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훈수꾼서 장관 후보자로…유튜버와 정치권의 밀착, 이유는
[편집자주] '정치 과잉'의 대한민국, 그 중심에 '정치 유튜버'들이 있다. 복잡한 정치 현안을 쉽게 알려주지만 때론 가짜뉴스의 온상, 정치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치 유튜버가 장관이 되는 시대,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
"이젠 장·차관이 되려면 정치 유튜브를 해야 하는 시대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단행한 개각을 보고 고위 관료가 한 말이다. 21일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치른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구독자 24만명의 정치 유튜버였다. '김영호 교수의 세상 읽기' 채널을 통해 김 후보자는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약 3억7000만원 수익을 올렸다. 김채환 신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도 '김채환의 시사이다'란 보수 성향의 채널을 운영하던 구독자 54만명의 스타 유튜버였다.
유튜브와 제도권 정치권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정치 유튜버가 내각에 들어가 직접 국정을 운영하는 시대가 열렸다. 해설가 또는 훈수꾼에 머물지 않고 직접 플레이어로 뛴다. 반대로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정치인들도 유튜브를 통해 '팬덤'을 모으고 국민들과 소통한다. 가짜뉴스와 정치 양극화란 그림자를 가진 유튜브와 제도권 정치의 결합이란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 정치 유튜버와 정치권의 밀착
유튜버들의 제도권 정치 진출은 올 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정치 유튜버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졌다. 유튜브 채널 '따따부따'의 민영삼 전 윤석열 대선캠프 국민통합특보(현 당대표 특보),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 대표, '신의한수' 신혜식 대표는 최고위원에, 김건희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 전 대표로서 유튜브 채널 '강신업TV'를 운영하는 강신업 변호사는 대표에 도전했다. 비록 아무도 선출되진 못했지만 1차 컷오프를 통과한 민 전 특보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특보로 임명됐다.
지난달 한국자유총연맹은 미디어분과 자문위원으로 보수 유튜버들을 대거 위촉했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던 인물들이다.
유튜버와의 밀착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진보 유튜브 채널 '김성수TV 성수대로' 채팅창에 등장해 지지자 결집을 호소하고, "슈퍼챗(후원금)을 쏴주자"고 독려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보듯 인민주의적, 포퓰리스트적 경향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역사가 짧으니 더욱 양극화가 극심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방송사 앵커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후배들한테 욕먹었다면 이제 이념적으로 동기화된 사람들이 유튜브를 하다 정부에 가는 것"이라며 "여야할 것 없이 그런 사람들을 가져다 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100만 구독자' 정치 유튜브 11개
정치권이 유튜버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상파 방송과 신문 등 기성 언론의 영향력이 줄어든 반면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은 막강해졌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의 취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정치 유튜브 채널만 11개에 달한다.
정치 유튜브가 사실상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은 정치 유튜버들과 소통하며 여론을 파악하고 있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인재들도 몰린다. 유튜버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있지만 교수, 방송인, 전문가 등이 겸업하기도 한다.
여권 관계자는 "미디어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유튜버가 취미활동에서 하나의 직업, 언론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유튜브가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고 가짜뉴스의 창구가 되기도 하지만 기존 언론이 하지 못한 기능을 유튜브가 해결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 '가짜뉴스' '정치 양극화' 부추기는 유튜브
정치 유튜브는 한쪽 진영으로 편향돼야 조회수가 늘어난다. 유튜브의 알고리즘 추천 기능에 따른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 때문이다. 자연스레 정치 유튜버들은 극단적인 주장을 펴게 되고, 이는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때론 정치 유튜브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유튜브의 경우 '방송'이 아닌 ' '정보통신' 콘텐츠로 분류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제재가 어렵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 유튜버들한테 휩쓸리니 문제"라며 "갈등을 관리하고 합리적 정치 과정으로 가져가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정치가 멈춰 있고, 오히려 갈등을 동원하고 조장해 선거에 활용하려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조금이라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튜브가 가만 두지 않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의 정치 성향에 들어맞는 내용, 자극적인 썸네일 사진의 영상들이 유튜브 메인 화면에 뜬다.
이 정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왜 이 길을 택했을까.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수 성향의 유튜브 채널 '송국건의 혼술'을 운영 중인 송국건 전 영남일보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 때 진보 유튜버들이 굉장히 많은 활동을 하자 제가 균형을 맞춰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그러다보니 주로 보수쪽의 목소리를 내는 유튜버로 자리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송 전 본부장은 2019년 기자로서 방송을 시작할 땐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진보 유튜버들의 왕성한 활동에 신경이 쓰여 점차 보수 성향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진보 성향의 유튜브 '알리미 황희두'를 운영 중인 황희두 노무현재단 이사는 "2019년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시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고, 게임이나 심리 분야와 같이 청년들이 관심있는 주제를 주로 다뤘다"면서 "그러다가 일베(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스러운 이야기들이 퍼지는 모습을 봤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황 이사는 "일베스러운 얘기들에 대해 답답해하고 할 얘기들을 하다보니까 (보수 지지자들에게) 좌표도 찍히고, 어느 순간 정치 유튜버로 분류가 돼 있었다"며 "그래서 저도 제 유튜브 채널을 진영 방송으로 생각하고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상대 진영의 정치적 주장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꾸준히 늘기보다는 특정 이벤트가 발생할 때 집중적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황 이사는 "2019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특정 정치인 영상이 확 노출됐을 때, 같은 해 가을 (서울) 서초동 촛불집회 무렵에 구독자 수가 크게 늘었다"며 "또 총선이나 대선 등 선거 시즌이 됐을 때도 어느 정도 (구독자 수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송 전 본부장은 "확실한 것은 (정치 유튜버들이) 경선에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라며 "보수든 진보든 유튜브를 열성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경선 투표권을 갖고 있는 당원들이다. 주요 유튜버들이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황 이사는 국회의원들로부터 출연 요청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꼭 알리고자 하는 본인의 생각이 있거나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정보 유통 창구로서 효능감을 느낀 적이 있다"며 "채널을 운영하면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많아지거나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정치 유튜버가 양극화나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는 데 대해서는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유튜버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본질적 원인은 현실 정치에 있다는 얘기다. 유튜브 검색 및 추천 알고리즘이 현상을 더욱 심화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송 전 본부장은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을 때보다 점점 더 (정치가) 양극단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유튜브는 중간이 없는 세계다"라며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구조적으로 뭔가 해결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진영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으로 유튜브를 계속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결국 정치가 좀 화합하고 풀 것은 풀고, 양보할 것은 해야한다"며 "정치가 하나의 사건을 갖고도 극단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유튜버들도 거기에 붙어서 가게 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먼저 제대로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이사는 "유튜브 내 알고리즘 때문에 영상 노출이 결국 기존 구독자 분들이나 비슷한 성향인 분들에게만 노출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최근 나온 쇼츠(1분 이하인 동영상)의 경우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부분을 좀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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