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저를 찾은 친어머니는 재회 후 한달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에바 호프만 해외입양인]
1975년 3월 27일, 저는 생후 2개월 반 아기로 덴마크로 입양되기 위해 혼자 한국을 떠났습니다. 입양될 아기들이 작은 상자에 담겨 비행기로 이동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제가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한국 입양 서류에 저는 "고아"라고 적혀 있었고, 한국 친생 부모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혼모가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아기를 포기했다는 입양기관들이 사회에 유포시킨 '아름다운 거짓말'과 함께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이었습니다. 덴마크 시골에서 자란 저는 소수의 한국 입양아였고, 덴마크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었습니다. 한국은 '이국적'이었지만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한국의 가족, 언어, 관습, 역사, 문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18살에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났고, 다른 한국인을 만나기 전까지 거의 비슷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7년, 저는 덴마크 입양기관으로부터 두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하나는 한국 가족으로부터, 하나는 저와 마찬가지로 해외로 입양 보내진 미국에 있는 제 사촌의 편지였습니다. 저는 결국 고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 부모님은 이미 4명의 아이가 있었고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한국사회봉사회(KSS)로부터 제가 한국의 가족에 대해 알고 자랄 것이고, 성인이 되면 가족을 방문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 몰래 저를 포기했습니다. 물론 한국사회봉사회와 한국의 다른 입양기관들은 한국 정부의 승인 하에 우리의 정체성을 '고아'로 미화했습니다.
제 한국 어머니는 입양기관에 저에 대한 소식을 구걸하고 제게 줄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들을 받지 못했고, 덴마크 부모님들도 어떤 선물도 받은 적이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제 생모가 저를 낳은 지 몇년 후 남동생을 낳았을 때, 어머니는 한국사회봉사회에 남동생을 제게 보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우리는 남매로 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입양기관은 어머니에게 덴마크의 입양부모가 이를 거부했다고 전했습니다. 제게 덴마크 부모님은 그런 요청을 받은 적은 없지만, 만약 받았다면 남동생을 입양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덴마크 부모님은 저 다음에 또 다른 한국 아동을 입양했기 때문입니다. 제 한국인 어머니는 2008년 봄 미국 알래스카에서 만났을 때, 제가 선물을 받았는지, 그리고 양부모님이 왜 제 동생을 거절했는지 물었습니다. 제 한국 가족은 몇년 전 그곳으로 이민을 갔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한국인이었습니다.
2008년 재회했을 때, 한국 가족은 제가 덴마크에서 온 것에 대해 몹시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게 계속 네덜란드에서 온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저 한국 가족들이 두 나라를 혼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입양기관이 한국 가족들에겐 제가 네덜란드로 입양됐다고 말했고, 제 친가족은 네덜란드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다른 가족들을 통해 저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한국 가족들은 또 제게 왜 자신들을 찾지 않았느냐고 몇번을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서류상 고아라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생각됐습니다.
나는 올해 1월 친동생에게 입양기관의 거짓말에 대해 모두 들었을 때, 비로소 한국 어머니가 내가 한국 가족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왜 그렇게 실망한 것처럼 보였는지 알게됐습니다. 올해 1월에야 제 한국 가족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하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제가 들은 거짓말에 대해 이해하게 됐습니다.
거짓 입양 서류와 한국 가족들이 들은 말들을 볼 때, 저는 입양기관이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가족과 저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운명이었으며, 이 모든 설정은 입양기관이 아이들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우리가 만난 지 한달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언니는 어머니가 제가 괜찮다는 사실과 한국 어머니나 가족들에게 원망이나 분노를 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평화롭게 돌아가셨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친어머니를 만난 것이 매우 행운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입양인들과 한국 가족들도 진실을 알고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2년 9월, 283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11월 15일, 12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372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 시기에 한국에서 덴마크와 전세계로 입양된 해외입양인의 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화해위는 12월 8일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6월 8일 추가로 237명에 대한 조사 개시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지 68년만의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다. <프레시안>은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요청한 해외입양인들의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에바 호프만 해외입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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