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폭우 속 이미 반쯤 막힌 빗물받이…사투 벌이는 미화원
'악천후 작업 중지' 안전 수칙 있어도 유명무실
(서울=연합뉴스) 윤성우 인턴기자 = 장맛비가 거세게 내린 지난 14일. 정한준(54) 환경미화원의 몸은 이른 새벽부터 땀과 빗물에 범벅이 됐다. 안전모, 우비, 장갑, 장화 등으로 중무장한 상태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국적으로 '물폭탄'이 쏟아진 이날 그가 일하는 강동구에도 시간당 최대 20㎜가량의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정씨의 일은 두 배 넘게 늘어난다. 반복된 빗질에도 빗물로 인해 바닥에 달라붙은 푸른 은행잎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무단투기한 쓰레기가 도로변으로 떠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정씨는 "청소가 끝나면 하이바(안전모)와 우비를 쓰고 무거워진 몸에 녹초가 된다"고 했다.
비가 올 때는 특히 빗물받이가 막히지 않도록 밤새 모인 이파리와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다. 정씨는 왕복 4차선 도로변에 쪼그려 앉아 빗물받이를 청소했다. 청소 도중 버스가 지나가며 고인 빗물을 튀겼다.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하던 일을 이어갔다.
곳곳에 있는 빗물받이는 이미 절반 넘게 흙과 오물에 막혀 있었다. 이럴 경우 위에 쓰레기가 조금만 쌓여도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정씨는 "빗물받이 관리가 안 되어 있으니 비만 오면 '초긴장' 상태가 된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가리킨 빗물받이는 흙과 오물로 구멍 하나가 완전히 막혀 있었고, 다른 구멍은 절반 이상이 막혀 있었다. 빗물받이 사이로 잡초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정씨는 "이렇게까지 뒤덮인 것은 최소 1∼2년은 방치됐단 의미"라며 "우리가 잡초도 뽑고 쌓인 쓰레기와 낙엽을 매일 치워도 이러면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빗물받이는 주로 각 지자체의 치수과에서 관리한다. 강동구의 경우 치수과에서 청소 업체와 계약해 1년에 한두 번 정도 빗물받이 청소를 위탁하는 것이 전부다. 나머지는 환경미화원이 도맡아 더 자주 쓸고 치우는 방법뿐이다. 미화원이 배수로 안까지 청소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잠시 잠잠했던 비가 다시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이 닫힌 가게의 천막에서 비를 피했다. 비를 바라보던 그는 "우리는 폭우가 내려도 어떻게 하라는 안전 지침이 없다. 이렇게 처마에서 비를 피하는 게 유일한 대안이다. 오늘도 '빗물받이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문자뿐이었다"고 했다.
보호망 없는 환경미화원…안전수칙 있어도 유명무실
폐기물관리법과 환경부의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지자체는 폭염·강추위·폭우·강풍 등 악천후 시 작업자 안전을 위해 작업시간 조정 및 작업 중지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선 폭염을 제외하곤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지자체별 담당자의 주관에 따라 환경미화원의 작업 조정이 이뤄지는 실정이다.
고용노동부의 '환경미화원 작업안전수칙'은 기상청의 재난경보 또는 기상특보 발령 시 미화원의 옥외작업을 중지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씨를 만난 지난 14일은 서울에 오전 5시까지 호우경보, 오전 6시 30분까지 호우주의보가 발효됐다. 그러나 작업을 중지하라거나 안전에 유의하라는 권고는 받지 못했다. '침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풍수해대책본부의 문자가 전부였다. 전국 대부분의 환경미화원은 줄기찬 빗속에도 길거리를 쓸었다.
환경부 가이드라인의 주간 작업(오전 6시∼오후 10시) 및 3인 1조 작업 원칙도 실제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자체별로 예외 조항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25개 중 강동구를 비롯한 22개의 지자체에서 '주간 작업'과 '3인 1조' 작업 조항에 예외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에서 가로청소원으로 일하는 김모(34)씨는 "비가 오면 차량 운전자와 미화원 모두 시야 확보가 어렵고 노면도 미끄러워 사고가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위험한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 교육이나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dub@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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