의 선봉에 선 사람들 중에서도 몇 명쯤은 ‘엔저 특수’ 여행 계획을 세웠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홋카이도 여행 문자를 들켜버린 더불어민주당 중진 김영주 의원 케이스를 보면 그렇게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괴담 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
이런 판국에 일본여행 보이코트 운동을 들고나오면 파리를 날리는 것은 기본이고 같은 진영 안에서도 욕먹을 가능성이 있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남들 다 재미 보는데 우리만….’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것이다. 노련한 그 진영의 운동가들이 이걸 모를 리 없다. ‘오염수는 위험하지만 일본 여행은 더 위험할 것 같기도 혹은 아닌 것 같기도 어쨌든 오염수를 방류하여서는 아니 되고 그렇다고 일본여행을 확정적으로 위험하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기도…’.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다.
광우병 사태 때 ‘뇌송송 구멍탁’ 운동에 동참했던 일부 연예인들이 미국 가서 햄버거 먹는 사진을 들켜 웃음을 산 적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하지만 미국가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 패티를 먹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할 확정적 증거는 있다고 말하기가 확정적인 것인가 아닌가.’ 그때도 그렇게 어물쩍 넘어갔다. 한국에 미국 쇠고기가 들어오는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미국 가서 햄버거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의 스텝이 그렇게 꼬여 버렸다.
일본은 안전하고 아름다운 나라다. 음식은 훌륭하고 볼거리도 많다. 그런 나라를 싼값에 여행할 기회가 왔을 때 가는 것은 현명한 경제인의 태도다. 지금 많은 한국인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그 많던 반일주의자, 오염수 괴담 신봉자들이 유독 일본여행에 대해서만은 입을 꾹 닫고 있는 모양이 고소를 자아낸다. 저들의 까막눈 종족주의, 과학을 우습게 여기는 당당한 무식함도 돈 앞에서는 비리비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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