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의 ‘게이트키퍼’, 어떻게 활약했나 [생명을 살리는 일터④]
#1.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A씨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손님이 3~4개월 정도 술에 취한 모습으로 마트를 방문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느 날 A씨는 늘 어두운 표정을 짓던 그 손님이 술과 함께 번개탄을 구입하는 것을 목격했다.
A씨는 생명지킴이 교육에서 배웠던 바와 같이 자살 위험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 번개탄을 구입하던 손님이 울먹이는 모습을 보자 용기를 내 말을 건넸다. 이에 손님은 “살고 싶지 않다. 사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울먹였다. A씨는 손님을 다독여준 후 용인시자살예방센터에 이러한 상황을 설명, 손님을 연계해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
#2. ‘그동안 고마웠다. 잘 지내라.’ 자살예방 교육을 받은 경찰관 B씨는 어느 날 동료 경찰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분명 자살을 암시하는 언어적 신호였고, B씨는 동료에게 연락을 취해 문자가 자살을 의미하는 것인지, 자살 생각이 있는지 등을 묻고 곧바로 상황에 개입해 동료의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
#3. 해군 하사 C씨는 자신의 선배가 “떠나고 싶다. 모두 끝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에게 다가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C씨는 선배가 자살 생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병영생활상담관 및 지휘관에게 그를 연계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은 직장 내 ‘게이트 키퍼’들이 동료의 자살 징후를 파악해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등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발표한 ‘2018년 심리부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사망자 대부분이 사망 전 언어·정서 상태 등의 변화로 자살징후를 드러냈지만, 주변 사람의 78.6%는 이를 고인의 사망 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직장에서의 생명지킴이 교육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보건복지부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보고듣고말하기’ 프로그램은 2013년부터 시작됐는데, 2013~2022년 10년간 ‘보고듣고말하기’, ‘이어줌인’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 양성한 생명지킴이는 전국에서 총 215만3천248명에 달한다.
2019년 28만3천461명에서 이듬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생명지킴이 수는 15만2천129명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하지만 2021년 33만288명, 2022년 39만120명으로 다시 상승세를 보였고, 지난해의 경우 경기도에선 총 7만9천103명이 생명지킴이 교육을 수강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직장인의 경우 가족들이 자살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집에 가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라며 “직장 내 생명지킴이 교육을 활성화 함으로써 자살 고위험군의 옆에 있는 직장 동료가 빨리 발견하고, 이들이 보내는 위험 신호를 인식하는 것이 ‘자살 예방의 기회’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K-ECO팀
※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겠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게'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김정규 기자 kyu5150@kyeonggi.com
이은진 기자 ejlee@kyeonggi.com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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