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율 낮은 저임금 노동 현실도 모르고 ‘시럽급여’라며 깎을 생각만
저임금 노동자 ‘세후’ 임금, 실업급여와 역전 안 돼
“실업급여 하한 낮출 게 아니라 저임금 수준 높여야”
[주간경향] 정부·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7월 12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정부는 실업급여가 구직자들의 구직 의욕을 꺾고 있다며 ‘하한액 폐지’, ‘근무 일수 기준 강화’ 등의 제도 개편을 예고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최저임금의 80%를 지급하는 높은 하한액 제도와 지나치게 관대한 지급 요건으로 인해 단기취업과 실업급여 수급을 반복하는 왜곡된 계약 관행이 있다”며 “이로 인해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고,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취업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기간 중 재취업률이 28%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공청회 모두발언에서 “일하면서 얻는 소득보다 실업급여액이 높다는 것은 성실히 일하는 대다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직자들에게 ‘도덕적 해이’ 프레임을 덧씌우는 ‘비하 발언’도 이어졌다. 박대출 의장은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고용노동부 실업급여 담당 공무원은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이 계약기간 만료가 된 김에 쉬겠다고 하면서 온다”며 “실업급여 받는 기간에 해외여행을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사거나 옷을 사거나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과의 비교
정부·여당의 이 같은 주장은 최저임금과 실업급여 비교의 타당성, 고용보험의 성격, 정부의 일자리 정책 방향 등을 따져볼 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정부가 제시한 통계에는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노동자의 월 근로소득을 179만9800원으로 상정했다. 최저임금 월 201만580원에서 4대 보험료 등 원천징수되는 비율(10.3%)을 뺀 금액이다. 월 실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인 184만7040원으로 계산했다. 1일 최저임금의 80%인 6만1568원에 30(일)을 곱한 금액이다. 하지만 월 근로소득에서 10.3%를 제하는 고용노동부의 산식은 세율이 낮은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세금을 거의 안 내기 때문에 ‘세후’로 최저임금이 80% 이하로까지 줄어드는 역전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다. 최저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다양한 급여형태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다. 김종진 이사장은 “최저임금 201만580원은 한 달 평균 209시간, 26일 근로를 기준으로 받는 금액이다. 반면 기간제 노동자들의 경우 주휴수당, 연차휴가 없이 하루 최저임금 6만6000원을 일할 계산해 받는 경우도 있다. 고용노동부의 계산은 다양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단순 시뮬레이션으로 통계 오류가 있다”라면서 “정부는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출 게 아니라 저임금 일자리의 임금 수준을 올리는 다른 정책적 수단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업급여 또한 최저임금과 마찬가지로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재철 전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최저생계비와 최저임금을 두고 무엇이 더 높아야 하냐는 논쟁이 있었다. 일하면서 받을 수 있는 돈에 따라 일하지 않는 사람이 받아야 할 돈의 한도를 따지는 논쟁이었다. 이와 비슷한 논쟁을 정부·여당이 다시 끌고 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후진적이다”라며 “헌법 제34조 제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고 있다. 이는 최저생활의 보장을 국가에 의해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업급여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저임금의 100%도 아니고 최저임금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뗀 가처분소득에 해당하는 80%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60%로 낮추거나 폐지한다는 것은 헌법적 가치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업급여는 ‘구직급여’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 163만1000명 중 하한액 적용을 받은 실직자는 119만2000명으로 73.1%에 달했다. 노동계에서는 하한액이 60%로 낮춰질 경우 저소득층에 타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만약 하한액이 60% 정도로 낮아지면 많게는 한 달에 60만원 정도 수급액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소득이 없을 때는 실업급여라도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라며 “정부는 말로는 약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약자는 정부가 주로 공격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업급여는 재취업을 위한 구직기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구직급여’다. 김종진 이사장은 “실업급여는 재취업 활성화, 좋은 일자리로의 전환에 그 목적이 있다. 재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적정 수준의 구직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면 당장 최저임금 수준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재취업할 수밖에 없다”라며 “그렇게 되면 또 6개월이나 1년 후에 계약만료로 실업급여를 받게 된다. 