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석탄발전소가 원전으로'…차세대 SMR 실증 나선 美 테라파워
연료 다발·액체 나트륨·용융염 저장방식 등 소듐냉각고속로 주요특성 소개
"2030년 와이오밍서 가동시 차세대 원자로될 것"…한국과 원전협력 강화 추진
(벨뷰<워싱턴주>=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
지난 14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주(州) 시애틀 시내에서 워싱턴호(湖)를 가로질러 20분 정도 차로 이동하니 마샤 버키 테라파워 부사장이 출입구 앞에서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테라파워 연구소를 방문한 취재진을 맞이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사전에 온라인으로 이름, 직업, 연락처, 여권번호 등을 입력한 뒤 받은 QR코드를 제시하고 신분증과 얼굴을 촬영하는 신원 확인 절차가 진행됐다.
이어 '시설 내 사진 및 영상 촬영 불가' 안내를 받고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비행기 격납고 같이 층고가 높고 개방된 넓은 공간이 나왔다.
2천평(약 6천600㎡) 규모의 내부에는 SMR의 일종인 소듐냉각고속로(SFR) '나트륨(Natrium)' 실험장비,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실험설비 등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테라파워 임직원은 모두 400여명으로 이 중 22%가 박사급 인력이라고 한다.
버키 부사장은 이 연구소에 대해 "신기술을 개발할 때는 보통 시뮬레이션 영역에서 시작하지만, 라이선스(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실제 물리적 형태로 작동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면서 "이곳은 물리적 형태로 (기술을) 입증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은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4세대 SMR 나트륨 원자로와 에너지저장시설(ESS) 등에 대한 전문 연구진의 기술적인 설명을 듣고 냉각재, 에너지 저장용 재료 등의 화학적 특성을 보여주는 시연을 지켜봤다.
냉각재로 물이 아닌 다른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4세대 SMR로 규정하는데,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나트륨 원전'의 경우 액체 나트륨을 사용한다. 고속 중성자를 이용한 핵분열로 발생한 열을 액체 나트륨이 냉각하면서 만드는 증기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나트륨 원자로의 경우 다발의 구조가 4각형인 경수로형 핵연료와 달리 6각형 구조의 핵연료 다발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크기를 기존보다 더 작게 만들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데, 테라파워의 방문은 이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됐다.
헤드셋 형태의 마이크를 착용한 마이클 앤더슨 선임 관리자는 연료봉을 6각형 모양의 다발로 묶은 '핵연료 다발' 금속 모형을 놓고 "나트륨 원자로의 독특한 점인 일반적 레이아웃 구조"라면서 "육각형 패턴으로 돼 있어 (연료봉을) 다 같이 적합하게 위치하도록 묶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트륨 원자로의 경우 크기를 줄인 연료 다발 구조와 함께 고속원자로라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고속 중성자를 사용해 원전 출력을 345MW(최대 출력 500MW)까지 높였다고 이날 현장 방문에 동행한 SK그린센터의 유향근 박사가 설명했다.
안전 우려 등으로 대형원전에서 크기를 줄인 소형 원전의 경우 출력이 낮아지면서 경제성 문제가 대두되는데 나트륨 원자로는 고속로 방식으로 이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나트륨 원전은 연료봉 수명이 기존(2년)의 5배이고 핵폐기물도 기존 원전보다 70%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유 박사는 밝혔다.
취재진은 이어 실험실에서 볼 수 있는 대형 글러브박스 앞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숀 애크리 선임 테스트 엔지니어가 박스 밖으로 툭 튀어나온 고무장갑에 손을 넣은 뒤 박스 안 절연 비커에 담긴 액체 나트륨을 옮기거나 자기장 발생 기기를 이용해 액체 나트륨을 회전시키는 시연을 보여주면서 냉각재인 액체 나트륨의 특성을 설명했다.
그는 "액체 나트륨을 부으면 수은처럼 보이고 점도가 물과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액체 나트륨은 금속이기 때문에 자기장에 반응한다. 외부에서 (직접) 접촉하지 않고 힘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액체 나트륨이 냉각재로 갖는 다른 장점은 끓는 점이 물보다 8배가량 높은 880도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액체 나트륨의 경우 물보다 더 많은 열을 흡수하면서 발전 출력을 높일 수 있다.
또 물의 경우 100도가 넘어가면 증기가 되기 때문에 원자로 가동 시 압력을 통제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액체 나트륨의 경우 끓는 점이 높아 저압 상태로 가동할 수 있다고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가 설명했다.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오염수가 발생하진 않는다.
나트륨 원자로에서 냉각재가 흡수한 열은 용융염을 활용한 에너지 저장시설로 이동해 저장, 발전에 사용된다.
고온에서 액체로 변하는 용융염은 질산나트륨과 질산칼륨의 혼합물로, 열에너지를 보관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이런 용융염 저장시설(MSS)을 소듐고속로와 결합한 것이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의 특징이다.
원자로 파트와 일종의 배터리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 파트를 분리하면, 건설이나 안전 관리 등에서 장점이 크고 이른바 부하추종(전력 부하 변화에 따른 운전방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연구소 방문에서는 저장시설에 사용하는 용융염의 특징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현재 테러파워는 와이오밍주 케머러에 2030년 완공을 목표로 나트륨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지질 조사 등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공사를 진행하면서 벨뷰 연구소에서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케머러의 석탄 화력발전소는 2025년 폐쇄될 계획인데 나트륨 원전이 이를 대체해 2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테라파워는 3월 워런 버핏이 소유한 전력회사 퍼시피콥와 함께 퍼시피콥 소유의 유타주 석탄 화력발전소 부지에 2033년까지 2기의 SMR을 짓는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 화력발전소가 잇따라 SMR로 대체되는 것인데 여기에는 '석탄에서 원자력으로(coal to nuclear)'란 슬로건이 붙었다.
르베크 CEO는 "와이오밍에서 나트륨 원자로가 가동되면 그것이 미국의 차세대 원자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라파워는 연구소에서 미래형 원자로로 불리는 염소염·용융염원자로(MCFR)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또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인 액티늄-225(Ac-225) 생산 실험도 병행되고 있다. 액티늄-225는 정상 세포를 손상하지 않고 암세포만 파괴하는 표적 알파 치료제의 원료 중 하나다.…
르베크 CEO는 "여러 나라의 제약업체가 의약품에 액티늄을 활용하려고 있으며 알파 치료를 목표로 하는 한국 기업과도 논의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동위원소 사업은 한국과 함께 더 빨리 상업화될 수 있으며, 이르면 내년에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르베크 CEO는 연구소 방문 중에 계속 원전 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튼튼한 한국과의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현재 한국 기업 중 SK㈜와 SK이노베이션이 모두 2억5천만달러(약 3천억원)를 투자해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함께 공동 선도투자자 지위를 갖고 있다.
테라파워는 또 SK㈜·SK이노베이션, 한국수력원자력과 지난 4월 나트륨 원자로 개발 협력 등을 위한 '차세대 원전기술개발 사업화 상호협력 계약'을 하기도 했다.
sol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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