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대한민국에도 테러 재판이… 알카에다에 돈 건넨 이들
오늘 '법정B컷'은 우리나라에서 다소 생소한 '테러' 관련 재판 이야기입니다.
대중을 향한 테러 단체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공격이 드물었던 우리나라지만, 테러 단체들의 물밑 움직임은 활발하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입니다. 매년 적발되는 테러 관련 범죄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죠.
오늘은 국내에서 테러 단체를 돕다 붙잡혀 법정에 선 두 명의 외국인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지원한 단체는 2001년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9·11 테러의 주범 '알카에다'였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며 알카에다 지부로 송금한 그들
법정 방청석에는 가족과 친구로 보이는 이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은 방청석에 앉은 가족을 향해 미소를 보냈고, 친구로 보이는 한 사람은 가슴을 두 차례 두드리는 인사로 이들을 반겼죠.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던 그날의 재판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인 A씨와 카자흐스탄인 B씨의 혐의는 이름도 낯선 '공중 등 협박 목적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위한 자금 조달 행위 금지법' 위반입니다. 이와 함께 A씨에겐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습니다.
이들의 범행은 쉽게 말해 테러 단체에 자금을 조달한 겁니다. A씨는 지난 2019년 8월 전문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왔고, B씨는 사증면제로 2019년 11월 입국했습니다. 그들은 입국 뒤부터 국내 은행을 통해 테러단체 KTJ에 돈을 보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KTJ는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로, 정식 명칭은 '카티바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입니다. 국제연합(UN)에서 지정한 테러단체로 2015년 시리아 알푸아 테러, 2016년 주 키르기스스탄 중국 대사관 테러, 201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테러를 일으킨 조직이죠. 현재도 시리아 등 곳곳에서 테러 공격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상자산(암호화폐)으로 KTJ에 돈을 보냈습니다. 이를 위해 돈을 입금하면 수수료를 받고 가상자산으로 환전해주는 딜러를 활용했습니다. 딜러에게 돈을 보낸 뒤 받은 가상자산을 KTJ에 보내는 방식입니다. 이들은 그렇게 2021년부터 체포 직전까지 수백만 원을 보냈죠.
재판부의 선고가 시작됐습니다. 외국인 재판은 통역사가 붙습니다. 이날도 우즈베크어와 카자흐어, 두 명의 통역사가 재판에 참여했습니다.
2023.7.12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테러단체 KTJ 자금 지원 재판 선고中 |
재판부 "지금부터 통역해 주세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들이 테러 단체 또는 사람 신체를 상해해 생명을 위협하는 단체 KTJ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지원하려고 한 행위입니다. 피고인 B씨는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A씨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
A씨는 범행을 부인합니다. 지인의 부탁으로 돈을 보낸 것일 뿐, 테러단체를 지원하는 일인 줄 몰랐다는 겁니다.
A씨의 범행에 대해 결정적인 진술을 한 이는 A씨의 부인이었습니다. A씨가 평소 테러리스트의 설교 영상을 즐겨 봤고, 시리아에 가서 무기를 들고 전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A씨의 부인은 법정에서 자신의 말을 뒤집습니다. 부부 싸움 과정에서 화가 나 수사기관에서 지인이 알려준 대로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죠.
2023.7.12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테러단체 KTJ 자금 지원 재판 선고中 |
재판부 "A씨의 배우자 C씨는 이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 C씨의 수사기관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모순되지 않고, A씨의 수사기관 진술과도 부합합니다" "C씨는 '지인이 자신에게 A씨에 대한 허위 내용을 신고하도록 했다'라고 주장하지만, 지인이 허위 신고를 하게 해 A씨를 처벌받게 할 특별한 동기가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C씨의 법정진술은 안 믿고, 수사기관 진술을 믿습니다" |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튜브 영상
2023.7.12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테러단체 KTJ 자금 지원 재판 선고中 |
재판부 "A씨가 사용한 휴대전화에서 유튜브 영상이 발견됐고, A씨는 지인의 부탁으로 송금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부탁 받은 사람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외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A씨 공소사실은 모두 유죄입니다" |
통역이 차례차례 이뤄질 때마다 A씨와 B씨는 천장과 바닥을 차례로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방청석에 있던 가족들도 술렁였습니다. 이날 법정에는 B씨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과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이, 4~5살 쯤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재판부는 징역형을 선고합니다.
2023.7.12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테러단체 KTJ 자금 지원 재판 선고中 |
재판부 "이 사건 범행은 테러단체에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이는 테러단체의 존속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행위로 제공한 자금의 액수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테러단체의 용이한 활동을 가능하게 하기에 국가·공공 안전을 저해할 위험이 매우 큰 행위입니다. 다만 피고인이 국내 처벌 전력이 없는 점은 유리하게 고려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선고합니다. 피고인 A씨를 징역 1년 6개월, B씨를 징역 1년에 처한다" |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됐고, 교도관의 지시에 따라 이들이 법정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B씨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법정 밖을 나가는 B씨에게 달려가 안기며 흐느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법정은 싸늘해졌고, 교도관들은 곧장 그 자리에서 B씨를 제압한 뒤 법정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징역 선고 이틀 뒤, A씨와 B씨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알카에다 지부인 KTJ는 과거에 이미 UN이 한국 정부를 향해 경고 메시지를 보낸 조직입니다. 지난 2019년 UN은 KTJ 조직원 다수가 한국행을 시도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고, 이번 사건처럼 이미 국내에서 자금 조달 등 경제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KTJ 관련 재판이 처음이 아니고, 드물지도 않다는 겁니다. 지난 2020년 1월과 6월에 각각 카자흐스탄인 1명과 우즈베키스탄인 1명이 이날 재판과 같은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국제 테러단체들이 최근 암호화폐 등으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시스템을 보유한 한국은 매력적인 자금 조달처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 테러 범죄가 우리와 그다지 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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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송영훈 기자 0hoo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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