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빈곤의 섬’ 소요가 한국에 던지는 ‘이민자 공존’ 숙제

노지원 2023. 7. 2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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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유 있는 유럽
통합 위한 거주 정책
17살 알제리계 프랑스 청년 나엘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낭테르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뒤 반정부 시위가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했다. 지난 3일 낭테르의 한 벽면엔 “나엘을 위해 정의를”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낭테르/노지원 특파원

지난달 27일 프랑스 파리 북서부 외곽 도시 낭테르에서 ‘나엘’이란 이름의 알제리계 17살 청년이 경찰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낭테르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곧 폭력·소요 사태로 비화했고 프랑스 전역으로도 확산했습니다. 프랑스의 고질적인 이민자 차별 문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낭테르처럼 이민자가 모여 사는 도시 변두리, ‘방리외’에 이목이 쏠렸습니다. 경제적 형편이 녹록잖은 이민자들 상당수는 이런 지역에 몰려 살고 있습니다. 집값·물가 등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도시 중심에서 멀지 않아 경제활동을 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프랑스 전체 인구 중 10.3%(약 700만명)를 차지하는 이민자 상당수는 파리에서 10여㎞ 떨어진 낭테르와 같은 외곽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지역이 오랜 기간 정부의 개발계획이나 복지정책에서 소외됐다는 점입니다. 나엘의 죽음이 평화적 시위를 넘어 폭력 사태로 비화한 배경에는 이들 지역의 열악한 환경, 차별에 대한 사회의 외면, 정부의 방치 및 방관 등이 두루 점철돼 있습니다. ‘내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이 만연한 가운데 경찰의 잘못이 드러나자 이민자들의 억눌렸던 감정은 분노가 됐고 무차별적인 폭력 사태로 번졌습니다.

막을 수 없는 ‘민족적 분리’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노동력 부족을 겪으며 이민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한국도 이런 문제를 가볍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한국에 사는 130만명(2022년 기준)이 넘는 외국인 상주 인구도 특정 지역에 몰려 살고 있습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만 전체 외국인의 63.4%가 거주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요식업, 가사·육아 도우미, 간병인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한국계 중국인은 서울 안에서 상대적으로 주거 비용이 저렴한 구로구 가리봉동, 구로동, 금천구 독산동, 영등포구 대림동 등에 많이 삽니다. 이주민의 집단 거주는 한국에서도 오래된 일입니다.

이민자들이 특정 지역에 몰려 사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독일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민자 수용에 관대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이민자 비율은 2021년 기준 17.3%(1420만명)에 이릅니다. 독일 지방정부와 주택 업계는 그동안 도시에서 ‘인종적 혼합’을 추구했습니다. 독일의 백인 원주민 사이에 이주민이 같이 섞여 살게 해 통합을 촉진하겠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민자가 도시 전체에 균등하게 나눠 살도록 하기 위해 주거지에 이민자 쿼터를 두고 추가 전입을 금지하는 정책이 도입됐습니다. 독일 건축법의 토지이용계획에도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거주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도록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한 지역에 특정 인종만 모여 살지 않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민자와 원주민을 물리적으로 섞이게 하는 행정 자체가 위험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독일의 차별금지법인 일반평등대우법(AGG)에는 주택 임대에서 “안정적인 사회 구조”를 만들기 위한 조처를 허용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독일 연방 차별금지국은 되레 이 조항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개정 의견을 냈습니다. 정부나 주택 공급자가 인위적으로 거주자 구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주민이 자기들 의지에 따라 같은 지역에 몰려 사는 ‘민족적 분리’를 막는 것은 차별의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어렵습니다. 이주민은 대체로 △경제적 능력이 취약한 편이고 △자녀 등이 많아 가구 규모가 평균 이상이며 △불리한 임대 관행 등 탓에 거주지 선택지가 중저가 이하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애초에 주거 지역에 대한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빈곤의 섬’ 방치하면 안돼

이러한 분리가 이민자 통합에 반드시 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2005년 독일 샤더(Schader) 재단이 발표한 ‘도시의 이민자: 도시 통합 정책을 위한 제언’ 연구를 보면,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가족이나 동포의 존재는 오히려 이민자에게 여러가지 이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현지 노동 시장, 복지 등 사회 시스템이 아직 익숙지 않은 이민자에게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중요하고, 문화·사회적 동질성, 그리고 공간적 근접성이 확보된 상황에서 네트워크는 더 쉽게 형성됩니다. 이주민이 모여 살면 자신들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대변할 수도 있습니다.

거주지 선택을 위한 자발적 분리가 통합을 촉진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선 문화적 특수성에 따른 갈등을 피할 수 있고 이주민의 요구에 맞춰진 기반시설이 더 쉽게 들어서서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된다는 겁니다. 각 나라에 형성된 차이나타운·코리아타운 등이 이주민의 정치·경제·사회적 위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주민 집단 거주지를 ‘빈곤의 섬’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독일의 고민과 노력은 앞으로 이주민이 늘어날 우리나라도 참고할 만한 내용입니다. 독일 샤더 재단의 연구는 어린이나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통합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고 조언합니다. 지난달 27일부터 시작된 프랑스 소요 사태에서 일주일 동안 체포된 4천여명 중 1200명이 미성년자였다는 사실은 이들 연령층에 대한 통합 대책 마련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보여줍니다.

샤더 재단은 언어 습득을 위해 유아들의 유치원 언어 수업 참석을 의무화하고 이주민 가정의 어린이·청소년에게 여가 활동 혜택을 제공하자고 제안했습니다.지역 학교가 교과 과정 수업만 하는 데서 나아가 지역 젊은이들이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실습 수업, 인턴십 지원 등 중요한 교육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특정 동네 출신이나 특정 학교 졸업이 낙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해당 지역에 ‘명성이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은 현지인과 이주민 사이 통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주거환경 개선도 중요합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에서 보듯,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범죄가 확산될 수 있습니다. 주택 공급자가 이민자로 구성된 임차인 자문그룹을 운영해 주거 안정에 신경쓰고 환경 개선까지 따라온다면 통합은 더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샤더 재단은 조언했습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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