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다쳐야만 보호받나요" "법 있지만 도움 안 돼"… 홀로 싸우는 스토킹 피해자들

김소희 2023. 7.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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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금지 위반해 보복… 스토킹 살인 참극
"찾아올까 겁나" 피해자, 집 옮기고 번호 바꿔
피해자 보호·지원 강화 노력에도 사각지대
지난해 9월 27일 서울 중구 신당역 2호선 여자화장실 앞 추모공간에서 시민이 국화꽃을 헌화하고 있다. 같은 날 촬영된 사진 33장을 합쳐 만든 사진. 이한호 기자

#. A씨는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전남편 B씨에게 스토킹을 당했다. 2년 전 이혼한 사이인데도 B씨는 계속해서 A씨에게 동거를 요구하며 연락했다. A씨는 "왜 자꾸 나를 따라다니냐.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만, B씨는 A씨가 일하는 가게를 찾아가는 등 21차례나 접근했다. 결국 법원은 B씨에게 주거지와 직장 100m 이내 접근금지, 연락금지, 한 달간 유치장 또는 구치소 입감 등 잠정조치 2~4호를 내렸다. 그러나 B씨는 잠정조치 기간 중인 지난해 11월 A씨 집에 침입했다. 유치장 신세를 지고 나오자마자 2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토킹 살인 참극, 왜 계속되나

법원에서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도 옛 연인을 찾아가 살해하는 등 스토킹 행위가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15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정부가 재발 방지를 위한 법령 정비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사법기관은 유치장 구금 등 물리적 분리 조치에 소극적인 데다 스토킹범에 대한 24시간 감시란 사실상 불가능한 탓이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저지른 전주환이 지난해 9월 21일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인천 논현경찰서는 살인 및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30대 남성 C씨를 수사하고 있다. C씨는 지난 17일 오전 5시 54분쯤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흉기를 휘둘러 전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피해자의 어머니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 결과 C씨는 피해자를 스토킹해 지난달 10일 인천지법으로부터 접근금지, 연락금지 등 잠정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C씨는 약 한 달 만에 명령을 어기고 범행을 저질렀다.

가해자가 잠정조치를 무시하고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스스로의 신변을 보호하는 건 피해자 몫이 됐다. 전 남자친구를 스토킹으로 신고해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낸 경험이 있는 D씨는 "(가해자가) 집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집 밖으로 나가기도 두려웠다"면서 "결국 빚을 져서 임대주택으로 이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D씨는 "왜 피해자가 가해자 때문에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사해야 하느냐. 누군가가 다쳐야만 범죄의 심각성을 인정해주는 거냐"고 토로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년 여성폭력통계'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스토킹 피해자의 44.5%(79명)는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녔다"고 답했다.

참극을 막기 위해선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가 필수적이다. 다만 현행법상 가장 높은 단계의 조치인 잠정조치 4호(최장 1개월 유치장 혹은 구치소 유치)의 인용 비율은 절반에 그친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 10월 21일부터 지난해 7월까지 법원이 유치 결정을 내린 비율은 43.2%(486건 중 210건)다. 잠정조치 2, 3호(접근금지, 연락금지)의 인용 비율 84.6%(4,932건 중 4,177건)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피해자 보호 위한 제도 개선 박차… "현장 교육 강화"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에 대한 표결 결과가 화면에 표시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물론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는 등 피해자 보호 범위를 넓힌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은 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히 이 법안은 법원 판결 전에도 스토킹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했는데,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모든 스토킹 가해자에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릴 순 없는 노릇이라 지금처럼 사각지대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20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양성평등정책포럼에서 "접근금지와 유치의 중간 단계 처분으로 설정된 전자장치 부착은 접근금지 위반 여부를 확인하거나 추적할 순 있다. 그러나 구속이나 유치처럼 스토킹 가해자와 피해자를 물리적, 공간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정안에선 빠졌지만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보호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 역시 관리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피해자 신변보호와 지원 강화에 초점을 맞춘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방지법)도 지난 18일 시행됐다. 주요 내용은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고용주 등의 불이익 조치 금지 △지원시설 마련 및 상담·치료·법률구조·주거지원 △스토킹 신고 접수 시 경찰관의 즉각 현장 출동 등이다. 보호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선 현장 교육이 절실하다. 조제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은 '스토킹처벌법 개선방안 및 경찰의 피해자 지원에 관한 연구'(2022) 보고서에서 "스토킹 전담 경찰관뿐 아니라 현장 출동 경찰관 대상 교육을 추가로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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