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 재건' 맡겼더니, 역사까지 쓴 '초보' 이승엽…"자책 많이 했거든요"

김민경 기자 2023. 7. 2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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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연승 기념구를 들고 웃은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 ⓒ 두산 베어스
▲ 10연승 기념구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광주, 김민경 기자] "자책 많이 했죠. 내가 부족한 게 뭘까, 지금도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와 이승엽 감독은 7월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상위권 경쟁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1일 울산 롯데 자이언츠전부터 21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까지 무려 10연승을 질주했다. 10연승은 역대 베어스 감독 데뷔 시즌 최다 연승 신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1982년 김영덕 감독과 1984년 김성근 감독의 9연승이었다.

아울러 10연승은 구단 역대 최다 연승 타이기록이기도 하다. 2000년 김인식 감독과 2018년 김태형 감독이 한번씩 세웠던 기록이다. 이 감독은 베어스 역사에서도 '명장'으로 꼽히는 두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광을 첫해부터 누리게 됐다. 이 감독은 지난해 10월 부임 당시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지휘봉을 잡아 우려를 샀는데, 두산은 그런 초보 감독에게도 기어코 '미러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7월 무패 행진을 이어 가며 1위 LG 트윈스와 2위 SSG 랜더스로 굳혀지는 줄 알았던 2강 구도까지 깰 기세다. 3위 두산은 1위 LG와 5.5경기차, 2위 SSG와는 4경기차가 난다. 4위 NC 다이노스와 2경기차로 하위팀의 추격을 더 의식할 만한데, 주장 허경민을 중심으로 선수들은 다 같이 "위만 보자"고 외치며 전력질주하고 있다. 10연승 기간 두산을 지켜본 현장 관계자들은 "중위권 경쟁 구도에서 두산은 이제 꽤 앞으로 달아난 것 같다"고 표현한다.

이 감독은 이제야 사령탑을 맡고 고민이 많았던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두산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KBO 최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대기록과 함께 3차례 우승 트로피(2015, 2016, 2019년)를 들어 올리며 왕조를 구축했으나 지난해 9위로 추락하면서 감독을 비롯해 코치진이 대거 교체되는 변화를 겪었다. 선수들은 두산 왕조를 경험한 베테랑 아니면 1군 경험이 부족한 유망주로 나뉘어 있었다. 초보 지도자가 이런 팀을 하나로 다시 모아서 왕조를 재건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았다. 이 감독은 그 어려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새 역사까지 쓰며 지도자로 기대감을 날로 높이고 있다.

이 감독은 22일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에 100%는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호흡을 맞추고, 팀워크를 맞추고, 한마음 한뜻으로 하려 한다. 그러나 전체 선수 28명, 코치진 11명을 사실 모으는 게 힘든 일이다. 그 마음들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시즌 초반보다는 선수들도 내 마음을 알아가려 하고, 나도 선수들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어도 어떤 고민이 있는지 자꾸 알려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좋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 ⓒ 두산 베어스

선수들도 이 감독과 같은 생각이었다. 주장 허경민은 "고참부터 막내까지 팀 베어스가 모두 똘똘 뭉쳐 10연승을 달성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올해 이적생 박준영은 "다른 팀(NC)에서 볼 때도 워낙 짜임새 있는 팀이었는데, 야구를 잘할 수밖에 없는 팀이라 느꼈다. 선배들이 자기가 잘하는 것처럼 더 좋아해 주시니까. 나도 힘내서 으쌰으쌰 한다"고 팀 분위기를 들려줬다.

원팀을 만들고 성적을 내는 과정에서 이 감독 스스로 배운 점도 많다. 그는 "팀이 초반에 안 좋을 때는 '내가 많이 부족한가', '팀을 맡기는 무리인가' 이런 자책을 많이 했다. 벤치 실수로 흐름이 바뀌고 결과가 안 좋을 때는 분명 벤치 책임이고, 부족하다 생각했다. 그 부족한 것들은 경기를 치르면서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플레이를 할 때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부족한 게 뭘까 지금도 채워 나가고 있다. 공부도 많이 되고, 완벽하지는 않아도 시즌 초반보다는 좋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이어 "KBO리그에서 15년을 뛰면서 수많은 지도자를 뵀다. 지도자의 꿈이 항상 있었기에 내가 지도자가 됐을 때를 생각하면서 '이건 꼭 배워야겠다', '이건 선수들이 상처 받겠다', '이런 걸 해주면 선수들이 기뻐하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담당 코치들이 다 계셔서 세부적인 것들은 맡긴다. 그저 선수들이 즐겁게 그라운드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플레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맞춰 주는 게 내 임무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 10연승을 달성한 두산 베어스 ⓒ 연합뉴스

두산은 23일 광주 KIA전에 국내 에이스 곽빈을 앞세워 구단 역대 최다 신기록인 11연승에 도전한다. 11연승 달성 시 이 감독은 국내 감독으로는 최초로 데뷔 시즌 11연승 고지를 밟는다. 외국인으로는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이 2008년 데뷔 시즌에 11연승을 기록했다.

두산의 7월 무패 기적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끝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1승을 더 쌓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최소 5강 안에는 들어야 지난해 무너진 두산의 자존심을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야구는 결국 마운드 싸움인데, 라울 알칸타라-곽빈-브랜든 와델-최원준으로 이어지는 선발진과 홍건희-김명신-정철원-박치국-이영하 등이 버티는 불펜 모두 탄탄해 지금 상승세가 쉽게 꺾이진 않을 듯하다.

이 감독은 "연승에는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할 만큼 하지 않았나"라고 선수단에 메시지를 남기며 당장의 연승 기록보다 남은 시즌 순위 싸움에 더 집중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 ⓒ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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