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교단] 학교·교육청·정부…"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어"

고유선 2023. 7. 2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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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교권보호위원회 심의 3천35건…교사들 "빙산의 일각"
교사가 무조건 '참아야' 하는 분위기…"적극 보호할 제도 필요"
교권확립 제도 마련 촉구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한국교총 회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권이 존중되는 정당한 교육활동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2023.7.20 utzza@yna.co.kr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학생·학부모의 교권침해에 시달리는 교사들을 더 막막하게 하는 것은 바로 학교와 교육청 등 소속 기관에조차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교사의 인권을 보호할 제도가 미비하고 교권침해를 당한 교사를 도울 지원책도 부족한 상황에서 교사들은 오히려 학교 관리자 등으로부터 '참아라' 또는 '무조건 사과하라'라는 요구를 듣는다는 게 현직 교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23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 등에 따르면 2019년 2천662건이었던 교권보호위원회 심의 건수는 코로나19에 따른 원격수업으로 2020년 1천197건으로 줄었다가 2021년 2천269건을 기록했다. 등교가 전면 재개된 지난해에는 3천35건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이러한 교권보호위원회 심의 건수가 실제 교권침해 규모와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고 있다.

학생이 성희롱·욕설 등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사안 정도로는 교권보호위원회가 거의 열리지 않고, 교사가 직접 폭행당하는 지경이 돼야 학교 차원에서 움직인다는 게 교사들의 전언이다.

교사들과 인사하는 이주호 부총리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1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 단재홀에서 열린 교육부-교총 교권 확립을 위한 현장 교원 간담회에서 참석한 교사들과 인사하고 있다. 2023.7.21 jjaeck9@yna.co.kr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조차 일부 학교의 관리자들은 사안이 확대되는 것을 꺼려 교권보호위원회 개최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이 2018년 8∼9월 전국 초·중·고교 교사 2만5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3년간 교육활동 침해를 경험했다는 교사가 27.1%였는데 절반 이상(52.2%)은 자기 경험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어차피 혼자 해결해야 해서'라는 응답이 43.8%였다.

부산에서 5년째 근무하는 초등교사 A씨는 "지난해 학급에 있었던 한 학생은 수업 시간에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물론, 자리에 앉으라고 하면 비명을 지르고 발길질을 하는 것이 거의 루틴이었다"며 "학부모도 아이의 문제점을 회피하고 '선생님이 애 하나 못 달래냐'고 하는 식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이가 휘두른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을 때도 잘 버텼는데, 막상 교장선생님 입에서 참으라는 소리가 나오니 억장이 무너지더라"라며 "아이는 결국 다른 친구를 때려서 학폭위(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열렸는데 그걸 기점으로 학부모가 좀 신경을 쓰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털어놨다.

최근 6학년 학생이 교사를 폭행해 논란이 됐던 서울 양천구의 한 공립초교 역시 사건이 발생한 지 3주일 가까이 지나서야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해 학교와 교육지원청의 대응이 미진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교사는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은 상황이었다.

폭행당한 교사는 초등교사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교권보호위원회는 빨라도 2주 뒤에 열린다고 한다.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며 "그 아이에게 너의 잘못이 명백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적었다.

이 학교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례적으로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하루 만에 해당 학생에 대한 전학 처분을 내렸다.

서이초 찾은 추모객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추모객들이 담임 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2023.7.21 pdj6635@yna.co.kr

학교가 아닌 교육청이나 산하 교육지원청으로 사안이 넘어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단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할 경우 사안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다른 업무에 크게 지장을 받는 것은 물론, 교사가 잠정적인 아동학대 가해자처럼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21일 이주호 부총리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주최한 교권침해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한 교원은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교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라며 "의심만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고, 무혐의를 받더라도 교사로 하여금 회복이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폭행 등 눈에 보이는 피해를 보더라도 학교통합지원센터에서 법률상담 등 만족할만한 지원을 받지 못해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도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개인적으로 병가를 내거나 휴직하는 경우도 많다.

김동석 교총 교권본부장은 "행정적·재정적·법률적 권한이 거의 없는 학교장이 교사를 보호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교육청은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시 교사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악성민원과 상해, 폭행 등 형사 교권사건은 피해 교사가 원할 경우 반드시 고발하도록 되어 있는 교원지위법을 이행해서 억울한 교원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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