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싸움 말려도 `아동학대` 고소 당해...교사 1252명 고소당했다

김성준 2023. 7. 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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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교사들 몸살
고소 사건 중 절반 넘게 ‘무혐의’
전문가들 “‘전담기구 설치' 등 등 교사 보호장치 절실”
21일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 분향소에서 한 추모객이 슬퍼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정문에 추모객들의 메시지가 부착돼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이 학교 담임 교사 A씨가 학교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괜히 학생 몸을 터치했다가 아동 학대로 신고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법률 자문하는 분들이 많아요."

교사노조연맹 자문변호사인 법무법인 공간 이나연 변호사는 23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학생 생활지도 하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한 학생이 친구한테 욕을 해 중재하는 과정에서 사과하라고 했더니, 학부모가 '왜 우리 아이를 낙인찍느냐'며 아동학대로 선생님을 신고하는 식의 아동학대 무고 사건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교단의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이 변호사는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지만, 선생님들은 그 처분이 내려지기까지 수사도 받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선 학급에서 분리되어야 한다"며 "교사들이 마음 놓고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고 말했다.

경기교사노조가 지난 3월 전국 시도교육청에 요구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고발돼 수사를 받은 사례는 무려 1252건이나 됐다. 이 중 경찰이 종결하거나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례는 676건(53.9%)으로 절반이 넘는다.

전체 아동학대 수사 사례 중 경찰 종결 및 불기소 처분된 사례는 14.9%였다. 교사의 아동학대 혐의 종결·불기소 비율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는 교사 집단에서 억울하게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속한 신고로 아동학대 범죄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 교육 현장에서 '악용'되고 있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0조는 '누구든지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의심'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최종 무혐의 처분이 내려져도 고소인이나 신고자를 무고로 처벌할 수가 없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아동학대 신고에 속수무책으로 내몰리고 있다. 교사 출신 임이랑 변호사는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신고한 아동학대 사건을 매달 두 건 이상 맡고 있다고 한다. 임 변호사는 "최근 5년간 단 1건의 사례를 제외하곤 의뢰인 중에 형사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교사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경기 하남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부모가) 그저 교사를 괴롭히기 위해 허위로 고소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고죄로 맞고소하려고 해도 학부모는 '학생 말을 믿어서 했을 뿐'이라며 발뺌하면 끝"이라며 "당하기만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혐의 고소를 당했다. '수업 시간에 와이파이를 잡아주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태블릿 PC를 고쳐주지 않았다', '친구와 다투는 중에 선생님이 별명을 불렀다'는 등이 이유였다.

그는 "위 진술은 모두 거짓이었다"며 "올해 3월 무혐의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교사들이 '막무가내식 아동학대 신고'에 시달리는 문제가 해결되려면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해 관련 법률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소 남발을 막기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피해교사에 대한 법률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 내 아동학대의 경우 신고체계가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기교사노조 자문변호사인 법무법인 온누리의 이보람 변호사는 "신체적, 물리적 가해행위가 아닌 생활지도 등 교육활동 중 벌어진 아동학대 신고는 교육지원청 차원의 전담 기구에서 '아동학대'인지, '교권 침해'인지 판단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이 경찰로 가기 전에 교육 현장 이해도가 높은 교원과 경찰, 변호사, 의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 기구의 일차적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소당한 교사들을 위한 법률적 지원도 절실하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교권보호위원회라든지 선생님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지만, 신고당했을 때 당장 필요한 '입회 변호사 지원' 등 현실적 도움은 받지 못하고 있어 개인이 다 알아서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악성 민원에 대한 '대응 매뉴얼'도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됐다. 경기교사노조 황봄이 교권보호국장은 "행안부의 악성 민원인 대응 매뉴얼(녹음 전화기, 보디캠 등)이 있는데, 학교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2018년부터 교육청과 단체교섭하면서 녹음 전화기 설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이랑 변호사는 "여전히 담임교사의 개인 연락처를 학부모나 학생에게 공개하라는 학교가 있다"며 "원칙적으로 교사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나 법률 개선보다 더 중요한 건 '학부모들의 인식 변화'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나연 변호사는 "교원 전문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며 "학부모님들 의견도 당연히 반영돼야 하겠지만, (교육방식 등에서) 무조건 선생님은 틀렸다는 인식은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준기자 illust76@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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