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위기』 뮈르달 부부 “한두 개 번뜩이는 아이디어론 안돼… 총체적 개혁만이 출산율 개선” [김용출의 한권의책]

김용출 2023. 7. 23. 0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구 문제를 바라보는 보는 스웨덴 사회의 시각은 안이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작금의 한국처럼. 신멜서스주의자들은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인구 억제 해법을 예찬하거나 자발적 출생 제한을 권장했고, 보수주의자들은 출산하지 않는 건 가족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며 피임금지법을 도입하고 낙태를 규제하는 등 도덕적이고 가부장적으로 접근하며 희희낙락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아예 문제의식 자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미 과잉생산이 우려될 정도로 과학기술은 발전하고 있었고, 이에 비례해 인구 증가율은 급속히 줄고 있는 게 보였다. 더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해외에서 들어오는 이민 인구를 제외한다면 실질적으로 인구가 감소 중인 것으로 추정된 상황이었다.

텅빈 신생아실의 모습. 연합뉴스
1930년대 초, 각각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알바와 군나르 뮈르달 부부는 시대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구 결과, 인구 위기의 배경에는 출산율 저하가 자리하고 있었다. 스웨덴 출산율은 1880년대 인구 1000명당 신생아수가 28명을 기록한 이래 지속적으로 떨어져 1928년에는 16명까지 내려갔고, 1933년에는 13.69명으로 추락했다. 이 같은 출산율은 당시 유럽 내에서 가장 낮은 수준. 스웨덴에 인구 위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출산율이 급격히 줄고 있는 것일까. 보수주의자들의 분석처럼, 젊은 부부들이 가족이나 자식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부부는 당시 스웨덴의 출산율 저하는 젊은 부부들의 윤리도덕 감정 때문이 아닌 철저히 경제적, 사회구조적 배경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출산율 감소의 원인은 가족 제도의 변화된 사회구조 및 변화된 사회 윤리적 내용에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스웨덴)가 산업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따라온 변화가 가정을 이루려는 사회적 경제적 근본 이유를 바꿈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이 바뀐 것에 우리에게 필요한 대답이 있다. 출산율의 감소는 실제로 이전 사회에서 물려받은 가족제도가 오늘날의 경제, 사회에 맞추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130쪽)

부부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가족의 의미가 극적으로 변화했고 이에 따라 출산율이 급감한 것으로 분석했다. 농경사회에서는 여성과 아동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생산 공동체이자 소비의 주체였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되면서 가족은 생산이 아닌 소비의 단위로 변했다. 출산과 양육의 비용은 각 가정으로 전가됐고,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의 지위는 하락하면서 출산율 저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더 이상 출산할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출산은 여성에게 불편함과 위험을 동반하고, 여성의 경력 단절 및 다른 생활의 중단을 가져온다. 일시적이지만 만족스러운 성생활의 제약을 가져오고, 결혼 생활의 신뢰관계에 위험을 불러일으킨다. 또 가정의 비용 지출 증가를 유발하는 동시에 미래 보육에 대한 모든 걱정을 불러온다.”(196쪽)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출산장려 운동이나 결혼장려금, 출산 축하금, 부분적인 세제혜택 정도로 출산율 끌어올릴 수 있을까. 뮈르달 부부는 한두 가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경제적 분배의 소규모 조정 정도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아이들을 낳지 않으려는 복잡한 경제사회적, 심리적 동기를 없애는 방법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도권 한 어린이집의 모습
“자녀를 가짐으로써 드는 비용을 줄여야만 한다. 이는 가족의 지속적인 생활 향상을 위한 노력에 자녀가 방해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자녀가 방해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가족제도의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조직적으로 변경해 그에 따른 구조와 의미를 바꿔야 한다.”(132쪽)

이는 한두 가지 아이디어나 정책이 아닌 분배정책과 사회정책, 생산정책 등 근본적인 사회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배정책, 사회정책, 생산정책의 전반적인 개혁이 실질적인 출생률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이다.”(129쪽) 근원적이면서도 전면적이어야 했다.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매우 급진적인 분배정책 및 사회정책을 변화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 변화는 기술의 가능성 안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이 향상된 급진적인 생산정책의 변화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133쪽)

결국 전반적이고 전면적이고 근원적인 개혁만이 가능하다고 뮈르달 부부는 봤다. 먼저, 가정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하되, 출산과 양육의 비용 대부분을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보조금이나 부분적 세제 혜택 정도가 아닌 인구정책적인 차원에서 생활수준이 원하는 수준까지 향상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단순 소득재분배가 아니라 육아 부담 자체에 초점을 맞춘 소득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각한 저출산의 심리적인 동기부여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출산이 가족들 개개인에게 추가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이는 가족들이 무언의 합의를 보고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된다. 따라서 가정의 출산으로 발생하는 추가적인 비용을 줄여야 한다. 저소득 가정뿐만이 아니라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고소득 가정도 자녀 양육에 드는 추가적인 비용이 출산을 기피하는 주요한 이유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소득 및 재분배 제도하에서는 각 개인에게 출산과 보육의 비용이 전가되고 있으며, 이 제도가 합리적인 심리와 더불어 오늘날 결국 무자녀 혼인 가정을 만들어내고 있다.”(209쪽)

아울러 기혼 취업 여성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사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해 생산 및 노동시장의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보육에 필요한 비용과 부담이 많아지면 출산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육 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사회정책을 통해서 보육 부담의 재분배 역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보육 재분배는 부모의 직업이나 성별, 소득 등과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같은 수준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뮈르달 부부는 1934년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스웨덴 인구 위기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인구 위기의 본질과 대안의 방향성을 담은 책 『인구 위기』(홍재웅·최정애 옮김, 문예출판사)를 펴냈다. 책은 큰 주목을 받으면서 1930년대 인구 위기 논쟁의 지형을 바꿨고, 결정적으로 집권당인 사민당에 의해 국가 정책으로 채택됐다. 학비 보조금 지급, 교육 보조금 지급, 9년 의무교육제 실시, 저소득층 아동수당 지급, 전면적 아동수당 지급, 주부 휴가제 도입, 가족 상당원제 실시, 부모 보험제 실시 등등.... 시간이 지나면서 마침내 출산율 대반전을 이뤄냈다. 1935년 합계출산율이 1.74명이었지만, 1950년 2.43명으로 크게 올랐다. 스웨덴의 출산율 반전을 이끈 뮈르달 부부의 책이 오랫동안 논문이나 보고서 등에 인용돼 오다가 89년 만에야 최근 국내에서 완역 출간됐다.

국내 독자들의 경우 1930년대 스웨덴의 정치지형과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념적 스펙트럼, 우리와는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 뮈르달 부부에 대한 편견 등으로 다소 거리감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뮈르달 부부의 문제의식과 본질적인 방향성은 충분히 경청하고 검토할 만하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 중이고, “저출생 현상이 지속되면 인구감소로 인해 소멸하는 제1호 국가가 될 것”(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이라는 경고까지 듣는 현실 아닌가. 선구적이고 대담하고 실효적이다. 한 세기 전에 쓰인 책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구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이데올로기 정치 논의의 중심이 될 것이다. 나는 다음 세대에서는 아마도 인구문제가 사회정치적 방향의 전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도 믿는다. 적어도 인구문제는 모든 문제의 주요 의제로 어쩔 수 없이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17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