반복수급이 될 수밖에 없다. 하한액을 낮추게 되면 다시 불안정한 일자리를 선택해 회전문처럼 반복수급을 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정부가 내세운 취지에도 큰 틀에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일수록 실업급여를 통해 좋은 일자리로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해야 반복수급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정부에 제출된 ‘2022~2026 국가재정운영계획 지원단 보고서’는 일자리 성격에 따라 전문성이 낮은 일자리에 재취업, 기존에 일해 왔던 직종에서 전문성을 살린 재취업, 새로운 경력을 쌓기 위한 재취업 등 3가지로 분류했다. 보고서는 첫 번째 경우에 대해 “저임금 단순일자리를 반복적으로 얻는 집단의 경우 첫 번째 재취업 유형에 해당하므로 이들에 대한 실직 시 소득을 보장하는 구직기간은 짧은 것이 효율적이다. 이들의 경우 일자리를 얻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실업급여 수급을 위한 최소 가입기간을 늘리더라도 피해를 보는 이들은 매우 적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종진 이사장은 “자동화, 무인화, 디지털화 등에 의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이들이 다른 일자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최소한 1년~1년 6개월은 교육을 받아야 현 수준보다 임금이 떨어지지 않는 일자리로 전환할 수 있다. 실업급여를 4~5개월 받으며 교육을 받아 더 나은 일자리로 갈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실업급여가 ‘구직급여’인 만큼 자발적 실업 또한 실업급여 대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재철 전 연구위원은 “해고나 권고사직 등 비자발적 실업에만 실업급여를 지급한다는 것은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 OECD 국가의 상당수가 비자발적 실업과 실업급여 지급액의 차이는 있으나 자발적 실업에도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실업보험이 고용보험으로 바뀐 것은 실업급여가 고용을 촉진하는 성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라며 “한마디로 구직을 조건으로 지급하는 돈인데, 자발적 실업인지 비자발적 실업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수급기간 따지면 소득대체율 낮아
정부는 실업급여가 최저임금보다 높은 ‘역전현상’을 지적한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실업급여 소득대체율은 높아야 하지만, 실제 수급기간을 따지면 다른 나라보다 소득대체율이 현저히 낮다. 1년간 고용보험에 가입한 경우를 비교했을 때, 한국은 4개월의 수급기간을 갖는 반면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은 6개월의 수급기간을 갖는다. 아일랜드,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등은 10개월이 넘는 수급기간을 갖는다. 또 한국은 최장 240일(8개월) 동안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직 후 12개월 시점에서는 소득대체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게 된다. OECD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실직 후 1년 사회보장급여의 평균 소득대체율(평균임금의 3분의 2를 기준)’은 OECD 평균 43%, 벨기에·룩셈부르크·덴마크·스페인·노르웨이·프랑스 등은 60~80% 이상인 데 반해 한국은 24%에 불과하다.
이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고용보험기금의 건전성 회복 등을 내세우며 하한액을 조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2017년 10조2000억원이었던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2022년에는 적자를 기록했다.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고용보험기금이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실업이 많이 발생해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고 경기가 좋아지면 기금이 쌓여 흑자전환이 되기도 한다.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상황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무리하게 하한액 조정을 주장하고 나선 배경에는 ‘긴축재정’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국장은 “정부가 고용보험의 원래 기능은 무시한 채, 긴축재정의 기조에서 예산을 줄이는 측면으로만 기금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고용보험기금의 재정안전성을 위해서는 실업급여 하한액의 조정이 아닌 다른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김종진 이사장은 “한국의 고용보험료율은 OECD 평균보다 낮다. 고용보험기금은 노사가 반반 부담하고 있어 보험료율을 올리게 되면 양쪽의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고용보험은 육아휴직급여와 교육훈련기금까지 연동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OECD 평균까지 올려야 한다고 보고, 기금의 확충을 위해서 정부도 기여를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재철 전 연구위원은 “유연안전성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보완할 수 있도록 오히려 실업급여액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하며 “고용보험재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육아휴직 급여를 따로 떼어내 사회보험을 만드는 등 다른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고용보험기금의 재정안정성을 실업급여와 일 대 일의 관계로만 보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발상이다”라고 지적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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